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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 46

신라 마복자 명단과 그 이유 [화랑세기의 색공]

신라 마복자 명단과 그 이유 [화랑세기의 색공] ※ 이름, 생부生父 - 생모生母, 받아들인 아버지 : 마복자가 된 이유 명단 순서는 위와 같고, 아래 글에 보이는 새아버지가 마복자의 아버지를 말합니다. 생부는 새아버지가 아닙니다. 위화랑魏花郞, 아버지 : 섬신공剡臣公어머니 : 벽아부인碧我夫人 새아버지 : 비처毗處 - 어머니가 총애를 받아 비처왕의 마복자가 되었다. 오도吾道아버지 : 묘심妙心어머니 : 선혜후善兮后 새아버지 : 비처毗處 - 비처의 딸인 선혜후의 동생이지만 아버지는 묘심으로 마복자일 가능성이 있음. (출처 : 신라시대 충격적인 문화) 옥종玉宗아버지 : 세종世宗어머니 : 미실美室 새아버지 : 진지왕眞智王 - 제가 이에 친히 해궁에 거등하여 서로 보고 … 눈물을 흘렸다. 미실이 감동하고 다시 마음..

동아시아 역사 2016.11.17

[삼국지] 동탁은 황제가 되려했을까? 한나라 헌제를 폐위한 필연성

[삼국지] 동탁은 황제가 되려했을까? 한나라 헌제를 폐위한 필연성 현 황제에 대한 태도는 동탁이 가장 난폭했는데, 그는 황제를 폐위했습니다. 동탁은 도성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황제를 바꾸어야 한다고 제기합니다. 이유는 그 자신의 말에 따르자면, 소제 유변이 우매하고 유약한 반면 진류왕 유협은 성주聖主의 자질(요 임금의 초상화와 닮은 외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삼국지 동탁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전략이나 한나라 헌제가 등에 따르면, 동탁이 도성에 들어왔을 때 낙양은 이미 크게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대장군 하진이 환관들에 의해 피살당하고, 14세의 소제 유변과 그 동생인 9세의 진류왕 유협(후에 한나라 헌제)은 민간에서 떠돌다가 천신만고 끝에 도성으로 ..

동아시아 역사 2016.11.17

신라 풍월주 계보, 화랑세기 김대문의 평가

신라 풍월주 계보, 화랑세기 김대문의 평가 1. 위화랑魏花郞父 - 섬신剡臣 : 화랑의 시조이고 사문의 아비이며, 청아靑我의 손자이고 벽아碧我의 아들이다. 생시에는 선仙이고 죽은 후에는 부처로서 원만하게 늘 존재하니 공덕이 모자람이 없도다.母 - 벽아부인碧我夫人 2 - 미진부未珍夫父 - 아시阿時 : 색色으로 섬기어 충성을 다했으며, 용맹으로 나라를 받들고 또한 그 공을 다하였다. 부인 묘도는 위화랑공의 손녀인데, 배필로 삼아 미화를 낳으니 천도天道가 아득하고 오래도다.母 - 삼엽궁주三葉宮主 3. 모랑毛郞父 - 법흥왕法興王 : 동성왕의 아름다움이요 위화랑의 사위다. 대왕의 아들이고 태후의 사랑이다.母 - 보과공주宝果公主 4. 이화랑二花郞父 - 위화랑魏花郞 : 이화의 풍류화랑도는 신라의 청담이라, 귀족의 자손..

동아시아 역사 2016.11.16

윤호, 조선 개국공신을 몰랐던 고려 공민왕

윤호, 조선 개국공신을 몰랐던 고려 공민왕 당나라 이신은 사기 이사 열전을 읽고 독이사전시讀李斯傳詩 그를 평가했으며, "권력으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여러 사람을 속이려 하는 것"이라는 뜻의 일수차천一手遮天이란 고사성어도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재위한 지 2년째 되던 1393년. 조선 개국의 2등 공신이자 문무를 겸비했던 판삼사사 윤호가 명나라로 가던 중 사망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2년(1393) 하성절사賀聖節使인 판삼사사判三司事 윤호尹虎가 금암역金巖驛에서 졸卒하였다. 부고訃告가 들리니 임금이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게 하였다 ... 일찍이 공민왕대에 벼슬하였는데, 공민왕이 그와 더불어 바둑을 두니, 윤호(조선 개국공신 2등)는 이기지 아니하였다. (공민왕이)명하여 옛날의 시詩..

동아시아 역사 2016.11.15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부생은 오호십육국 전진 초대 황제인 부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애꾸에 성정이 포악했다고 합니다. 저족의 위진남북조 시대 전진秦 황족은 지나칠 정도로 도참을 신봉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부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도참인 오양삼안五羊三眼(양 세 마리에 눈 다섯 개)을 따라 애꾸눈인 부생을 태자로 삼습니다. 아래는 삼국지 다음 이야기 1권 381p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는 부생에 대한 위진남북조 북위의 은사 조일趙逸의 언급이 실려 있다. 낙양가람기는 북위 때 기성 태수 양현지楊衒之가 낙양의 사찰에 관한 전설과 고적 등을 기록해 놓은 문집이다. 조일의 언급은 진서秦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부생은 용맹하고 술을 좋아했으나 어질..

