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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자 전진 부견의 실패 [현실을 망각한 저족의 영웅]

이상주의자 전진 부견의 실패 [현실을 망각한 저족의 영웅] 위진남북조 시대는 두 가지 정치, 사회의 흐름이 주도한 시대였다. 귀족주의와 종족주의가 그것이다. 학계에서는 이 시대를 귀족사회, 혹은 민족 모순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부견은 당시 사회의 흐름을 완전히 거부했다. 부견은 종실 제왕의 작위부터 강등했다. 왕王을 공公으로 하고, 왕호를 모두 공호로 내렸다. 당연히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한 법치주의자였다. 통상 법치는 나쁜 것으로 예치 혹은 덕치의 반대 개념으로 파악되지만, 법치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는 나라가 안정된 시기에는 예치가, 천하가 혼란스러울 때는 법치가 당연하다 생각했다. 문제는 법 적용의 공평, 타당성인데, 부견은 정말 자기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동아시아 역사 2016.11.05

무측천의 무주혁명, 측천무후 최고의 업적 (당나라 -> 주나라)

무측천의 무주혁명, 측천무후 최고의 업적 (당나라 -> 주나라) 당나라 홍도 원년(683년)에 고종이 56세로 세상을 뜨면서 태자를 즉위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현(고종과 측천무후 사이의 셋째 아들)은 즉위하여 호를 중종이라 하고, 무측천을 황태후로 존대(무주혁명의 빌미)하였으며 배염을 재상에 임명했다. 한번은 중종이 배염 앞에서 자기의 장인 위현정을 재상으로 추천하자 배염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당나라 중종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하를 전부 위현정에게 준다 해도 큰일 날 것이 없다." 이 말이 무측천의 귀에 들어가자 중종은 황제가 된 지 두 달 남짓 만에 쫓겨나 노릉왕으로 강등되었다. (측천무후는 무주혁명을 위해 권력자들을 이렇게 제거했다) 중종을 폐위한 무측천은 넷째 아들 이단을 황위에 앉혔..

동아시아 역사 2016.11.04

칠종칠금, 제갈량의 남방 정벌과 촉나라의 기초 확립

칠종칠금, 제갈량의 남방 정벌과 촉나라의 기초 확립 삼국지연의에 의해 널리 소개된 제갈량의 칠종칠금 고사는 소설 형식으로 각색되어 사실과는 다른 점이 많다. 이 칠종칠금 문제를 다룬 사서로는 정사 삼국지와 동진 시대 상거가 편찬한 화양국지의 남중지南中志, 그리고 당나라 시대 번작이 편찬한 만서蠻書가 전부다. 그러나 이들의 기록은 매우 간단하다. 특히 삼국지에는 후주(유선), 여개, 양흥, 마량, 이회 등의 열전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인구에 회자하는 이 사건을 주도한 제갈량의 열전의 칠종칠금은, "건흥 3년 봄 제갈량이 무리를 이끌고 남정에 나섰고 그해 가을 모두 평정했다. 그곳으로부터 군사자금이 나오게 되어 나라가 부유하게 되었다. 이에 군사를 정비하여 대거大擧(북벌)를 기다렸다." 가 전부다. 227..

동아시아 역사 2016.11.04

5대10국 혼란기를 다룬 책, 오대십국지 (송태조 조광윤이 통일)

5대10국 혼란기를 다룬 책, 오대십국지 (송태조 조광윤이 통일) 삼국지 다음 이야기의 저자인 신동준 씨의 5대10국 주제인 책입니다. 혼란스러웠던 당나라 말기부터 송나라의 건국까지를 다룬 책은 여태 없었습니다. 독자들이 혼란기인 오대십국 시대를 접하려면, 상대적으로 출간된 책이 많은 요나라와 금나라의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거나, 자치통감 등의 1차 사료를 봐야 했었죠. 그게 아니라면 커다란 그림이 잔뜩 박힌 그림책을 봐야 했습니다. (초중생용 역사 만화책) 신동준씨의 오대십국지는 이런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해줄 단비와 같은 책입니다. 당나라 말기의 난세와 5대10국의 시작을 모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대십국五代十國 제가 이 시기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책 자체의 오류나 무리한 주장 등에 대해선 언급할..

동아시아 역사 2016.11.03

남조 송나라와 제나라 교체배경 (위진남북조 시대 송문제, 소도성)

남조 송나라와 제나라 교체배경 (위진남북조 시대 송문제, 소도성) 송나라 문제가 무인 심경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창백한 지식층의 북벌론을 채용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문제 일대는 어쨌든 문치로 기운 시대였다. 그러나 유씨 집안에 잠재한 무인의 피 혹은 무인이 가지는 억제하기 어려운 권력욕의 불길은 5세기 후반(황족의 할거, 제나라 고제 할거)에 들어가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453년 송나라 문제는 황태자에게 암살되었다. 친위군을 장악한 황태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황족이나 그 밖의 사람들을 계속 희생의 제물로 바쳤다. 그러다가 강주(강서성 구강현)의 군단장으로 있던 황자 유준駿이 제일 먼저 병력을 이끌고 수도로 달려가 황태자의 친위군을 혁파하고 이 폭거를 분쇄했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앙갚음한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 역사 2016.11.03

수문제가 아끼던 조조의 업도를 불태우다 (삼국지 업성)

수문제가 아끼던 조조의 업도를 불태우다 (삼국지 업성) 조조 이후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370여 년간이나 영화를 누렸던 업도는 수문제 때문에 옥수수밭에 묻혀있게 되었다. 조조의 업도가 훼손된 것은 그곳을 근거지로 한 실력자가 패배했기 때문이다. 수나라가 건국할 즈음인 580년 업도는 당시 실력자인 양견(수문제)의 지시로 불태워짐으로써 도시의 지위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양견의 찬탈을 반대하던 상주총관 울지행이 이곳을 근거지로 해서 군사를 일으켰으나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승리자 양견은 조조가 세웠던 업성을 불태우고 그곳 주민들을 남쪽 안양으로 옮기라고 명령하였다. (수문제 이전 시대) 서방의 북주와 화북 통일을 다투던 북제가 망한 것이 577년이었으니 바로 3년 후의 일이다..

동아시아 역사 201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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