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삼국지 주유와 장간이 억울한 이유, 삼국지연의 때문에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1. 11. 04:11

삼국지 주유와 장간이 억울한 이유, 삼국지연의 때문에


주유. 이 강동의 명장을 언급하면, 사람들은 우선 제갈량이 오나라 주유를 세 번 화나게 했다는 이야기나


"하늘이 이미 나를 태어나게 하고서 제갈량은 왜 또 내었는가!"


라며 탄식했던 일,


"천하를 편하게 하겠다던 오나라 주유(주랑周郞)의 신묘한 계책, 결국에는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꼴이구나!"


라고 놀림을 받던 이야기 등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이야기들은 소설이지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 속의 제갈량은 결코 주유를 화나게 한 적이 없습니다. 설령 화나게 했다 하더라도 화가 나 죽을 정도로 심하게 놀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주유는 그릇이 매우 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삼국지의 그에 대한 평가는 "성격이 쾌활하고 도량이 넓었다"라고 합니다. 동시대 사람들의 평가도 높습니다. 유비는 "기상과 도량이 자못 크다"라고 말했고, 장간은 "아량이 넓고 고상한 취미를 갖췄다"고 말했습니다.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장간이라는 사람은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입니다.


그가 오나라 주유의 군영을 방문한 것은 적벽대전이 끝난 지 2년 뒤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가짜 편지를 가지고 온 일이 없습니다. (주유에 역이용당한 장간이 가짜 편지를 가지고 오자, 채모와 장윤이 조조에게 처형된다는 삼국연의의 내용을 말한 것임) 장간은 교활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신사였습니다.


적벽 유적지의 주유 동상[적벽 유적지의 주유 동상]


강표전에서는,


"장간이 늠름한 용모에 재주와 변설이 뛰어나서, 강수江水와 회수淮水 사이에서는 그와 대적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였다."


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재주와 용모를 겸비한 훌륭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유 또한 매우 훌륭한 영웅입니다. 그의 멋스러움은 당시에 삼척동자도 다 알 정도였습니다.


삼국지에서는,


"장성하게 되자 당당한 풍채와 용모를 가졌고",

"오吳에서는 모두 주랑周郞이라고 불렀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랑郞은 청년을 가리킵니다. 랑이라는 말에는 찬미의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주랑은 멋쟁이 주 선생을 뜻합니다. 같은 때에 손랑이라고 불렸던 손책은 곧 멋쟁이 손 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주유의 말을 엿듣는 장간, 이런 일은 없었음[주유의 말을 엿듣는 장간, 이런 일은 없었음]


물론 멋쟁이라면, 외모보다 내재한 품성이 더욱 중요하겠지요. 오나라 주유는 품성이 고귀하고 도량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품이 좋고 수양이 높았으며, 싸움할 줄 알고, 예술도 이해했는데, 특히 음악에 정통했습니다.


그는 설령 술이 세 순배쯤 돌고 나서 거나하게 취한 채로도 악대의 연주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정확하게 감별해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틀리면 그가 곧바로 머리를 돌려 쳐다봤기 때문에, '연주를 잘못하니 주랑이 돌아보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군대를 지휘하는 것도 마치 악대를 지휘하듯 하여 전쟁을 예술로 바꿀 줄 알았고, 전투도 마치 예술품처럼 아름답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주유의 전투는 확실히 근사했습니다. 적벽대전에서 그는 손권과 유비 연합군의 선봉에 선 총지휘자였습니다.


소동파는 적벽회고赤壁懷古에서,


(遙想公瑾當年) 아득히 당시의 공근公瑾(주유의 자)을 그려본다네.

(小喬初嫁了) 새색시 소교를 맞은 해,

(雄姿英發) 영웅의 모습과 재주 지녔지.

(羽扇綸巾) 우선羽扇 부치며 관건綸巾 쓰고서,

(談笑間强虜灰飛煙滅) 담소 나누는 사이에 적들의 전선은 연기 속에 재가 되어 사라졌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깃털로 만든 부채이고, 관건은 푸른 실로 짠 두건으로 당시에 학문과 고상함의 상징이었습니다. 본래 귀족이나 관리는 관冠을 써야 합니다. 높은 관모를 쓰고 풍성한 옷에 넓은 허리띠를 매는 것이 한나라 관리들의 위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동한 말년에 이르면, 관모를 쓰지 않고 두건을 쓰는 것이 오히려 명사들의 유행이 됩니다. 장수의 신분이면서 우선을 손에 들고 관건을 썼다면 곧 유학자이면서 장수인 풍모를 띱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의 장면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조조의 군대가 장강長江에 진을 쳐서 전선이 끝없이 이어지고 수많은 깃발이 펄럭이자, 강동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간이 콩알만 해집니다.


2013년에 발견된 청나라 시기 주씨 족보 (주유 그림)[2013년에 발견된 청나라 시기 주씨 족보 (주유 그림)]


하지만 삼국지 주유는 평소와 다름없이 침착합니다. 그는 관건을 쓰고 우선을 부치며, 장군의 막사에서 작전을 짜고는, 미리 정해진 것처럼 군대를 지휘해서 소수의 군사로 많은 적을 이기고 승리를 거둡니다.


이 얼마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입니까! 이때의 오나라 주유는 정말로 의기양양하여 광채가 빛나는 청년 영웅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전쟁은 예술이 아니므로, 그렇게 멋스럽거나 우아하거나 호방한 풍류일 수 없습니다. 더구나 담소를 나누는 사이에 적들의 전선을 연기 속에서 재가 되어 사라지게 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당시는 주유가 소교에게 장가든 지 이미 십 년이 지났으니, 결코 새색시 소교를 맞은 때가 아닙니다. 소동파의 표현은 주유의 영웅적 이미지를 애써서 그려내려고 한 것이 지나지 않습니다. 문학 작품을 역사로 볼 수는 없으나 역사상의 주유가 뛰어난 장수이며 우아한 선비였음은 대체로 사실입니다.


주유는 스물네 살에 손책에 의해 건위중랑장에 임명되어, 전쟁터를 누비며 공을 세웁니다. 또한, 이해에 손책과 주유는 각기 교공橋公의 딸인 대교와 소교를 아내로 맞이하는데, 바로 소동파가 노래한 새색시 소교를 맞은 때입니다.


오나라 주유라는 인물은 관직, 전쟁터, 심지어 사랑에서도 모두 뜻을 얻었던 사람입니다.


삼국지 제갈량 주유[삼국지 제갈량 주유]


남자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부러운 일이 있을까요?


이렇게 원하는 걸 모두 얻은 사람이 남을 질투하고, 그 질투 때문에 화병으로 죽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그를 질투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삼국지 주유는 유비 집단과 드러내놓고 다퉜고 암투도 벌여서, 일찍이 손권에게 유비를 연금하고 관우와 장비를 떼어놓을 것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것은 그 집단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지, 그의 마음이나 도량과는 무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유가 꺼렸던 인물은 유비, 관우, 장비이지 제갈량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 오나라 주유는 제갈량을 라이벌로 여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몰래 음모를 꾸밀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원래 높은 인격과 곧은 절개를 가진 제갈량이 세 차례 주유를 화나게 했다는 조작된 이야기 때문에, 간사하고 교활한 소인배(현대의 작가 후스의 말)라는 혹평을 받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출처 : 삼국지 강의 1권, 이중톈, 김영사

삼국지 주유와 장간이 억울한 이유, 삼국지연의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