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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 46

당고의 금, 당인의 확대 (후한서 당고열전 당고의 화)

당고의 금, 당인의 확대 (후한서 당고열전 당고의 화) 당인의 확대 후한서 당고열전黨錮 서, (당고의 금의 서막)처음 환제가 여오후蠡吾侯였을 때, 감릉甘陵의 주복周福에게 학문을 배웠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환제는 주복을 발탁하여, 외조가 실권을 잃어갈 당시 실질적으로 대신에게 비길 만한 권한을 가졌던 황제의 비서직에 해당하는 상서로 임명하였다. (이후 당고의 화에 실질적 영향을 미침) 그 무렵 같은 감릉군 출신으로서 수도권 장관인 방식房植은 재조在朝의 명사로서 평판이 자자했다. (당고의 금 당시 피해) 이에 당시 향인(감릉지방 사람들)은, "천하의 규구(規矩, 모범)는 방백무(房伯武 = 방식), 스승이라고 해서 지위를 얻은 자는 주중도(周仲道 = 주복)" 라는 노래를 퍼뜨렸다. 주가와 방가의 양쪽 빈객..

동아시아 역사 2016.11.12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2011년 한국 근현대사 (서평)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2011년 한국 근현대사 (서평) ※ 지난 2011년 7월 2일에 씀 76페이지 안중근 - 황해 해주 출생. 아명은 응칠.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상하이로 망명했으나 천주교 신부의 충고로 실력 양성을 위해 귀국하였다.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교육에 힘썼다. - 1907년 북간도를 거쳐 러시아령으로 망명,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 1909년 3월 동지들과 손가락을 자른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같은 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대한 황제 폐하를 위협하여 을사늑약을 맺고, 황제 폐하를 강제로 폐위시킨 죄를 물어 권총으로 사살하였다. -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81페이지 - 그러나 일제의 동화주의는 허울에 불과하였..

동아시아 역사 2016.11.12

난세의 간웅 조조, 그의 귀여운 모습들 (조맹덕의 풋풋함?)

난세의 간웅 조조, 그의 귀여운 모습들 (조맹덕의 풋풋함?) 생활 속의 조조는 몹시 사랑스럽습니다. 난세의 간웅 조조는 늘 볼품없는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었으며, 허리에는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를 차고 다니면서 수건 같은 하찮은 물건을 넣고 다녔고, 비단으로 만든 막 쓰는 모자를 쓰고서 빈객을 만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조맹덕은 남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으면 바로 말했고, 어떤 식으로 말하고 싶으면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말을 하다가 즐거워지면 배꼽을 잡고 웃다가 머리를 탁자 위의 술잔이나 그릇 속에 박아서, 모자가 음식물로 범벅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이 자세한 사정은 난세의 간웅 조조에 대해서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조만전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책의 본래 의도..

동아시아 역사 2016.11.12

죽림칠현 유령, 거짓말로 아내에게 술상 차림 받아냄 (세설신어)

죽림칠현 유령, 거짓말로 아내에게 술상 차림 받아냄 (세설신어) 세설신어 임탄任誕(죽림칠현을 중심으로 그들의 거리낌 없는 방종스런 행동)편 3화. 유령劉伶(죽림칠현 중 한명인 패국沛國의 유령)은 숙취로 인하여 매우 목이 말라서 아내에게 술을 달라고 청했다. 아내는 술을 버리고 술그릇을 부숴버리더니 울면서 하소연했다. "나리의 주량은 도를 넘고 있습니다. 섭생攝生(병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건강 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의 도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제발 끊으시라고요." 유령(죽림칠현 중 한명)이 말했다. "좋소. 내 힘으로는 끊을 수가 없으니 신神에게 기도하고 끊겠노라고 맹세하리다. 그러니 어서 제사에 올릴 술과 고기를 마련해주오." 아내는, "알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술과 고기를 신전神前..

동아시아 역사 2016.11.11

삼국지 주유와 장간이 억울한 이유, 삼국지연의 때문에

삼국지 주유와 장간이 억울한 이유, 삼국지연의 때문에 주유. 이 강동의 명장을 언급하면, 사람들은 우선 제갈량이 오나라 주유를 세 번 화나게 했다는 이야기나 "하늘이 이미 나를 태어나게 하고서 제갈량은 왜 또 내었는가!" 라며 탄식했던 일, "천하를 편하게 하겠다던 오나라 주유(주랑周郞)의 신묘한 계책, 결국에는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꼴이구나!" 라고 놀림을 받던 이야기 등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이야기들은 소설이지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 속의 제갈량은 결코 주유를 화나게 한 적이 없습니다. 설령 화나게 했다 하더라도 화가 나 죽을 정도로 심하게 놀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주유는 그릇이 매우 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삼국지의 그에 대한 평가는 "성격이 쾌활하고 도량이 넓었다"..

