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그날 10

조선 문종10. 문종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단종을 두고 눈을 감다)

"조선 문종10. 문종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단종을 두고 눈을 감다)" 왕실의 권력 공백 사태 단종을 두고 눈을 감은 문종의 마음? 문종은 생전에 아들 걱정이 많았고, 집현전 학자들과의 친분이 좋았습니다. 하루는 신숙주, 박팽년 등과 이야기를 나누다 어린 단종을 무릎 위에 앉히며, 이 아이를 당신들이 잘 보필해야 한다는 말도 했었죠. "임금이 병환이 나니 집현전의 여러 신하를 불러 토론하다가 무릎에 단종을 앉히고 '내가 이 아이를 경들에게 부탁한다'하고 술을 내려 주었다." 연려실기술 제4권 문종조 고사본말(文宗朝故事本末) 문종은 정말 계유정난의 조짐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문종은 생전에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세력과 조짐이 수상하다는 언관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종은 왕자(대군)라 해도 능력이 있다..

동아시아 역사 2017.06.04

조선 문종9. 단종과 경혜공주를 두고 사망한 문종

"조선 문종9.단종과 경혜공주를 두고 사망한 문종" 1452년 음력 5월. 궁에 죽음의 기운이 드리운다. 왕위에 오른 지 2년 3개월. 문종은 갑자기 생을 마감한다. 세자 나이 12살. 개국 60년 만에 조선은 권력 공백 사태를 맡게 된다. 김종서대 수양대군으로 나뉜 궁은 곧 긴장감에 휩싸인다. 문종의 죽음이 불러온 비극 문종실록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신민臣民의 슬퍼함이 세종世宗의 상사喪事보다도 더하였다.", 1452년 5월 14일 문종실록 비록 재위 기간은 짧았지만, 백성들에겐 좋은 기억이 남았던 왕이었습니다. 그 당시 백성들에게도 아버지 세종을 꼭 빼닮은 성군이란 이미지가 강했고, 어린 단종을 두고 세상을 떠난 안타까움이 더해졌을 겁니다. 문종을 죽음으로 몰아간 종기? 조선왕과 세자의 일..

동아시아 역사 2017.06.04

조선 문종8. 세자 섭정을 허락한 세종 (1442년)

"조선 문종8.세자 섭정을 허락한 세종 (1442년)" 1442년. 세종은 자신을 대신해 스물아홉 세자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할 뜻을 밝힌다. 1442년 세종실록 "세자로 하여금 서무를 처결하게 하고자 한다." "동궁에 세자가 사무를 처리하는 관원을 두게 하라" 갑작스러운 왕의 결정에 대신들은 강력하게 반발한다. 하지만,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왕의 강력한 왕의 의지에 반대하던 대신들도 세자의 섭정을 받아들인다.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세자 섭정. 세종은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조선 시대 세자 섭정은 일반적이었나? 일반적인 일은 아닙니다. 대리청정이라고 해서 공부하는 세자에게 간접적인 국가 경영을 맡아보게 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왕이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죠. ..

동아시아 역사 2017.06.03

조선 문종7. 현덕왕후 권씨와 재혼한 세자 문종

"조선 문종7.현덕왕후 권씨와 재혼한 세자 문종" 순빈 봉 씨의 동성애? 세자빈 입장. 시어머니 - 감시망을 동원해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다 지켜봄 (24시, 1년 365일) 시아버지 - 엄청 무서움. 말 한마디로 사람 여럿 죽이는 거 일도 아님. 삶이 갑갑한 세자빈 입장에서 희망은 남편의 사랑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에서 갑갑함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명이었습니다. 궁으로 들어갈 때 데려온 유모와 시녀였죠. 이 둘을 본방나인이라고 하는데 이 둘에게 이런저런 하소연하고 술도 마시며 마음을 의지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봉 씨는 어린 시녀 아이를 밤새도록 곁에 두며 일종의 집착증세를 보였는데, 이것이 동성애로 이어졌을 겁니다. 그리고, ..

동아시아 역사 2017.06.03

조선 문종6. 순빈 봉 씨 폐출되다. 문종의 두 번째 이혼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 씨가 폐출된 이유? 폐출 사유 1. 술 항상 방에 술병을 둘 정도로 술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게다가 술을 자주 마시는데 자주 취했어요. 취하면 여지없이 주사가 나왔는데, 그 버릇도 고약했습니다. 궁녀들을 때리기도 했고, 나를 업고 궁을 한 바퀴 돌라고도 했다죠. (궁에서 술을 자주 마시고 자주 취했던 순빈 봉 씨) 폐출 사유 2. 노래 세자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봉 씨는 시녀들에겐 작곡과 작사, 궁녀들에게 노래를 시켰습니다. 주제는 당연히 세자에 대한 나의 사랑이었죠. 요즘 시대라면 귀엽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당시로선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일입니다. 결정적으로, 문종은 노래를 싫어했습니다. (낭만적이거나 엽기적인 순빈 봉 씨) (문종은 노래와 춤을 싫어했는데, 순빈 봉 씨는 ..

