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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측천의 무주혁명, 측천무후 최고의 업적 (당나라 -> 주나라)

무측천의 무주혁명, 측천무후 최고의 업적 (당나라 -> 주나라) 당나라 홍도 원년(683년)에 고종이 56세로 세상을 뜨면서 태자를 즉위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현(고종과 측천무후 사이의 셋째 아들)은 즉위하여 호를 중종이라 하고, 무측천을 황태후로 존대(무주혁명의 빌미)하였으며 배염을 재상에 임명했다. 한번은 중종이 배염 앞에서 자기의 장인 위현정을 재상으로 추천하자 배염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당나라 중종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하를 전부 위현정에게 준다 해도 큰일 날 것이 없다." 이 말이 무측천의 귀에 들어가자 중종은 황제가 된 지 두 달 남짓 만에 쫓겨나 노릉왕으로 강등되었다. (측천무후는 무주혁명을 위해 권력자들을 이렇게 제거했다) 중종을 폐위한 무측천은 넷째 아들 이단을 황위에 앉혔..

동아시아 역사 2016.11.04

칠종칠금, 제갈량의 남방 정벌과 촉나라의 기초 확립

칠종칠금, 제갈량의 남방 정벌과 촉나라의 기초 확립 삼국지연의에 의해 널리 소개된 제갈량의 칠종칠금 고사는 소설 형식으로 각색되어 사실과는 다른 점이 많다. 이 칠종칠금 문제를 다룬 사서로는 정사 삼국지와 동진 시대 상거가 편찬한 화양국지의 남중지南中志, 그리고 당나라 시대 번작이 편찬한 만서蠻書가 전부다. 그러나 이들의 기록은 매우 간단하다. 특히 삼국지에는 후주(유선), 여개, 양흥, 마량, 이회 등의 열전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인구에 회자하는 이 사건을 주도한 제갈량의 열전의 칠종칠금은, "건흥 3년 봄 제갈량이 무리를 이끌고 남정에 나섰고 그해 가을 모두 평정했다. 그곳으로부터 군사자금이 나오게 되어 나라가 부유하게 되었다. 이에 군사를 정비하여 대거大擧(북벌)를 기다렸다." 가 전부다. 227..

동아시아 역사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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