동아시아 역사 2016.11.11

북위 문명태후 풍씨(풍태후), 그녀의 프로필 [효문제와의 관계]

북위 문명태후 풍씨(풍태후), 그녀의 프로필 [효문제와의 관계] 문명태후 풍씨(풍태후, 효문제의 어머니)는 하북의 장락군張樂郡 신도信都 기현冀縣 사람으로 북연의 제2대 왕 풍홍馮弘의 손녀이고, 외가는 낙랑 왕씨로 호한의 혼혈녀이다. 오랫동안 이적夷狄 사이에서 생활하여 한족다운 관습이나 감정이 전혀 없었으며 선비족과 다를 바가 없었다. 풍태후(북위 원굉의 어머니, 효문제)의 고모가 세조 태무제의 좌소의로 입시入侍한 연유로 그녀는 14세에 문성제의 귀인이 되고 뒤에 황후가 되었으나 자식이 없었다. 문성제가 재위(452~465) 14년 26세를 일기로 죽자 12세의 황태자 홍弘이 즉위하니 이가 헌조 헌문제이다. 문명태후는 거기장군 을혼을 제거하고 헌문제가 유약하다는 이유로 수렴 정치를 하게 되었다. 풍태후 집..

동아시아 역사 2016.11.09

위진남북조시대 교과서, 이공범 위진남북조사

위진남북조시대 교과서, 이공범 위진남북조사 머리말 중, "30여 년 동안 중국사를 강의하면서 곤혹스러웠던 것은 수강생들에게 권장할 만한 참고도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책이 출간된 2003년만 해도 중국의 혼란스러웠던 위진남북조시대의 통사는 접해보기 힘들었습니다. 당시로선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줄 책이었음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자인 이공범 교수님도 서문에 밝혔지만, 사학과 학생들을 상대로 한 교과서 성격이 강한 책이기에 아마추어 독자들이 읽기엔 힘든 면이 있습니다. 아마추어 독자들이 원하는 연도별 시대 흐름과 전쟁 이야기, 거기에 속한 인물들의 입체적인 면들은 이 책을 통해선 접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당시 토지 제도나 귀족들의 청담, 조세 같이 흥미를 끌기 힘든 요소만 가득하다. (왜냐면, 교..

동아시아 역사 2016.11.08

유재시거, 조조의 인재 등용 개혁 정책

유재시거, 조조의 인재 등용 개혁 정책 조조가 유재시거唯才是擧를 외친 이유조조는 초기에, 종족과 향당 세력을 중핵으로 하는 소군단으로 출발하여 도적 즉, 농민 반란군을 토벌해서 항복한 군사와 또 몇몇 호족세력의 협조를 얻어 군세를 확대해 갔다. 이때는 한 왕조의 정치체제가 무너지고, 황건난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조조와 같은 이들은 여러 반란에 대항하고 또 대소 군벌이 자위를 위해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형성되고 상호대립하는 형세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군벌들은 대부분의 전현직 관료나 호족 출신들로 종족과 향당을 중핵으로 결집하여 자신과 그 일족의 생명, 재산,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군사력을 형성해서 군벌화하거나 또는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진 자의 비호 아래 들..

동아시아 역사 2016.11.07

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찬술 시기, 일문)

삼국지 배송지주로 인용된 위진세어 (찬술 시기, 일문) 찬술 시기위진세어의 찬술 시기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지 배송지 주에서 간보干寶(?~336)와 손성孫盛(302~374)이 위진세어의 고사를 많이 채록하여 그들의 진서晉書를 지었다는 기록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진서는 간보의 진기晉紀와 손성의 진양추晉陽秋를 말한다. 진기는 동진 명제明帝 태녕太寧 3년(325)에 찬술되었고, 진양추는 동진 폐제廢帝 해서공海西公 태화太和 5년(370)에 찬술되었다. 따라서 위진세어는 진기가 찬술된 325년 이전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판단된다. 위세민魏世民은 현존하는 위진세어 일문의 기사記事 중에서 가장 늦은 것이 서진 말 회제懷帝, 민제愍帝 때이므로, 곽반이 서진 말에 진 황실을 따라 강남으로 건너간..

동아시아 역사 2016.11.06

통만성이란 거대한 성의 특징 [5호16국 하나라 혁련발발]

통만성이란 거대한 성의 특징 [5호16국 하나라 혁련발발] 5호16국 시대, 혁련발발(하나라 세조(381~425), 흉노 출신으로 후진에서 독립함)은 일정 기간 수도를 두지 않고 유격 전술로 주위의 군소 세력을 병합함으로써 그 병력을 증강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10년 안에 힘을 길러 강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한 후 같이 떠돌아다니면서 유목 생활을 계속할 것을 제의했다. 통만성에 수도를 정한 것은 건국 후 10여 년이 지나서였다. 그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하나라 혁별발발이 통만성에 쏟은 정력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5호16국 시대, 10여 년간 찬 이슬과 혹한, 그리고 눈보라를 맞으면서 신고의 세월을 보내던 혁련발발이 이곳이다!하고 무릎을 치면서 보금자리로 정한 곳이 바로 통만성이었다. ..

동아시아 역사 2016.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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