동아시아 역사 2017.06.03

조선 문종5. 조선의 간택과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

"조선 문종5.조선의 간택과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은 어떤 인물? 실록에는 엄청난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인물로 기록이 되어있는데요. 일단 궁에 들어올 때 세종은 아들 문종이 용모에 불만을 가졌던 것을 떠올리며 용모의 중요성도 어필합니다. "세계世系와 부덕婦德은 본래부터 중요하나 혹시 인물이 아름답지 않다면 또한 불가不可할 것이다.", 1429년 8월 4일 세종실록 처음 세종은 규수의 문서를 한데 모아놓고 신하들과 한 번에 살펴보자 권유합니다. 그러자 허조 등은 이러할 경우 덕을 보지 못하고 용모만 보게 될 것이라며 반대 의견도 피력하죠. 이에 세종은 덕이란 것을 어떻게 종이만 보고 알 수 있느냐며 일단 전체적인 인상을 먼저 볼 것을 요구해 관철합니다. "잠깐 본 나머지 어찌 곧 그..

동아시아 역사 2017.06.03

조선 문종4. 세자빈 휘빈 김씨가 폐출된 이유

"조선 문종4.세자빈 휘빈 김씨가 폐출된 이유"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 씨가 폐출된 이유? 잘못을 했다기 보다는, 사춘기 문종이 당시 좋아하던 여성 효동, 덕금 때문입니다. 효孝와 덕德이 이름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아 외모, 효성, 지성을 두루 갖춘 여자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세자빈은 아버지가 점지해 줬기에 형식적으로 함께 살긴 했지만, 문종의 마음엔 효동과 덕금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세자빈은 실수를 하는데요. 두 여자를 질투해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희안한 비술을 사용합니다. 희안한 비술 1. 남자의 마음을 가져간 여자의 신발을 몰래 훔친다. 불에 태우고 그 재를 술에 타서 먹이면 나를 좋아한다. 실행 결과 : 세자빈은 효동과 덕금의 신발을 몰래 훔치긴 했으나 사전에 들켜버려 이 일은 실패. (미수) ..

동아시아 역사 2017.06.02

조선 문종3. 세 번 결혼한 남자 문종

"조선 문종3. 세 번 결혼한 남자 문종" 1429년 7월 20일, 세종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다. (당시 말로는 교지, 교서) 책봉된 지 2년에 불과한 세자빈을 폐한다는 내용이었다. 1429년 7월 20일 세종실록 "세자빈이 요망하고 사특하여 왕궁王宮 안에 용납할 수 없는 바이니, 폐출廢黜시켜야 할 것이다." 완벽한 왕세자로 세종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던 세자. 그에 단 한 가지 약점은 세자빈이었다. 당시 세자의 관심을 받지 못한 세자빈을 두고 궁에선 흉흉한 소문마저 돌았다. 세자는 마음을 잡지 못했고, 두 사람은 결국 파국을 맡는다. 세자와 세자빈 두 사람의 사이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 번 결혼한 남자 문종 며느리를 내보내는데 대국민 담화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정말 그 시대에 담화문이 있..

동아시아 역사 2017.06.02

조선 문종2. 문종의 생활기록부와 세종의 묘를 이장한 이유

"조선 문종2. 문종의 생활기록부와 세종의 묘를 이장한 이유" 자, 이젠 문종이 어떤 인물인지 그의 생활 기록표를 살펴보겠습니다. 문종 생활기록부 이름 : 이향 본관 : 전주 생년월일 : 1414년 11월 15일 사망일자 : 1452년 6월 1일 거주지 : 창덕궁, 경복궁 배우자 : 휘빈 김 씨, 순빈 봉 씨, 현덕왕후 자녀(정비) : 1남 2녀 (단종 이홍위, 경혜공주, 공주) 자녀(후궁) : 2남 3녀 외모 : 근사한 수염에 기품 있는 얼굴 (명나라 사신에게 인정받은 "아름다운 인물") 교육 : 세자 수업 (28년 8개월) 성격1. 성품이 너그럽고 인내심이 많음 성격2. 말수가 적고 신중하다 성격3. 부모에 대한 효심과 형제에 대한 우애가 깊다 성격4. 노래와 여색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나 완벽해..

동아시아 역사 2017.06.02

조선 문종1. 비극의 시작, 세자빈 권 씨 사망

"조선 문종1. 비극의 시작, 세자빈 권 씨 사망" 세종 23년(1441) 7월 23일, 왕실에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 (1441년 7월 23일 단종 탄생 (세종 23년)) 오랜 기다림 끝에 원손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원손이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세자빈 권 씨가 숨을 거둔다. (세자빈 권 씨. 1441년 7월 24일 단종 출산 후 하루만에 사망 (세종 23년)) 경사와 함께 찾아온 비극. 세자빈의 죽음은 왕실에 불어닥칠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었다. 문종 비극의 시작, 세자빈 권 씨 단종 낳고 죽던 날 문종은 우리의 역사상 처음으로 왕비가 안 계신 왕이었습니다. 왕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왕비가 없었던 왕이셨던 것이죠. 문종 또한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는데, 만약 왕비가 살아계셨..

동아시아 역사 2017.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