동아시아 역사 2016.11.15

삼국지 방통이 사마휘를 만나려 2천 리 길을 떠난 사연

삼국지 방통이 사마휘를 만나려 2천 리 길을 떠난 사연 남군南郡의 방사원龐士元(방통, 龐統)은 사마덕조司馬德操(사마휘, 司馬徽)가 영천潁川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2천 리의 먼 길을 일부러 찾아갔다. 도착하자 마침 사마덕조는 뽕을 따고 있었다. 방사원은 수레 안에서 말을 걸었다. "사나이가 처세하는 데는 금인자수金印紫綏(금인金印)이란 금으로 만든 도장(圖章, 자수紫綏는 호패의 술로 출세를 의미함)를 띠고 다녀야 한다고 들었소이다. 훌륭한 기량을 지니고 잇으면서 어찌 실이나 잣는 여자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1) 사마덕조가 대답했다. (2) "어서 수레에서 내리시구려. 당신은 단지 지름길을 가는 신속성이나 알고 있을 뿐,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소이다. 옛날 백성伯..

동아시아 역사 2016.11.14

사마휘를 얕보던 삼국지 유표 (사마덕조는 서생?)

사마휘를 얕보던 삼국지 유표 (사마덕조는 서생?) 사마휘별전司馬徽別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사마휘의 자는 덕조, 사마덕조라고도 함) '사마휘의 자는 덕조德操이며 영천 양적 사람이다. 인물의 기량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형주에 있을 때 자사 유표가 암우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선인善人을 해칠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입을 다물고 담론하는 일이 없었다. 당시 누군가가 어떤 인물에 대하여 사마덕조에게 묻는 일이 있으면 그 고하高下를 비평하는 일 없이 언제나 좋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나무랐다. "남이 물어오면 당신은 상세하게 대답해 주셔야 하겠거늘 덮어놓고 좋소 좋소라고만 말씀하시니, 그러면 애써 질문한 의미가 없을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사마휘는 말했다. "당신 말도 좋소." 완곡하여 ..

동아시아 역사 2016.11.14

한나라 노식의 출생에 얽힌 충격적인 비밀 (공씨지괴 노충)

한나라 노식의 출생에 얽힌 충격적인 비밀 (공씨지괴 노충) 공씨지괴孔氏志怪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노충盧充(한나라 노식의 조상)은 범양范陽 사람이다. 그의 집 서쪽 30리 되는 곳에 최소부崔少府의 묘가 있었다. 노충은 동지 전날 자기 집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 노루를 발견하자 활을 들고 쏘았다. 화살이 명중하여 노루가 쓰러졌는데 곧 다시 일어섰다. 노충은 그 뒤를 따라가다가 어느덧 멀리까지 가고 말았다. 그러자 그 길 북쪽 1리가량 되는 곳에 고관의 저택 대문과 같은 것이 보였다. 문지기가 말했다. "들어오시지요." 노충은 물었다. "이곳은 어느 분 저택인가요?" 문지기가 대답했다. "소부 나리 댁입니다." 노충이 말했다. "이런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어찌 고귀한 분을 뵈올 수 있으리까?" 그러자 곧 한..

동아시아 역사 2016.11.14

사마소가 놀리던 삼국지 등애의 말더듬 버릇

사마소가 놀리던 삼국지 등애의 말더듬 버릇 등애鄧艾는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이야기하려고 하면, "애......애......" 라고 했다. (1) 진晉 문왕文王(사마소)이 그것을 비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애......애......'라고 하는데 누가 애라는 것이오?" 등애가 사마소에게 대답했다. "봉鳳아 봉아라고 말합니다만 결국 봉은 한 마리입니다." (2) 유효표의 주. (1) 위지魏志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등애의 자는 사재士載이며 극양棘陽 사람이다. 어렸을 때 전농도위典農都尉 밑에서 송아지를 사육했었다. 12세 때 어머니를 따라 영천潁川에 갔는데 옛날 태구장太丘長이었던 진식陳寔의 비문을 읽었다. 그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는 말은 세상의 모범이요, 하는 행동은 선비의 준칙이었다." 그래..

동아시아 역사 2016.11.13

가남풍(가황후) 아버지 가충의 후처 곽괴 이야기

가남풍(가황후) 아버지 가충의 후처 곽괴 이야기 가충의 후처 곽씨郭(곽괴郭槐, 가남풍(가황후) 어머니)는 투기가 심했다. 여민黎民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태어난 지 갓 한 돌이었다. 가충이 밖에서 돌아왔을 때, 유모가 아이를 안고 정원에 있었는데, 아이가 가충을 보고 좋아서 뛰자, 가충이 유모에게 다가가서 유모 손안에 있는 아이에게 입을 맞추었다. 곽씨는 이 모습을 멀리 보고 가충이 유모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곧바로 그녀를 죽여 버렸다.아이는 슬픔 속에서 유모를 그리며 울었고, 다른 젖을 먹지 않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곽씨는 그 후 끝내 아들을 낳지 못했다. 유효표의 주.진제공찬晉諸公寶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곽씨는 바로 가황후賈皇后(가남풍)의 모친이다. 성품이 고상했으며, 가황후에게 ..

동아시아 역사 201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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