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환단고기 계보 4 - 북부여, 가섭원 부여, 갈사국 계보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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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부여 단군 계보 (6대, 존속연도 : 180년)


1. 해모수解慕漱 (재위 45년, 즉위, B.C.238)

임술 원년(B.C.239), 단제께서는 자태가 용맹하게 빛나시니,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그를 바라보며 과연 천왕랑天王郞이라 할 만하였다. 나이 23세에 하늘에서 내려오시니, 이는 47세 단군 고열가 57년으로 임술壬戌(B.C. 238) 4월 8일이라.


웅심산熊心山에 의지하여 궁실을 난변蘭邊에 쌓았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모자를 쓰시고 용광龍光의 칼을 차시며 오룡五龍의 수레를 타셨다. 따르는 종자 500인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엔 하늘로 오르시니 이에 이르러 즉위하셨다.


기원후 2세기 때의 부여와 주변 세계기원후 2세기 때의 부여와 주변 세계


2. 모수리慕漱離 (재위 35년, 즉위, B.C.194)


3. 고해사高奚斯 (재위 49년, 즉위, B.C.169)


4. 고우루高于婁 (재위 34년, 즉위, B.C.120)

갑오 34년 10월 동명왕 고두막한이 사람을 보내와서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인데 장차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자 하니, 왕은 이 땅에서 옮겨가시오."


라고 하니 단제는 매우 곤란해졌다. 마침내 단제는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동생인 해부루海夫婁가 이에 즉위하였는데 동명왕은 여전히 군대를 앞세워 이를 위협하기를 끊이지 않으매 군신(君臣)이 매우 이를 어렵게 여겼다.


이때 국상國相인 아란불阿蘭弗이,


"통하通河의 물가 가섭迦葉의 벌판에 땅이 있는데 기름지고 오곡이 썩 잘됩니다. 서울을 둘만 한 곳입니다."


라고 하며 왕에게 권하여 도성을 옮겼다. 이를 가섭원부여迦葉原夫餘라 하며 또 동부여東夫餘라고도 한다.


5. 고두막高豆莫 (재위 22년, 즉위 B.C.108년)

계유 원년(B.C.108년), 이 해는 단군 고우루高于婁 13년이다. 제帝는 사람됨이 호탕하고 용맹하여 군사를 잘 다루었다.


일찍이 북부여가 쇠약해지고 한나라 도둑들이 왕성해짐을 보고 분명히 세상을 구할 뜻을 세워 졸본卒本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동명東明이라 하였는데 어떤 이들은 고열가高列加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바람의나라 속 대소왕바람의나라 속 대소왕


6. 고무서高無胥 (재위 2년, 즉위 B.C.59년)

계해 2년(B.C.58) 제가 영고탑을 순시하다가 흰 노루를 얻었다. 겨울 10월 제가 붕어하고 고주몽이 유언에 따라 대통을이었다.


☆ 가섭원 부여 계보 (3대, 존속연도 : 108년)


1. 해부루解夫婁 (재위 39년, 즉위 B.C.86)

을미 원년(B.C.86), 왕은 북부여北夫餘 때문에 제약을 받아 가섭원迦葉原 혹은 분능岔陵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옮겨서 살았다. 오곡이 다 잘 되었는데 특히 보리가 많았고 또 범, 표범, 곰, 이리 따위가 많아서 사냥하기 편했다.


갑진 10년(B.C.77), 왕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어느 날 산천에 제사 지내고 아들 있기를 빌었더니 타고 있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자 큰 돌을 마주 보고 서서 눈물을 흘렸다. 왕은 이를 이상히 여겨 사람들을 시켜 그 큰 돌을 굴리게 하였더니 어린애가 있었는데 금색의 개구리 모양이더라. 왕은 몹시 기뻐하며,


"이 아이야말로 하늘이 나에게 내리신 아기로다."


라고 하시며 곧 거두어 기르니,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고 장성하매 태자로 책봉하였다.


부여 금와왕 우표부여 금와왕 우표

(출처 : 우표로 환생한 ''부여 금와왕'')


2. 금와金蛙 (재위 41년, 즉위 B.C.47년)

정유 24년(B.C.24), 유화 부인이 돌아가셨다. 고구려는 호위병 수만으로 졸본으로 모셔와 장사지냈는데 황태후의 예로써 억지로 산 같은 능을 만들고 곁에 묘사廟社를 짓게 하였다.


3. 대소帶素 (재위 28년, 즉위 B.C.6년)

임오 28년(A.D.22), 2월 고구려가 나라의 힘을 다시 모아서 침범해 오니 왕은 몸소 무리를 이끌고 출전하였는데, 진흙탕을 만나 왕의 말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고구려 대장군 괴유怪由가 바로 앞에서 있다가 살해하였다. 그래도 부여군은 굴하지 않고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는데 큰 안개가 7일 동안이나 계속되니 고구려 열제는 몰래 병사를 이끌고 밤에 탈출하여 사잇길을 따라 도망쳐 달아나 버렸다.


☆ 갈사국 왕위 계보 (3대, 존속연도 : 47년)


1. ??? A.D.22

왕의 동생은 따르는 무리 수백 인을 데리고 길을 떠났는데 압록곡鴨綠谷에 이르러, 해두왕海頭王이 사냥 나온 것을 보고는 그를 죽이고 그 백성들을 취하였고, 그 길로 갈사수曷思水의 변두리를 차지하고는 나라를 세워 왕이라 칭하니 이를 갈사曷思라 한다.


위나암림의 고구려 태조왕위나암림의 고구려 태조왕

(출처 : 위나암림 10화)


2 ???


3. 도두都頭 (A.D.68)

갈사는 태조太祖 무열제武烈帝의 융무隆武 16년 8월에 이르렀을 때, 도두왕都頭王이 고구려가 날로 강해짐을 보고 마침내 나라를 들어 항복하니, 대저 3세 47년 만에 나라가 망했다. 


ps1. 황당고기 저자들은 불교 동아리에서 만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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