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472

중국 고대 소설의 기원과 지위 [산해경과 목천자전]

중국의 문헌 중에 소설이란 말이 최초로 보이는 것은 장자 외물外物편이다. [飾小說以干縣令 其於大達亦遠矣] 소설을 꾸며 현령에게 벼슬자리를 구하는데, 그것은 위대한 도로부터 매우 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설이란 위대한 도와 반대되는 소도小道 임이 분명하다. 한서의 예문지艺文志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설가를 해설하고 있다. [小说家 者流,盖出于稗官 稗(bài)官. 街谈巷语,道听涂说者之所造也。孔子曰:“虽小道,必有可观者焉,致远恐泥,是以君子弗为也。”然亦弗灭也。闾里小知者之所及,亦使缀而不忘。如或一言可采,此亦刍荛狂夫之议也 《汉书·艺文志》班固] 소설가의 학파는, 대개 패관에게서 나왔다. 항간에서 떠도는 이야기나, 길거리에서 주워들은 풍문을 가지고 지어낸 것이다. 공자께서 이르시길 비록 잔재주이긴 하지만 반드시 볼 만한..

동아시아 역사 2016.12.27

코골이 허조 옆에 고화를 재웠던 왕도

허시중許侍中(허조, 許璪)과 고사공顧司空(고화, 顧和)은 모두 승상丞相(왕도, 王導)의 종사從事였다. 그 무렵 두 사람은 후대를 받고 있었으며 잔치와 집회 자리에 거의 동석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1) 어느 때, 한밤중까지 승상의 집에서 놀았는데 두 사람이 마음껏 즐기었다. 그러자 승상은 자기 침실로 두 사람을 보내어 잠자게 하였다. 고사공은 새벽까지 뒤척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허시중은 침상에 들어가자마자 크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승상은 손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안에선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할 것인데......" (2)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유효표의 주. (1) 진백관명晉百官名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허조의 자는 사문思文이며 의흥義興 양선陽羨 사람이다.'허씨보許氏譜에 이런 이야기가 ..

동아시아 역사 2016.12.26

왕담의 영명함을 알아챈 조카 왕제, 둘의 일화

왕여남王汝南(왕담, 王湛)은 부모상喪의 기간이 이미 끝났지만 그대로 묘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사촌 형(왕혼)의 아들인 왕제濟는 묘소에 참배하러 올 때마다 숙부(왕담)에게 들르지 않았으며 숙부도 기다리지 아니했다. 왕제는 설령 어쩌다가 들린다 하더라도 간단한 인사말만 할 뿐이었다. 나중에 불쏙 시험 삼아 은자의 시사時事를 물어보았는데, 그 대답이 매우 논리적이었고 왕제의 생각을 뛰어넘는 바가 있어서 왕제는 깜짝 놀랐다. 그리하여 계속 함께 토론했는데 점차 정미精微(정밀하고 자세하다)한 경지에 이르렀다. (출처 : 바이두 백과) 왕제는 이전에는 조카로서의 경의敬意(윗사람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를 거의 차리지 않았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모르게 경외심이 생기어 마음과 몸이 모두 숙연해졌다. 그는 그곳..

동아시아 역사 2016.12.25

채옹이 평가한 팔준의 진번과 이응 [삼군의 윗자리와 마지막 자리]

여남汝南의 진중거陳仲擧(진번, 陳蕃)와 영천穎川의 이원례李元禮(이응, 李膺) 등 두 명에 대해서 사람들은 모두 그 공적과 인덕人德을 논했는데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채백개蔡伯喈(채옹, 蔡邕) (1) 가 이일을 논평했다. "진중거는 윗사람에게 직언하는 데 강직하고, 이원례는 아랫사람을 다루는 데 엄격하다. 윗사람에게 직언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아랫사람을 엄하게 다루기는 쉽지." (2) 이렇게 해서 진중거는 삼군三君의 맨 마지막 자리에 놓였고, (3) 이원례는 팔준八俊의 맨 윗자리에 놓였다. (4) (출처 : 바이두 백과) 유효표의 주 (1) 속한서續漢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채백개는 진류陳留 어圉 땅 사람이다. 사리에 밝은 준재였으며 박학하고 문장을 잘 짓는가 하면 신선神仙, 의술醫術, 복서卜筮에 이..

동아시아 역사 2016.12.24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지으며 인용한 책

※ 책 이름 - 관련 國 - 관련 집단 - 관련 인물 - 비고 칠성록(七星錄) - 신라 - 마복칠성(摩腹七星) - 아시(阿時)법흥대왕은 칠성七成의 우두머리이며, 위화랑은 어머니의 신분이 낮아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칠성록七星錄과 보혜기宝兮記에는 모두 이등공伊登公이 없고 위화랑을 기재하고 있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잘 알 수 없다. 수지(守知)이등(伊登)태종(苔宗)비량(比梁)융취(肜吹) (출처 : 바이두 백과) 호조공기(好助公記) - 북국8세 문노文弩는 비조부공比助夫公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가야국 문화공주文華公主다. 혹은 문화공주는 야국왕野國王이 바친 여자貢女라고 한다. 호조공기好助公記에는 북국왕녀北國王女라고 되어 있는데, 문노는 스스로 가야가 외조라고 말하였으니, 북국은 가야의 북국일 것이다. ..

