동아시아 역사 472

진나라를 공격한 수나라의 공격 과정 [천하 통일의 대업 달성]

진의 황제와 신하들이 하는 일 없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을 때 양견은 진을 멸망시키기 위한 작업을 하나하나 진행했다. 진 후주가 즉위할 무렵, 양견은 대장군 한금호韓擒虎를 광주廣州 총관으로 파견하고 여강廬江(지금의 안휘성 여강현)에 진주하도록 지시했으며, 하약필賀若弼을 오주吳州(지금의 강소성 양주현) 총관으로 임명하고 강을 사이에 두고 진나라 수도를 견제하라고 명했다. (출처 : 韩擒虎) (출처 : 隋朝名将贺若弼用兵:大张声势真假难分) 개황 8년(588) 말에는 회남행태성淮南行台省을 수춘壽春에 설치하고 차남 진왕晋王 양광楊廣을 상서령으로 삼아 진나라 토벌전의 총지휘를 맡겼다. 그리고 양광, 양준楊俊, 양소楊素를 행군원수行軍元帥로 임명하고 군사 50여 만을 동원했다. - 양광은 육합六合- 양준은 양양襄陽-..

동아시아 역사 2017.01.08

조선 팔도 사람들의 품성에 대해, 이중택의 택리지 - 하편

※ 책에 적힌 순서대로 나열 ☆ 전라도 (고려 태조가) 견훤을 평정한 뒤에 백제 사람을 미워해, '차령 이남의 강물은 모두 (산세와 어울리지 않고) 엇갈려 흐른다'면서, '차령 남쪽의 사람을 쓰지 말라'는 명을 남겼다..... 우리 왕조에 들어와서야 드디어 이 금령이 느슨해졌다 노래와 여색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기는 습속이 있어 경박하고 간사한 사람이 많으며, 문학을 대단치 않게 여긴다. 그러므로 과거에 급제해 훌륭하게 된 사람의 수가 경상도에 미치지 못하니, 문학에 힘써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걸은 땅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타고나는 것이므로, (전라도의 인걸) 또한 적지 않다. .....(전라도는) 산천에 기이하고 훌륭한 곳이 많은데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크게 ..

동아시아 역사 2017.01.07

조선 시대 지역 사람들 품성에 대해, 이중택의 택리지 - 상편

※ 책에 적힌 순서대로 나열 ☆ 평안도 청북 사람들- 지대가 높고 추우며 북쪽 국경과 가까워 꽃과 과일이 없고 물산도 매우 적다.- 백성들이 몹시 게으르고 구차하게 산다.- 풍속이 어리석어 무예를 숭상한다.- 오직 정주에서만 과거에 오른 문사들이 많이 나왔다. 청남 사람들- 내지와 가까워서 문학을 숭상하는 풍속이 있다. (출처 : 김순경의 한식여행) ☆ 함경도 함흥부- 처음에는 온 도 백성들이 문학을 알지 못했는데, 성종 때 경헌공 이계손이..... 경서와 역사와 올바른 행실을 가르쳤다. 이로부터 문학이 크게 일어나 과거에 합격하는 자도 가끔 있었는데.....- 태조가 '서북 사람을 높이 쓰지 말라'는 명령을 남겼다. 그래서 평안 함경 두 도에는 300년 동안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없다. ☆ 황해도 활..

동아시아 역사 2017.01.07

고려 폭군 충혜왕의 업적 몇 가지 (이렇게 못난 왕도 업적이 있긴 있음)

☆ 1 행성行省 설치 제지 충혜왕 즉위년(1330) 7월, 무자일. 낭장郞將 김천우金天祐가 원나라로부터 돌아와서, "상국 조정에서 전 정동행성좌우사낭중征東行省左右司郞中인 만인蠻人 장백상蔣伯祥의 건의에 따라 우리나라에 행성行省을 설치할 것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보고했다. (출처 : 바이두 이미지) 경인일. 왕이 태사太師 우승상右丞相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이틀 만에 서한을 보냄) ...그런데 소문에 따르면 전 행성좌우사낭중行省左右司郞中 장백상蔣伯祥이 우리나라에 행성을 설치하고, 관원을 두어 아예 나라의 제도를 바꿀 것을 도당都堂에 건의했다하니, 모두가 놀라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내가 나라로 돌아와 왕좌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터에 갑자기 이런 말을 듣고 보니 어찌 두려움이 없겠습..

동아시아 역사 2017.01.07

환단고기 신시역대기 속 배달국 연대기 [역대 한웅 일람]

(출처 : 모든 석기시대인들은 비슷한 석기를 제작) ☆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배달한웅倍達桓雄 - 한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하늘을 열고(肇自開天) 백성을 낳아 교화를 베풀고 천경天經과 신고神誥를 가르치니 무리들이 잘 따르게 되었다. 이후에 치우천왕治尤天王이 땅을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서 군대를 조련하고 산업(興産)을 일으켰다. 때에 구한九桓은 모두 삼신三神을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고 소도蘇塗를 관리하고 관경管境을 관리하며 벌을 다스리는 것 등을 모두 다른 무리와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하나로 뭉쳐 화백和白을 하였다. 다른 해석 1. 아울러 지혜와 삶을 나란히 닦으면서 온전함을 이루었다.다른 해석 2. 이때부터 구한九桓은 전부 삼한三韓에 통솔되고 나라 안의 천제의 아들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불렀다. 배달한웅..

