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472

신라전 골품편 5 - 소성왕에서 희강왕 시대까지

※ 왕명, 이름, 직위, 등장 연도, 행적, 관련 지명순 ☆ 소성 김신술金神述왕의 외조부. 성목태후聖穆太后의 아버지 ☆ 애장 김헌충金獻忠 숙위宿衛, 왕자王子, 시비서감試秘書監806, 숙위로 당에 머물다가 신라로 귀국함 김헌창,정金憲昌,貞 이찬伊湌, 시중侍中, 도독都督, 도독都督807, 813, 814, 816, 821, 822, 807년에 시중이 됨. 822년에 아버지 주원이 왕이 되지 못했다 하여 반란을 일으킴: 무진주武珍州, 청주菁州, 웅천주熊川州, 완산주完山州, 사벌주沙伐州, 국원國原, 서원西原, 금관金官 김중공金仲恭808, 헌덕왕 언승의 동생이며 왕의 숙부 김제옹金悌邕 이찬伊湌809, 헌덕왕 언승의 동생. 형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왕을 살해함 김체명金体明809, 왕의 동생으로 언승과 제옹의 반란중..

동아시아 역사 2017.01.16

환단고기 계보 4 - 북부여, 가섭원 부여, 갈사국 계보

☆ 북부여 단군 계보 (6대, 존속연도 : 180년) 1. 해모수解慕漱 (재위 45년, 즉위, B.C.238) 임술 원년(B.C.239), 단제께서는 자태가 용맹하게 빛나시니,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그를 바라보며 과연 천왕랑天王郞이라 할 만하였다. 나이 23세에 하늘에서 내려오시니, 이는 47세 단군 고열가 57년으로 임술壬戌(B.C. 238) 4월 8일이라. 웅심산熊心山에 의지하여 궁실을 난변蘭邊에 쌓았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모자를 쓰시고 용광龍光의 칼을 차시며 오룡五龍의 수레를 타셨다. 따르는 종자 500인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엔 하늘로 오르시니 이에 이르러 즉위하셨다. 2. 모수리慕漱離 (재위 35년, 즉위, B.C.194) 3. 고해사高奚斯 (재위 49년, 즉위, B.C...

동아시아 역사 2017.01.15

신라전 골품편 4 - 신문왕에서 원성왕 시대까지

※ 왕명, 이름, 직위, 등장 연도, 행적, 관련 지명순 ☆ 신문 ☆ 효명 신목태후神睦太后692, 700, 성덕왕이 신문, 효소왕과 신목태후를 위해 삼층석탑을 세움: 황복사皇福寺, 선원가람禪院伽藍 (출처 : 황복사지삼층석탑) ☆ 성덕 지소부인智炤夫人 부인夫人712, 태종왕의 셋째딸. 712년에 부인이 되어 해마다 곡식 천석을 받게 됨 중경重慶 태자太子715, 717, 715년 태자가 되지만 717년 죽음. 시호는 효상孝殤 성,엄정왕후成,嚴貞王后 왕후王后716, 강신공의 옛 집을 사주어 내보내 그곳에 살게함 김근질金釿質 왕자王子, 낭장郞將726, 왕의 아우. 당에 조공을 바침 김사종金嗣宗 왕자王子, 사종果毅, 숙위宿衛728, 왕의 아우. 당에 조공을 바치고 숙위로 머무름 김지만金志滿 왕족王族, 태복경太僕卿..

동아시아 역사 2017.01.15

환단고기 계보 3 - 단군조선, 추로에서 고열가 시대까지

※ 단군 이름 - 재위 기간 - 재위 연도 26. 추로鄒魯 - 65 - B.C.1062 27. 두밀豆密 - 26 - B.C.997갑신 원년(B.C.997), 천해天海의 물이 넘쳐 아란산阿蘭山이 무너졌다. 이 해 수밀이국須密爾國, 양운국養雲國, 구다천국句茶川國 등이 모두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 28. 해모奚牟 - 28 - B.C.971경술 원년(B.C.971), 단제 앓으시니 백의동자白衣童子로 하여금 하늘에 기도하도록 하니 곧 병이 나으셨다. 29. 마휴摩休 - 34 - B.C.943 30. 내휴奈休 - 35 - B.C.909 31. 등올登 - 25 - B.C.874 32. 추밀鄒密 - 30 - B.C.849 33. 감물甘物 - 24 - B.C.819무자 7년(B.C.813), 영고탑 서문 밖 감물..

동아시아 역사 2017.01.14

신라전 골품편 3 - 선덕여왕에서 문무왕 시대까지

※ 왕명, 이름, 직위, 등장 연도, 행적, 관련 지명순 수천秀天김유신의 친척. 나쁜병에 걸려 밀본이 고쳐줌 진덕노추□□□奴追□□□ 갈문왕葛文王왕의 외조부. 아니부인阿尼夫人의 아버지 월명月明아니부인阿尼夫人의 아버지로 추정되지만 잘못된 오기임 ☆ 태종 김인문金仁問 파진찬波珍湌, 숙위宿衛, 좌령군위장군左領軍衛將軍, 압독주총관押督州摠管, 우효위대장군右驍衛大將軍, 군주軍主, 부대총관副大摠管, 대당장군大幢將軍, 장군將軍, 각간角干, 대당총관大幢摠管, 대각간大角干, 태대각간太大角干, 임해군공臨海郡公, 우효위원외대장군右驍衛員外大將軍, 계림주대도독개부의동삼사雞林州大都督開府儀同三司, 진군대장군鎭軍大將軍, 행우무위위대장군行右武威衛大將軍,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상주국임해군개국공上柱國臨海郡開國公, 좌우림장군左羽林將軍 태종의 ..

