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환단고기 계보 2 - 단군조선, 왕검에서 솔나까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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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조선 단군 계보47대, 존속연도 : 2096년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


1. 왕검王儉 - 93 - B.C.2333

이에 천하의 땅을 새로 갈라서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니, 삼한은 모두 오가五加 64족을 포함하였다.


2. 부루扶婁 - 58 - B.C.2240

단제께서는 어질면서 다복하셔서 재물을 저장하니 크게 풍부하였으며, 백성과 더불어 함께 산업을 다스리시니 한 사람도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자가 없었다.


봄, 가을로 나라안을 두루 살펴보시고는 하늘에 제를 올려 예를 다하였다. 여러 왕들의 잘잘못을 살피시고 상벌을 신중히 하였으며 도량을 파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며 농사짓고 뽕나무를 심을 것을 권장하였다. 또 기숙사察를 설치하여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는 크게 진보하여 그 명성이 날로 떨쳐졌다.


3. 가륵嘉勒 - 45 - B.C.2182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라함.


가공의 문자 가림토가공의 문자 가림토


4. 오사구烏斯丘 - 38 - B.C.2137

임인 19년(B.C.2119), 하夏나라 왕 상相이 백성들에게 덕을 잃어버리니 단제께서는 식달息達에게 명령하여 람藍․진眞․변弁의 3부部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이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천하가 이를 듣고 모두 복종하게 되었다.


5. 구을丘乙 - 16 - B.C.2099

정축 16년(bc2084), 장당경藏唐京으로 행차하셔서 삼신三神의 단壇을 봉축封築하고 많은 환화桓花를 심었다.


6. 달문達門 - 36 - B.C.2083

B.C.2083, 동맹을 맺어 공물을 바쳤던 곳은 대국이 둘이요 소국이 스물이요 부락이 3,624 곳이었다


7. 한율翰栗 - 54 - B.C.2047


8. 우서한于西翰 - 8 - B.C.1993


9. 아술阿述 - 35 - B.C.1985


10. 노을魯乙 - 59 - B.C.1950


조선의 영토와 삼한조선의 영토와 삼한


11. 도해道奚 - 57 - B.C.1891

단제께서는 오가에게 명을 내려 열 두 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國仙의 소도蘇塗를 설치케 하였다. 많은 박달나무를 둘러 심은 후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한웅의 상像으로 모시고 여기에 제사지내며 웅상雄常이라고 이름했다.


12. 아한阿漢 - 52 - B.C.1834


13. 흘달屹達 - 61 - B.C.1782

갑오 16년B.C.1767, 주와 현을 나누어 정하고 직책의 한계를 정하였다. 관리는 권력을 겸하는 일이 없고 정치는 법칙을 넘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니 백성은 고향을 떠나는 일없이 스스로 일하는 곳에서 편안하여, 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넘쳤다.


천지화랑 캠프천지화랑 캠프


무술 20년(B.C.1763),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었다. 미혼의 자제로 하여금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익히게 하며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부르게 하였다. 국자랑들은 돌아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으므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불렀다.


14. 고불古弗 - 60 - B.C.1721

을해 56년(B.C.1666), 관리를 사방에 보내 호구를 조사, 계산하니 총계 1억 8천만구였다.


15. 대음代音 - 51 - B.C.1661


16. 위나尉那 - 58 - B.C.1610

구한의 여러 한汗들이 영고탑寧古塔에 모여 삼신三神과 상제에게 제사지냈으니, 한인, 한웅, 치우 및 단군왕검을 모시었다. 닷새 동안 크게 백성과 더불어 연회를 베풀고 불을 밝혀 밤을 지새며 경을 외우고 마당 밟기를 하였다. 한쪽은 횃불을 나란히 하고 또 한쪽은 둥글게 모여 서서 춤을 추며 애한愛桓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17. 여을余乙 - 68 - B.C.1552


18. 동엄冬奄 - 49 - B.C.1484


은과 주의 세력범위은과 주의 세력범위


19. 구모소 牟蘇 - 55 - B.C.1435


20. 고홀固忽 - 43 - B.C.1380

병신 36년(B.C.1345), 영고탑寧古塔을 개축하고 별궁을 지었다.


21. 소태蘇台 - 52 - B.C.1337

우현왕右賢王은 주변 좌우 신하와 사냥족獵戶 수천을 이끌고 마침내 부여夫餘의 신궁新宮에서 즉위하였다. 단제도 할 수 없이 옥책玉冊, 국보를 전하고 서우여를 폐하여 서인庶人이 되게 하였고, 단제께서는 아사달에 은거하시다가 마침내 붕어하셨다.


22. 색불루索弗婁 - 48 - B.C.1285

신미 36년(B.C.1250), 변방의 장수 신독申督이 병력을 믿고 난을 일으켰다. 이에 단제가 한동안 영고탑으로 피하니 많은 백성들이 따랐다.


23. 아홀阿忽 - 76 - B.C.1237

무자 5년(bc1233), 이한二韓 및 오가五加를 불러서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의논하는 것은 중지함.


24. 연나延那 - 11 - B.C.1161


25. 솔나率那 - 88 - B.C.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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