동아시아 역사 2017.01.06

환단고기 삼성기 속 인물전 [환국의 시작, 고구려의 건국]

☆ 삼성기전 상편三聖記全 上篇 환인桓因- 환국桓國을 세워 7세를 전함: 흑수黑水, 백산白山 한웅씨桓雄氏- 환인을 이어 배달倍達국을 세움: 흑수黑水, 백산白山, 천평天坪, 청구靑邱, 신시神市 치우천왕治尤天王- 배달 말기에 영토를 개척한 배달국왕: 청구靑丘 왕검王儉- bc2333, 아사달에 수도를 정하고 조선朝鮮을 세움: 불함산不咸山, 아사달阿斯達 팽우彭虞 - 왕검의 신하로 땅을 개척하라는 명을 받음성조成造 - 왕검의 신하로 궁실을 지으라는 명을 받음고시高矢 - 왕검의 신하로 농사를 장려하라는 명을 받음신지臣智 - 왕검의 신하로 글자를 만들라는 명을 받음 기성奇省 - 왕검의 신하로 의약을 만들라는 명을 받음나을那乙 - 왕검의 신하로 호적을 관리하라는 명을 받음희羲 - 왕검의 신하로 점치는 일을 관장하라는 명..

동아시아 역사 2017.01.06

환단고기에서 언급된 책들

※ 출처, 책명, 주요 내용 순 단군세기檀君世紀 구정도邱井圖 칠회력七回曆 - 임자 12년(B.C.2229), 신지神誌인 귀기貴己가 칠회력七回曆과 구정도邱井圖를 만들어 바쳤다. 배달유기倍達留記 - 신축 3년(B.C.2180), 신지神誌인 고글高契에게 명하여 배달유기倍達留記를 편수케 하였다. 육십갑자六十甲子 - 을축 4년(B.C.2096), 처음으로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사용하여 책력을 만들었다.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 - 기미 54년(B.C.1382), 지리숙支離叔이 주천력周天曆과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을 지었다. (출처 : 바이두 이미지) 태백일사太白逸史 표훈천사表訓天詞 대변경大辯經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 오제설五帝說 황제중경黃帝中經 - 오행치수의 법과 황제중경黃帝中經이라는 책은 태자 부루扶婁로부터 나와서 우사공虞司空..

동아시아 역사 2017.01.06

위나라와 오나라 고취곡 [형양 전투, 여포 생포, 적벽 전투]

중국의 군대에서는 병사의 사기를 높이고 한편으로는 오락을 제공하기 위해 옛날부터 군가를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 군가는 북과 피리로 반주를 하므로 고취곡鼓吹曲이라 불렸으며.... 위나라의 고취곡 12편은 한나라 말기부터 위나라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중요한 사건을 시대순으로 부른 조곡으로, 각각의 곡은 제목과 간단한 설명 및 노래의 본문으로 되어 있다. ☆ 위나라의 고취곡 (송서 참조 : 송서 145권 [클릭]) 제2곡 형양 전투 - 조공을 말하기言曹公也 [戰滎陽 汴水陂] 전형양 변수피[戎士憤怒 貫甲馳] 융사분노 관갑치[陳未成 退徐榮] 진미성 퇴서영[二萬騎 塹壘平] 이만기 참루평[戎馬傷 六軍驚] 융마상 육군경[勢不集 眾幾傾] 세불집 중기경[白日沒 時晦冥] 백일몰 시회명[顧中牟 心屏營] 고중모 심병영[同盟疑 計..

동아시아 역사 2017.01.06

호조식의 서진과 균전제의 북제

진무제 사마염은 "실로 창과 방패를 거두어야 할" 때라고 하여 주군의 병사를 모두 귀농시켰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호조식戶調式이라고 하는 징세 및 토지 제도의 법령을 반포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출처 : 中国历史人物--晋武帝:司马炎) ☆ 서진의 호조식 1. 정남(丁男 : 16~60세의 남자)을 호주로 하는 집은 매년 비단 3필과 면綿 3근을 조調(농산품의 납부를 의미)로 낼 것 2. 남자에게는 70묘, 여자에게는 30묘를 점전占田시킨다. 3. 정남에게는 50묘, 정녀丁女에게는 20묘, 차정남次丁男(13~15세 및 61~65세)에게는 그 반을 과전 시킨다. 4. 정丁, 차정次丁을 위와 같이 나이에 의하여 구별하는 규정 5. 궁벽하고 외진 지역에 사는 만이蠻夷 등에 대한 부과 규정 6. 1품관에는..

동아시아 역사 2017.01.05

동진 조적과 유곤, 관중에서 꺼진 서진의 마지막 불꽃

유곤劉琨은 조적을 가리켜, 명쾌하게 이치를 터득하고 있다고 칭찬하면서 말했다. "그는 젊었을 때, 왕돈王敦을 감탄케 한 사람이야." (1)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유효표의 주. (1) 우예虞預 진서晉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조적의 자는 사치士稚이며 범양范陽 주遒 땅 사람이다. 방일하고 활달하여 예의범절 따위를 익히지 않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는 한편 베풀기를 좋아했다.' (출처 ; 闻鸡起舞) 진양추晉陽秋에는 이런 말이 있다. '조적은 사공司空 유곤과 함께 호걸로서 세상에 이름이 자자했다. 24세 때 유곤과 같이 사주주부司州主簿로 부름을 받았다. 서로 정이 두터워 함게 이불을 덮고 잔 일도 있었는데 한밤 중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모두 일어나서 말했다. "이는 나쁜 소리만은 아니오." 두 사람은 ..

동아시아 역사 201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