동아시아 역사 2016.12.23

무식한 중국 사람을 꼬집던 박지원 [열하일기 피서록]

박충朴充과 김이어金夷魚는 모두 신라新羅 사람으로서 당唐에 들어가 빈공賓貢 진사進士에 합격하였다. 당 장교張喬(당唐 소종 때의 문학가)의 송김이어봉사귀본국送金夷魚奉使歸本國이라는 시詩에, [渡海登仙籍] 바다를 건너와서 선적(빈공과의 학적學籍)에 올랐더니,[還家備漢儀] 고향에 돌아갈 젠 한의(중국의 문물文物)를 갖추었네. 라 하였고, 장교는 또 송박충시어귀해동送朴充侍御歸海東이라는 시에, [天涯離二紀] 하늘가에 떠나온 지 이제 벌써 스물네 해,[闕下歷三朝] 대궐에 드나들어 세 임금을 섬겼구나. 라고 하였더니, 중국의 인사들이 나와 처음 만날 때 반드시 먼저 항해航海의 노정과 어느 곳에서 상륙하였는가를 묻기에, 나는 줄곧 육로를 따라 요동으로부터 산해관을 들어 연경에 닿았다고 답하면 그들은 혹시 믿지 않은 이가 ..

동아시아 역사 2016.12.21

오대 후량 시대편 - 자치통감 266권 [e북]

단돈 2,800원이면 자치통감 한 권(종이로 인쇄되는 자치통감은 한 권의 보통 10권이 담김)을 볼 수 있습니다. 좋다. 좋다. 폰트도 보기에 편하고 크레마에서 로딩 속도도 괜찮네요. 자치통감 266권은 271권까지 이어지는 오대 후량시대 908~922(15년간)를 시작하는 첫 권입니다. 오대사가 궁금했던 제 입장에선 266권을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죠. 266권 안의 소제목들은 이렇습니다. 1. 당의 멸망과 주전충의 등극2. 초왕 마은과 진왕 이극용의 활동3. 왕건의 등극과 양의 회유정책, 이극용의 죽음4. 이존욱의 거병과 협채의 탈취5. 회남의 내부 갈등과 후량 공격 실패 ☆ 책 내용 266권은 주전충, 왕건, 이존욱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이중 가장 비중이 큰 건, 주전충입니다. 그가 건국..

동아시아 역사 2016.12.20

신라는 왜를 정벌했을까, 기록 [동사강목, 부상록, 순암선생문집, 연려실기술]

1. 안정복 동사강목 제2상 을묘년 신라 유례왕 12년, 고구려 봉상왕 4년, 백제 책계왕 10년(진 혜제 원강 5, 295) 봄 계림이 왜를 정벌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신라 왕이, 왜인이 자주 침범하고 백성을 편안히 살지 못하게 함을 분히 여겨, 백제와 함께 동시에 바다를 건너 왜국에 들어가 칠 것을 도모하니, 서불한舒弗邯 홍권弘權이 간하기를, "우리나라 사람이 수전水戰에 익숙하지 못하여 험난을 무릅쓰고 원정遠征하면, 생각지 않은 위험이 있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백제는 속임수가 많고 항상 병탄할 욕심을 가지고 있음이리까? 더불어 도모할 수 없습니다." 하니, 왕이 좋은 말로 여겼다. 동명東溟 김세렴金世濂의 해사록海槎錄에는, "일본은 극동에 멀리 떨어져 있고 사면이 큰 바다로 둘려 있어, 외국의 ..

동아시아 역사 2016.12.18

영화 속에서 묘사된 조조의 신도시 업도 [조조, 황제의 반란 속]

이전 포스트를 통해 조조의 업도에 대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서울 인근 대도시에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서울을 하나 더 만든 셈입니다. 그만큼 조조는 이 업도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고, 3세기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조조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로 업도(업성)가 꼽히기도 합니다. [조조가 아꼈던 업도가 옥수수밭에 묻히다 [클릭]][업도를 중국의 중심으로 만들었던 조조 [동작대 빙정대 금호대 3대] [클릭]] 업성의 가장 큰 특징은 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삼대三臺입니다. 동작대銅雀臺를 가운데 두고 북의 빙정대冰井臺와 남의 금호대金虎臺가 그것이죠. 삼국시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업도의 삼대를 묘사한 적은 없었는데, 조조 황제의 반란이란 영화에서도 딱히 표현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업도 자체..

동아시아 역사 2016.12.17

좋은 소재를 망쳐버린 책. [김부식과 일연은 왜?] 대체 왜 이렇게 책을 썼을까

우리 고대사를 다룬 두 개의 시각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책의 제목 자체는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책의 시작부부터 동의하기 힘든 주장들이 담겨있습니다. 김부식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세력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신라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은 인물이 김부식. 백제 본기에 나온 사대주의적 사고. 김부식은 오히려 주모자들의 목만 베려했으나, 개경의 인사들이 무자비하게 진압할 것을 요구했고, 신라의 정치적 유산이란 거 실제로 있다손 치더라도, 그 당시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으며, 김부식 본인이 신라 사람이란 인식보다 고려 사람이란 인식이 있었을 터, 김부식 본인에게 신라의 정치적 유산까지 이어 붙이는 건 순전히 억지에 불과합니다. (망한지도 수백 년이..

동아시아 역사 2016.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