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당나라 말기 절도사에 대해서 [360doc 번역]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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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唐朝末年的节度使 [클릭]

(오역 있을 듯, 의역을 잘못해서 오역된 곳도 있을 듯)

 

당나라 말기, 조정에서 권력을 휘두른 건 조정 요직과 군권을 장악한 환관이었다. 조정 바깥에서 권력을 휘두른 건 번진을 차지한 절도사로 권력은 황제의 손에 있지 않았다. 당나라는 나날이 쇠퇴해서, 이李씨 황제들은 이들에 조종/핍박을 받다가 어쩔 수 없이 선위하는 지경에 이른다.


3백여 년간 당나라 황제들이 그려내던 시대가 저물고, 5대10국이 시작된다. 당나라 말기에 일어난 난(안록산과 황소의 난)과 번진(절도사) 할거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742년인 당나라 현종 천보 원년, 10개의 절도사와 경략사를 두었는데(절도사 9, 경략사 1), 훗날 절도사들은 조정에 대항할만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도 보유) 이에 당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소선제는 절도사 제도를 없앴다. 그러자 10개였던 번진은 50여 개로 분열된다.


절도사들이 할거한 지역은 아래와 같다. (대략大略(자치통감 출))


"봉상, 정난, 정해, 동주, 소무, 소신, 소의, 영새(정새), 영국(정국), 영원(정원)

보대, 보애, 봉국, 정난, 하서, 하양, 하중, 호국, 위기(위융), 위성(위정),

위무(복건 일대에서 위무군을 칭함), 위성, 서천, 행영, 진주, 사면행영, 청해, 무영, 무안, 무창,

무진, 무정, 무정贞, 무신, 무순, 보국, 감화, 충의, 충무, 충국군,


성덕, 노룡, 영원, 영국, 의무, 의성, 의창, 빈녕, 회남, 형남,

형주, 낙주, 자주, 동주, 산남서도, 산남동도, 검중, 진해, 진동, 진남,

진국, 영남동도, 영남, 영남서도, 창의, 광국, 위박(천웅天雄을 칭함), 평호, 천평, 선무,

선의, 치청, 석방, 옹주, 정강, 유주, 융소, 서강, 진녕, 안남,

영무, 보평 절도사 등" (여기서 언급된 곳만 83개 지역)


당나라 말기 번진할거당나라 말기 번진할거


수많은 절도사 중 세력이 강성했던 이는 "왕경숭, 진경선, 왕중영, 이극용, 주전충, 시부, 이무정, 왕건, 한건, 왕심지, 동창, 전류, 나홍신, 성예, 뇌만, 양행밀, 나소위, 조왕응, 왕처직, 양숭본" 등이다. (음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절도사들은 당나라 말기부터 수십 년간 서로를 공격하여, 세력을 키웠다. (황제가 절도사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소선제는 선위를 강요받았다. 당나라가 멸망할 즈음에도 절도사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영지를 지키며 세력 범위를 공고히 했다. 또한,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계속 발전한 절도사들도 적지 않았다.


☆ 주요 인물


양왕 주전충 :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량 건립. 이극용, 이무정, 왕건, 양악 등과 다른 절도사들은 후량의 정삭을 사용했다. 신하를 칭하며 조공도 바쳤다.


진왕 이극용 : 당나라 소종의 연호인 천우를 사용했다. 당나라 부흥을 기치로 후량과 패권을 다툰다. 아들 이존욱은 이극용의 기반을 토대로 후당을 건립한다.


기왕 이무정 : 당나라 소종의 연호인 천우를 사용했다. 나날이 병사와 영토가 줄어 황제를 칭하진 못했으나, 주변의 모든 것은 황제의 것을 따랐다. 훗날 후당에 칭신하고 진왕秦王에 봉해진다.


촉왕 왕건 : 가장 먼저 당나라 소종의 연호인 천복을 사용했다. 후에 전촉을 건립한다.


오왕 양행밀 : 오나라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의 아들 양악은 후에 회남절도사를 세습한다. 당나라 소종의 연호인 천우를 계속 사용했으며, 그의 동생 양융연이 오나라를 건립한다.


월왕(오왕) 전류 : 자신의 영지와 세력범위를 지키기 위해 후량에 신하를 칭하며 정삭을 사용했다. 후량에서 오월국왕에 봉하자 이를 받아들인다. 후에 백관을 설립하고 일체 제도와 예식은 황제의 것을 모방한다.


== 번역 끝 ==


저 넓은 지역에서 각자 황제를 칭하고, 배신과 화합을 반복했으니 중국 역사상 저런 개판은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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