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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5 2

윤호, 조선 개국공신을 몰랐던 고려 공민왕

윤호, 조선 개국공신을 몰랐던 고려 공민왕 당나라 이신은 사기 이사 열전을 읽고 독이사전시讀李斯傳詩 그를 평가했으며, "권력으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여러 사람을 속이려 하는 것"이라는 뜻의 일수차천一手遮天이란 고사성어도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재위한 지 2년째 되던 1393년. 조선 개국의 2등 공신이자 문무를 겸비했던 판삼사사 윤호가 명나라로 가던 중 사망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2년(1393) 하성절사賀聖節使인 판삼사사判三司事 윤호尹虎가 금암역金巖驛에서 졸卒하였다. 부고訃告가 들리니 임금이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게 하였다 ... 일찍이 공민왕대에 벼슬하였는데, 공민왕이 그와 더불어 바둑을 두니, 윤호(조선 개국공신 2등)는 이기지 아니하였다. (공민왕이)명하여 옛날의 시詩..

동아시아 역사 2016.11.15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부생은 오호십육국 전진 초대 황제인 부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애꾸에 성정이 포악했다고 합니다. 저족의 위진남북조 시대 전진秦 황족은 지나칠 정도로 도참을 신봉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부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도참인 오양삼안五羊三眼(양 세 마리에 눈 다섯 개)을 따라 애꾸눈인 부생을 태자로 삼습니다. 아래는 삼국지 다음 이야기 1권 381p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는 부생에 대한 위진남북조 북위의 은사 조일趙逸의 언급이 실려 있다. 낙양가람기는 북위 때 기성 태수 양현지楊衒之가 낙양의 사찰에 관한 전설과 고적 등을 기록해 놓은 문집이다. 조일의 언급은 진서秦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부생은 용맹하고 술을 좋아했으나 어질..

동아시아 역사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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