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조선 팔도 사람들의 품성에 대해, 이중택의 택리지 - 하편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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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적힌 순서대로 나열


☆ 전라도


(고려 태조가) 견훤을 평정한 뒤에 백제 사람을 미워해, '차령 이남의 강물은 모두 (산세와 어울리지 않고) 엇갈려 흐른다'면서, '차령 남쪽의 사람을 쓰지 말라'는 명을 남겼다..... 우리 왕조에 들어와서야 드디어 이 금령이 느슨해졌다


노래와 여색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기는 습속이 있어 경박하고 간사한 사람이 많으며, 문학을 대단치 않게 여긴다. 그러므로 과거에 급제해 훌륭하게 된 사람의 수가 경상도에 미치지 못하니, 문학에 힘써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걸은 땅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타고나는 것이므로, (전라도의 인걸) 또한 적지 않다.


.....(전라도는) 산천에 기이하고 훌륭한 곳이 많은데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크게 드러난 사람이 없었으니, 모였던 정기가 한 번쯤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이 멘 데다 풍속이 더러우니,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전라도 떡갈비전라도 떡갈비

(출처 : 꼭 맛보고 싶은 전라도 대표 음식들)


광주목

- 서쪽으로 나주와 통하고 풍토와 기후가 깨끗하고 밝아, 예부터 경치가 훌륭한 마을이 많고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도 많았다


☆ 충청도(이중환의 출생지)


...서울과 가까워 풍속에 큰 차이가 없으므로, 터를 골라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다.


옥천

- 예부터 문학 하는 선비가 많이 나왔으니, 학사 남수문과 우재 송시열이 모두 이 고을 사람이다.


천안, 아산

- (설라산을) 동남쪽의 길방이라고 하는 까닭은 아산, 온양의 여러 마을에서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과 문학 하는 선비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충주목

- 국도의 동남쪽에 있으며 과거에 급제한 자가 많기로도 팔도 여러 고을 가운데 으뜸이니, 이름난 고을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백성이 많아 항상 구설이 많고 경박해서 살 곳이 못 된다. 그러나 이는 충주 고을만 가지고 논할 것이다.

- (가흥과 금천) 두 마을에는 과거에 급제해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도 많다.

- (북창) 서쪽은 기묘사화의 명현인 탄수 이연경이 살던 곳이다. 자손 10대에 걸쳐 끊임없이 과거에 합격하자, 사람들이 '강가의 명당'이라고 했다.


경기도 닭젓국찌개경기도 닭젓국찌개

(출처 : 지역별 대표음식과 그 유래)


☆ 경기도


수원부

- (연흥도) 고려 말엽에 종실 익령군 기는 고려가 장차 망할 것을 알았으므로..... 도망와 숨었다..... 지금은 신분이 낮아져 목장의 목자가 되었다.


한양부

- 이곳이 300년 동안이나 명성과 문물의 중심 지역이 되어 유풍을 크게 떨치고 학자가 무리 지어 나왔으니, 엄연한 하나의 중화다.


개성부

- 왕씨의 신하로서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큰 집안들 가운데 태조에게 신하로 복종하지 않으려는 자들은 모두 개성에 남고 따라가지 않았는데, 그 동네를 지방 사람들이 두문동이라고 했다. 태조가 그들을 미워해 (개성) 선비에게는 100년 동안 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명했다.


그래서 (개성에) 남아 살던 자의 아들과 손자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평민이 되어, 장사를 생업으로 삼고 선비의 학업을 닦지 않았다. 그렇게 300년이 지나고 보니 드디어 사대부라는 이름이 없어졌고, 서울 사대부 가운데도 (개성으로) 옮겨가 사는 자도 없게 되었다.


충청도 장국밥충청도 장국밥


ps1. 반전은... 이중환은... 함경도와 전라도에 가본적이 없습니다.

ps2. 예전 댓글은 아래에 있습니다.


Q1 :

전라도가 살만한 곳이 못 되던가;;;;;.......근데 전주가 함흥과 함께 조선왕조와 관련되는 곳인데;;;(???)


A1 :

그런 내용이 택리지에 나오긴 합니다. 포스팅 주제는 사람들 품성인지라 생략했지만요.


