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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종5. 조선의 간택과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6. 3. 01:25

"조선 문종5.조선의 간택과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은 어떤 인물?


문종의 두번째 세자빈문종의 두번째 세자빈


실록에는 엄청난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인물로 기록이 되어있는데요. 일단 궁에 들어올 때 세종은 아들 문종이 용모에 불만을 가졌던 것을 떠올리며 용모의 중요성도 어필합니다.


트러블 메이커 순빈 봉씨트러블 메이커 순빈 봉씨


용모는 아름다웠던 순빈 봉씨용모는 아름다웠던 순빈 봉씨


"세계世系와 부덕婦德은 본래부터 중요하나 혹시 인물이 아름답지 않다면 또한 불가不可할 것이다.", 1429년 8월 4일 세종실록


처음 세종은 규수의 문서를 한데 모아놓고 신하들과 한 번에 살펴보자 권유합니다. 그러자 허조 등은 이러할 경우 덕을 보지 못하고 용모만 보게 될 것이라며 반대 의견도 피력하죠. 이에 세종은 덕이란 것을 어떻게 종이만 보고 알 수 있느냐며 일단 전체적인 인상을 먼저 볼 것을 요구해 관철합니다.


용모로 뽑아라 - 세종의 명용모로 뽑아라 - 세종의 명


"잠깐 본 나머지 어찌 곧 그 덕德을 알 수 있으리오. 이미 덕으로서 뽑을 수 없다면 또한 용모容貌로서 뽑지 않을 수 있겠는가.", 1429년 8월 4일 세종실록


이런 과정을 거쳐 뽑힌 사람이 순빈 봉 씨입니다.



돌발 질문. 간택 제도는 조선 특유의 제도일까요?


중국, 일본,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귀족을 포함한 왕족들의 일반적인 결혼 방식은 중매입니다.


왕실 결혼 방식은 중매왕실 결혼 방식은 중매


간택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 왕조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아무리 왕족이라 해도 혼인을 맺으려는 집안에서 거절 의사를 표시할 수도 있었죠.


간택 - 조선에만 존재간택 - 조선에만 존재


태조는 왕위에 오르고서도 자식들 혼인에 거절당하는 일이 반복되자, 앞으로는 전국의 처녀들을 다 모아 간택하겠다는 교지를 내립니다. (당시 사위, 며느리 고르는 일이 힘들긴 했음. 그런 태조 이성계조차도)


참조

위진남북조 시기 동진의 절대 권력자 환온 조차도 혼인이 힘들었습니다. 왕문도의 딸과 혼인하려 했으나 왕문도의 아버지는 어찌 군인 따위의 사람을 사위로 맞을 수 있느냐며 반대해 무산되었죠.


링크 : 동진 왕문도의 귀여운 버릇 [아버지 무릎에 앉기] [클릭]


간택의 유래-태종간택의 유래-태종


간택의 유래 - 태종이 사위를 고를 때 거절당한 것이 계기


어찌 보면 왕권 확립 차원에서 간택 제도를 시행했다고 볼 수 있으며, 왕실에서의 최초 사례가 바로 문종의 세자빈 휘빈 김 씨입니다.


간택의 시작간택의 시작


간택 - 왕권 확립 차원간택 - 왕권 확립 차원


공모절차 - 서류심사공모절차 - 서류심사


간택은 공식적으로 공모 절차를 거치며 전국에서 서류를 받습니다. 이후 서류 심사를 거치는데 이때 1차에서 6명, 2차에서 3명, 3차에서 1명을 선발합니다. 일종의 전국 오디션과도 같았으며 이 과정을 거치면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택 과정 - 3차에 1명간택 과정 - 3차에 1명



[총 10편]

조선 문종1. 비극의 시작, 세자빈 권 씨 사망 [클릭]

조선 문종2. 문종의 생활기록부와 세종의 묘를 이장한 이유 [클릭] 

조선 문종3. 세 번 결혼한 남자 문종 [클릭]

조선 문종4. 세자빈 휘빈 김씨가 폐출된 이유 [클릭]

조선 문종5. 조선의 간택과 문종의 두 번째 세자빈 [클릭] <- 지금 포스트

조선 문종6. 순빈 봉 씨 폐출되다. 문종의 두 번째 이혼 [클릭]

조선 문종7. 현덕왕후 권씨와 재혼한 세자 문종 [클릭]

조선 문종8. 세자 섭정을 허락한 세종 (1442년) [클릭]

조선 문종9. 단종과 경혜공주를 두고 사망한 문종 [클릭]

조선 문종10. 문종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단종을 두고 눈을 감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