동아시아 역사 2017.01.14

한나라판 자유 연애 사건, 사마상여와 탁문군 일화

☆ 사마상여의 자허부 자허부는 한나라 때의 사마상여가 춘추시대에 벌어졌던 일을 빌어서 쓴 부賦이다. 여기에는 자허子虛와 오유烏有선생, 그리고 망시공亡是公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 물론 이 세 사람은 모두 가공의 인물로, 한대漢代에 사마상여가 자기의 생각을 춘추시대에 강대국인 초나라와 제나라를 배경으로 가지고 서술한 소설인 셈이다. 초나라의 자허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더니, 제나라 왕이 자허에게 제나라의 강성하고 위대함을 보이려고 경내의 모든 수레와 기병을 다 동원하여 사냥했다. 사냥을 마치고 즐거워한 자허는 오유선생을 찾아갔다. 이때 오유선생이 자허에게 사냥을 많이 하여 즐거우냐를 물었고, 자허는 사냥을 많이 해서 즐거운 것이 아니고 제왕과의 대화가 즐거웠다고 했다. 자허와 제왕이 대화한 내용은 제..

동아시아 역사 2017.01.13

당나라 말기 절도사에 대해서 [360doc 번역]

출처 - 唐朝末年的节度使 [클릭](오역 있을 듯, 의역을 잘못해서 오역된 곳도 있을 듯) 당나라 말기, 조정에서 권력을 휘두른 건 조정 요직과 군권을 장악한 환관이었다. 조정 바깥에서 권력을 휘두른 건 번진을 차지한 절도사로 권력은 황제의 손에 있지 않았다. 당나라는 나날이 쇠퇴해서, 이李씨 황제들은 이들에 조종/핍박을 받다가 어쩔 수 없이 선위하는 지경에 이른다. 3백여 년간 당나라 황제들이 그려내던 시대가 저물고, 5대10국이 시작된다. 당나라 말기에 일어난 난(안록산과 황소의 난)과 번진(절도사) 할거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742년인 당나라 현종 천보 원년, 10개의 절도사와 경략사를 두었는데(절도사 9, 경략사 1), 훗날 절도사들은 조정에 대항할만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도..

동아시아 역사 2017.01.13

환단고기 계보 2 - 단군조선, 왕검에서 솔나까지

☆ 단군조선 단군 계보47대, 존속연도 : 2096년 1. 왕검王儉 - 93 - B.C.2333이에 천하의 땅을 새로 갈라서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니, 삼한은 모두 오가五加 64족을 포함하였다. 2. 부루扶婁 - 58 - B.C.2240단제께서는 어질면서 다복하셔서 재물을 저장하니 크게 풍부하였으며, 백성과 더불어 함께 산업을 다스리시니 한 사람도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자가 없었다. 봄, 가을로 나라안을 두루 살펴보시고는 하늘에 제를 올려 예를 다하였다. 여러 왕들의 잘잘못을 살피시고 상벌을 신중히 하였으며 도량을 파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며 농사짓고 뽕나무를 심을 것을 권장하였다. 또 기숙사察를 설치하여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는 크게 진보하여 그 명성이 날로 떨쳐졌다. 3. 가륵嘉勒 - 45 - ..

동아시아 역사 2017.01.13

신라전 골품편 2 - 법흥왕에서 선덕여왕 시대까지

※ 왕명, 이름, 직위, 등장 연도, 행적, 관련 지명순 ☆ 법흥왕 김구해金仇亥, 김구충金仇充, 구차휴仇次休, 구형왕仇衡王 우두머리主532, 김유신의 증조부. 금관국주였지만 신라로 투항함. 가야 시조의 9세손 : 금관국金官國 김노종金奴宗, 세종世宗: 김구해의 장남 김무덕金武德: 김구해의 차남 김무력金武力 아찬阿湌, 군주軍主, 각간角干, 신주도행군총관新州道行軍摠管532, 553, 554,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구해의 삼남 : 신주新州, 관산성管山城 ☆ 진흥 동륜銅輪 왕태자王太子566, 572, 왕태자가 되지만 572년에 죽음 영실英失왕의 외조부. 식도부인息道夫人의 아버지 거칠부居柒夫, 황종荒宗 대아찬大阿湌, 파진찬波珍湌, 상대등上大等545, 551, 576, 내물왕의 5세손. 신라의 국사를 편찬함. 고구려..

동아시아 역사 2017.01.13

동진에서 화자가 되었던 사마유 vs 사마충 논란

당시 사람들이 모여서 진 무제晉 武帝(司馬炎, 사마염)가 제왕齊王(사마염의 친동생 사마유司馬攸)을 밖으로 내보낸 것과 혜제惠帝(사마충, 司馬衷)를 세운 것은 어느 쪽이 더 심한 실책이었는지를 논했다. (1) 대부분 사람은 혜제를 세운 것이 더 중대한 실책이었다고 했는데 환온은 말했다. "그렇지 않소. 아들에게 부업父業을 잇도록 하고, 동생에게 집안의 제사를 받들게 한 것인데, 그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오?" (2)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유효표의 주. (1) 진양추晉陽秋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왕 사마유의 자는 대유大猷이며 문제(사마의의 둘째 아들 사마소)의 둘째 아들이다. 효경孝敬 충성스럽고, 청아-공평했으며, 현인賢人에게 친절히 대하고 선비에게 겸양하며, 어질고 은혜로워 베풀기를 좋아했다. 문..

동아시아 역사 2017.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