Q2 :

함경도 : 조사의, 이시애, 이징옥

전라도 : 정여립

평안도 : 홍경래


조선 시대에 임팩트 큰 반란이 이거 말고 또 뭐가 있었죠? 영조 즉위하고 소론이 경상도하고 충청도에서 반란 일으켰는데 그건 임팩트가 작고... 반란 때문에 차별하기 시작해서 그게 인식이 굳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쓴 게 아닐까요?


A2 :

택리지의 한계란, 이중환 본인이 전라도와 함경도는 직접 가보지 않아서 들은 얘기와 기존의 자료를 취합해서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님의 의견이 딱 바르다고 봅니다. 추가하자면, 외가와 친가 모두 남인이었던 이중환이 당파 싸움에서 패배해 집안이 몰락했다는 점도 참고해 봐야겠지요


당파로 인한 편견들도 분명 영향이 미쳤으리라 추측이 됩니다. 실제로 책을 읽어봐도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해 가며 당파에 관해 기술한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Q3 :

정여립의 난이 뭐가 임팩트가 컸나요? 군사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그냥 정여립이 죽도로 도망갔다가 자살하고 끝났는데. 그에 비해 이인좌의 난은 삼남 지방에 걸쳐 성 여럿을 점령했던 본격적인 반란이었습니다.


특히 이중환이 택리지를 쓴 시점이었던 18세기 중반은 영조가 세운 평영남비가 대구에 떡 서 있고, 경상도 출신인 사람들은 과거도 제대로 못보던 시절이죠. 그보다는 그냥 택리지를 쓴 이중환의 당파 색에서 근거를 찾아야 합니다. 이중환은 경상도를 기반으로 한 남인에 속해있었으니까요.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A3 :

명종 때 임꺽정이 나름 컸지요


A3 :

조선 시대 지방세력의 반란 중 탑급은 조사의, 이시애, 이징옥, 이괄, 홍경래, 이인좌. 얘네들일 듯........


A3 :

이중환은 18C 사람이고 홍경래의 난은 19C죠.


Q4 : 

광주목의 내용을 보니 택리지 전라도 비하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봐도 되겠군요.


A4 :


"그러나 인걸은 땅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타고나는 것이므로, (전라도의 인걸) 또한 적지 않다."


네. 아닙니다. 8도 사람들의 장단점이 모두 기술되어 있어서요.. 포스팅에선 생략했지만, 전라도 출신의 위인들에 대해서도 많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항상 안타깝지만, 지역감정 유발하려고 체리피킹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Q5 :

서북은 함경도가 아니라 평안도 아니었나? 춘원 이광수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라서 내 그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상하네요.


A5 :

평양이 서경인 이유도 서문으로 나가야 되는 곳이기 때문이라죠. 지도상의 위치가 아니라 다른 면에서 봐야 될 부분이란 생각이 드네요.


일본 도호쿠대(東北大)에서 발견한 조선팔도지도일본 도호쿠대(東北大)에서 발견한 조선팔도지도

(출처 : [도발적 문제제기] ‘대마도는 한국 땅’ 지도 발견)


Q6 :

함경도와 전라도에 저자가 안가도 택리지 자체가 인상비평에 가까운 이상 그다지 문제가 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급의 세밀한 인식은 조선 시대의 지식인들에겐 전반적으로 바라기 어렵습니다. 일본에 직접 갔던 신숙주의 해동제국기도 시바 료타로가 너무 빈약하다 까기도 했죠.


A6 :

아항, 그렇네요.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었군요.


A6 :

직접 가 본 적이 없어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직접 가지 않았어도 당시에 저런 말을 많이 들었으니 저렇게 써 놓았겠죠. 개인적으로는 전라도분들께 좋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어서 그리 나쁘게 만은 보지 않습니다만, 분명 문제 있다고 보는 분들도 많음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특히 북한의 이익에 직결된다 싶은 성향의 야권주자들의 출신이 전라도가 많음을 볼 때, 국내 노동자의 이익을 빌미로 북한의 이익에 앞장서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할 때가 있고요.


A6 :

직접 가보지 않았으니 들은 얘기로만 적었겠죠. 상식적으로도 그게 맞겠고요. 그렇지만, 이중환이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가에 대해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극히 몇몇 사람의 편향된 의견이 전부인 양 인용했을 가능성도 있거든요.


저는 이중환의 택리지... 참 좋은 책이란 생각은 하는데 함경도와 전라도에 대해선 보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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