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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담의 영명함을 알아챈 조카 왕제, 둘의 일화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2. 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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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여남王汝南(왕담, 王湛)은 부모상喪의 기간이 이미 끝났지만 그대로 묘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사촌 형(왕혼)의 아들인 왕제濟는 묘소에 참배하러 올 때마다 숙부(왕담)에게 들르지 않았으며 숙부도 기다리지 아니했다. 왕제는 설령 어쩌다가 들린다 하더라도 간단한 인사말만 할 뿐이었다. 나중에 불쏙 시험 삼아 은자의 시사時事를 물어보았는데, 그 대답이 매우 논리적이었고 왕제의 생각을 뛰어넘는 바가 있어서 왕제는 깜짝 놀랐다. 그리하여 계속 함께 토론했는데 점차 정미精微(정밀하고 자세하다)한 경지에 이르렀다.


서진의 왕도서진의 왕도

(출처 : 바이두 백과)


왕제는 이전에는 조카로서의 경의敬意(윗사람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를 거의 차리지 않았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모르게 경외심이 생기어 마음과 몸이 모두 숙연해졌다. 그는 그곳에 그대로 머무르며 함께 토론하면서 며칠 밤낮을 보냈다. 왕제도 또한 남보다 뛰어난 준걸이었지만 스스로 돌아볼 때 도저히 따를 수 없음을 깨닫고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문중에 명사가 있었건만 30년 동안이나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왕제가 돌아가려고 하자 숙부는 문까지 배웅하러 나왔다. 왕제를 수행하는 종기從騎 가운데 매우 다루기 어려운 말이 있었으며 이 말을 탈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왕제가 숙부에게, 승마를 좋아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왕담이 말하기를 그것도 좋아하지라고 했다. 왕제가 그 타기 어려운 말을 몰도록 했더니 숙부는 말 타는 자세가 절묘했고 채찍질하는 모습이 가벼워서 그 어떤 명기수라 하더라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왕제는 숙부의 헤아리기 어려운 재능이 한둘이 아님을 보고 점점 더 감탄했다. (1)


왕제의 아버지이자 왕담의 친형 왕혼왕제의 아버지이자 왕담의 친형 왕혼

(출처 : 바이두 백과)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 왕혼이 왕제에게 물었다. 잠시 다녀오겠다더니 어찌하여 며칠씩이나 걸린 게냐?. 왕제가 대답했다. 비로소 숙부 한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흔이 그 까닭을 묻자 왕제가 저간의 일을 감탄하며 자세히 설명했다. 왕혼은 물었다. 우리와 비교할 때 어떻더냐? 왕제가 대답했다. 저 이상의 인물이십니다. 무제(사마염)는 왕제와 만나면 언제나 왕담을 조롱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집에는 바보 숙부가 있다던데 아직도 살아있는가?"


라고 했는데 그때마다 왕제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일단 숙부의 위대함을 알고 나서는 무제가 물으면 왕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의 숙부는 바보가 아닙니다. 그리고 실은 훌륭한 인물이라며 칭송했다. 그러자 무제가 누구와 비교할 수 있겠는고?라고 물었다. 왕제는 대답했다. 산도山濤 보다는 아래이고 위서魏舒 보다는 위입니다. (2) 이렇게 해서 왕담은 이름을 드날렸는데 나이 28세에 비로소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유효표의 주.


(1) 등찬劉樂의 진기晉紀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왕담의 자는 처충處沖이며 태원太原 사람이다. 그 감춰진 덕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형제와 일족들도 그를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다만 아버지 왕창王昶만 그의 이재異才를 인정하고 있었다. 왕창이 세상을 떠나자 왕담은 그 묘지 옆에 여막을 지었다. 종형의 아들인 왕제가 그를 찾아가 주역周易이 머리맡에 있는 것을 보고 왕담에게 물었다.


"숙부께서는 이것을 가지고 무얼 하십니까? 읽어보기라도 하셨나요?"


그러자 왕담은 웃으며 말하기를,


"몸의 상태가 좋을 때면 어쩌다 읽을 뿐이야. 오늘은 너와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 주역에 대해서 담론을 했는데 분석이 심오한 경지에 이르렀으며 논변이 오묘하고 논지가 뛰어나서, 왕제로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왕제는 가늠할 수 없는 재능에 감탄했다. 그는 원래 말馬을 좋아했는데 타고 다니는 말이 준일하고 빨라서 마음속으로 매우 아끼고 있었다.


(그 말을 본) 왕담이 말했다.


"이 말은 다소 빠르기는 하겠지만, 힘이 약하여 고된 일을 감당하기 어렵겠다. 근자에 독우督郵(지방 관리)의 말을 보았는데 이 말보다 낫더라. 다만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하더라."


그래서 왕제는 독우의 말을 빌려서 10여 일 동안 곡물을 먹인 다음 왕담과 시합을 하기로 했다. 왕담은 한 번도 말을 타본 적이 없었건만 곧장 치달렸는데 완급의 조절이 왕제와 다름이 없었으며 두 필의 말도 엇비슷했다. 왕담이 말했다.


