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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시거, 조조의 인재 등용 개혁 정책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1. 7. 07:18

유재시거, 조조의 인재 등용 개혁 정책


조조가 유재시거唯才是擧를 외친 이유

조조는 초기에, 종족과 향당 세력을 중핵으로 하는 소군단으로 출발하여 도적 즉, 농민 반란군을 토벌해서 항복한 군사와 또 몇몇 호족세력의 협조를 얻어 군세를 확대해 갔다. 이때는 한 왕조의 정치체제가 무너지고, 황건난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조조와 같은 이들은 여러 반란에 대항하고 또 대소 군벌이 자위를 위해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형성되고 상호대립하는 형세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군벌들은 대부분의 전현직 관료나 호족 출신들로 종족과 향당을 중핵으로 결집하여 자신과 그 일족의 생명, 재산,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군사력을 형성해서 군벌화하거나 또는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진 자의 비호 아래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강한 군사 집단은 무력으로 약소 집단을 압도, 흡수해서 군사, 정치 세력을 확충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소규모 집단은 당장 존재를 위하고 장차 도약을 위해서는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대세력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조조 일러스트[창천항로 주인공 조조] 유재시거


조조에게 유재시거가 필요했던 이유

한편 조조는 사대부층이 천시하는 환관의 후손으로 처음에는 사대부층들의 협력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젊은 시절 그는 임협방탕任俠放蕩(사내다움을 뽐내며 멋대로 논다는 의미)하여 그렇게 좋은 평을 받지도 못했다. 그런 항상 정치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전제왕조 아래서 사대부와 호족들은 관계 진출과 정치 참여를 목적으로 삼는 권력 지향성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황제권이나 그 권력 체제 안에서 실력자 또는 그 집단과 밀착된 관계를 맺어 관위를 얻어 정치참여의 기회를 잡으려고 했다.


이런 정치권력 지향성을 갖고 있었던 호족, 사대부들에게 매우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하고, 거기에다 한 왕조의 헌제를 받들어 군사의 최고 사령관인 대장군에 이어서 사공에 서임 된 조조야말로 바로 왕조 권력체제에서 실력자로 비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협력함으로써 정권에 접근할 수 있고 동시에 혼란의 세태 속에서 명철보신明哲保身(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일을 잘 처리하여 자기 일신을 그르치지 않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리하여 조조는 그에게 합류, 편입된 크고 작은 군사집단의 지도자들을 한 왕조의 관료등용제의 한 방법인 벽소제를 통해서 적절한 관직에 서임敍任함으로써 그들의 권력 지향성을 충족시키고 동시에 그들의 휘하 장병과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민중을 지배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이것은 조조 처지에서 본다면 자기 세력을 확대,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 행위였다. 조조는 이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여 각지의 크고 작은 군사세력과 유능한 인재를 자기 진영에 흡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유재시거를 외치며 더 많은 인재를 원했다.


그는 건안 원년(196)부터 대장군, 사공, 승상의 최고 관직에 재임하면서 한 왕조의 관료등용제인 징소, 벽소 방법을 통해서 자기 세력을 관계에 부식扶植(힘이나 영향을 미치어 사상이나 세력 따위를 뿌리박게 함)해갔다.


즉 조조는 이미 한 왕조의 관리였던 자 가운데서 장래가 촉망되고 유능한 자를 한 왕조에 표를 올려 발탁, 승진시켜 자신의 협력자로 만들고 또 벽소제를 통해서 연속을 임용하여 피벽소자와 고리라고 하는 예속적인 관계를 맺었다.


유재시거 조조 인재 등용[인재 등용 정책의 획기적 변화, 유재시거]


유재시거, 한나라 관직도 이용

이 지병속제는 이미 자기 진영에 포섭된 자를 그 대상으로 하여 한 왕조 관직을 제수하기도 하고, 또는 자신의 세력 확대를 위해서 유리한 인물이 그 대상이 되었을 것은 물론이다.


이런 경우 조조의 인물 등용 기준은 유재시거惟才是擧 또는 불인불효不仁不孝라도 치국용병지도治國用兵之道의 유무에 두고 있다. 즉, 이 기준은 재능 본위의 발탁이었다.


후한 이래의 위선적인 명절이나 실체 없는 허명적 지식인을 배제하고 불인부덕이라도 오직 재능만 있으면 발탁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의 조조에게 초미의 급선무는 이미 그 휘하에 포섭된 부하들에게 적절한 관직을 수여함으로써 그 개인이나 그 집단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아울러서 그 개개인의 권력 지향성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또 조조는 그 세력 확대를 위해서는 관리 등용에 요구되는 기존의 덕목에 구애될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세력 확충에 공헌할 만한 인물이면 비록 불인부덕不仁不德이라도 등용하는 대담한 정책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출처 : 위진남북조사, 이공범, 지식산업사

유재시거, 조조의 인재 등용 개혁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