"이번에는 평탄하고 넓은 마찻길을 곧바로 달렸을 뿐이므로 말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한번 작은 구릉丘陵(언덕, 나지막한 산)이 있는 곳으로 달려보자."


그래서 작은 구릉이 있는 곳으로 말을 달리며 회전을 시켰다. 그러자 왕제의 말은 과연 쓰러지고 말았다. 왕담의 빼어난 재주와 식견이 이와 같았다.'


노나라 삼환노나라 삼환

(출처 : 季昭子)


(2) 진양추晉陽秋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왕제는 사람을 감식하는 눈이 있었으며 사람의 아속雅俗이나 시비是非에 대해서 칭찬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왕담을 만나보고는 그 인덕人德이 큰 점에 감복했다. 당시 사람들은 왕담을 평하여, 위로 산도에 비교해서는 부족하지만, 아래로 위서에 비교하면 남음이 있다라고 했는데 왕담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나를 계손씨季孫氏와 맹손씨孟孫氏 사이에 두려고 하는가?" 라고 말했다.'


노나라 계손씨노나라 계손씨

(출처 : 바이두 백과)


왕은王隱의 진서晉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위서의 자는 양원陽元이고 임성任城 사람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인 영씨네서 자랐다. 영씨네서 저택을 신축하려고 했을 때, 가상家相을 보는 사람이, "틀림없이 훌륭한 외손이 나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마음속으로 위씨네 외손자가 어렸지만 현명하므로 그런 점괘가 나왔을 것으로 생각했다. 위서가 말했다. "어머님의 가문을 위해 이 점괘를 실현해 보겠다."


그는 어렸을 때 지둔遲鈍이라고 불렸는데 숙부인 위형은 위서에게 수차水車를 관리하는 일을 시키면서 언제나 "위서가 8백 호의 장長만 되어 줘도 나는 만족하겠다."라고 말했다. 위서는 그런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위서는 신장이 8척 2촌이었는데 세상의 보통사람들이 행하는 바는 배우지 아니했다. 젊었을 때부터 활쏘기를 잘했는데 가죽옷을 입고 산택山澤에 들어가 사냥을 할 때마다 많이 잡아 오곤 하였다.


(출처 : 孔子周游列国)


후장군 종육의 장사長史가 되었는데 종육이 측근자들과 활쏘기 시합을 할 때면, 위서는 항상 옆에 있으면서 맞히는 화살의 수를 기록하곤 했다. 어느 때 조원組員이 부족했으므로 위서를 그 수에 충원했다. 그러자 쏘는 화살 모두가 명중했으며 그 행동거지가 고상했으므로 그 묘기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종육은 감탄하며 미안해하면서 말했다.


"내가 그대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시키지 못했네. 그대의 활 솜씨가 이처럼 뛰어날 줄이야....."


뒤에 상국참군으로 옮겼다. 진왕晉王(후의 문제 사마소)은 조정에서 퇴출할 때마다 그를 배웅하여 평했다. "위서는 당당하여 사람들의 영수이다." 시중, 사도로 누천되었다.'


주해


소생所生 - 낳아준 부모. 이 경우는 아버지 왕창王昶. 진서 권75 왕담전에 '아버지 상을 당하여 묘지 옆에 거하며 여막의 문을 닫고 조용히, 세상과 교유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삼십 년三十年 - 30년이란 실수가 아니라 개수를 말한 것이다. 오랜 세월이란 정도의 뜻.


계맹지간季孟之間 - 논어論語 미자편微子篇에, '제경공이 공자에 대한 대우를 논의했다齊景公 待孔子曰. "계씨와 같이 최고로는 대우하지 못하지만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로는 대우하겠다若季氏則吾不能 以季孟之間 待之"'라고 한 것에 따름. 여기서 계씨란 노나라 대부인 계손씨, 맹씨는 맹손씨로서 계맹 사이란 그 양씨의 중간 대우, 정도란 뜻.


계맹지간계맹지간


붕인朋人 - 활쏘기 시합을 할 때 두 사람이 한 조를 만드는 것.


세설신어 中, 상예賞譽(인물의 품격과 재능의 훌륭함에 대한 감상과 칭송)편 17화

세설신어 中, 안길환, 명문당, 247p~251p


마지막에 언급된 계손씨와 맹손씨에 대해선 위키백과를 참조합니다.


참조 - 위키백과의 삼환 [클릭]


삼환三桓은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의 세 경卿 집안, 계손季孫, 숙손叔孫, 맹손孟孫 세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각 집안의 시조는 모두 노 환공의 아들들로, 계손씨는 공자 우, 숙손씨는 공자 아, 맹손씨는 공자 경보의 자손이며, 이 때문에 환공의 자손인 세 집안이란 의미로 삼환이라고 한다.


왕담이 계손씨와 맹손씨를 언급한 건,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한 셈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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