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472

북애자가 밝힌 강한 나라의 요건 3가지

만약 하늘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여 수백 년 뒤로 놓아두기만 한다면, 곧 나는 우리나라 옷을 입고 청나라 언어를 구사하며,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앉아 청나라 황제를 설복하여 우리가 같은 조상의 후손임을 얘기하고 그 이해득실을 나열할 것이니, 조선과 더불어 요만遼滿과 유영幽營의 땅에 나란히 웅거하여, 북으로는 야인野人을 꾀어 선봉으로 삼고, 동으로는 왜倭와 연합하여 그들로 하여금 남쪽의 천한 종족들을 휘어잡게 하자고 할 것이다. 무릇 그러한 후에야 조선의 강성함은 다시 살아날 것이요, 한나라의 거만함은 좌절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조선의 형세가 저무는 해를 따라가듯 하기에 단지 허약함만을 돌보아서는 떨치고 나와서 힘을 쓰는 것은 생각도 못 해 볼 것이며, 수백 년이 지나지 않아 조선은 반..

동아시아 역사 2017.05.31

백제의 고구려, 신라, 가야, 왜, 중국과의 교류

고구려, 신라, 가야와의 교류 4세기 낙랑樂浪, 대방帶方이 한반도에서 쫓겨난 후 백제는 고구려와 중국-한반도-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교역망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371년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으로 고국원왕이 패사敗死한 이후 근구수왕, 진사왕, 아신왕, 개로왕대까지 총 15회의 전쟁을 되풀이했다. 백제는 신라와 왕권 강화와 대외진출의 필요성으로 3세기까지 간헐적으로 대립하였다. 4~5세기에는 고구려와의 동아시아 교역망 쟁탈전과 고구려 남진 정책으로 이해관계에 따라 때로는 신라를 견제하고, 때로는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백제와 가야 소국들은 동맹 관계였다. 백제는 가야지역을 거점으로 왜와 안정적으로 교류하였고, 가야도 철의 국제 무역과 중국과의 교류에 백제의 도움을 받았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동아시아 역사 2017.05.31

문종이 만든 조선 화차 [문종의 전쟁 무기]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화약 무기는 세종 말기에 대부분 개발됩니다. 화차火車는 문종이 공을 들여 완성한 것으로, 세자 시절 보고 듣고 만졌던 화약 무기의 집대성을 자신의 대에 완성한 것이죠. 화차는 문종 1년인 1451년 개발되었습니다. 당대의 우수한 화약 무기를 집대성한 작품이죠. 1474년에 편찬된 국조오례서례에 제작 과정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제작 자료가 상세하기에 현대에도 복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느 정도로 자세하냐면, 척, 촌, 푼, 리라는 단위까지 사용했는데, 설계도에 나온 자료 중 리는 0.3mm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아주 정밀한 단위까지 사용해 기록을 남겨뒀기에 복원될 수 있습니다. 문종 화자의 작동 원리 앞부분에 화약을 넣는 종이로 된 통(약통)이 있습니다. 그 앞에는 일종의 폭..

동아시아 역사 2017.05.30

하멜 표류기에 적힌 조선의 대기근

1661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곡식과 그 밖의 다른 작물을 별로 수확하지 못했다. 1662올해 추수를 할 때까지 상황이 더 어려워서 수천 명의 사람이 기근으로 죽어갔다. 도로를 이용하기가 어려웠는데, 그건 도둑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왕의 명령으로 모든 도로에 경비대가 주둔했는데, 그것은 여행자의 안전을 도모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아사餓死한 사람들을 매장하기도 하며, 매일같이 일어나는 살인이나 강도를 예방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몇몇 고장과 마을들이 털리고 국고(“쌀 창고는 해안의 몇 군데에 있었는데 인근 지역의 기근에 대비했고, 공덕功德에 따라서 구호물 지급자에게 왕이 내리는 상을 주었다.”[파커, “조선”, 「차이나 리뷰」ⅪⅤ, 129].)가 습격당해 곡물을 강탈당했는데 범죄자들이 잡히지는 않았다...

동아시아 역사 2017.05.30

진흥왕이 설치한 화랑에 대해 - 조선상고사

진흥대왕眞興大王의 화랑花郞 설치 화랑은 한때 신라가 크게 일어난 원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후세에 한문화(漢文化)가 발호(跋扈)하여 사대주의파(事大主義派)의 사상과 언론이 사회의 인심ㆍ풍속ㆍ학술을 지배하여 온 조선을 들어 지나화(支那化)하려는 판에 이에 반항ㆍ배척하여서 조선이 조선되게 하여 온 것이 이 화랑이었다. 송도(松都) 중엽 이후로는 화랑의 여맥이 아직 없어지지 아니하여 비록 직접으로 그 감화를 받는 사람은 없지마는 그래도 간접으로 화랑의 유풍 여운을 받아 가까스로 조선이 조선되게 하여 온 것은 화랑이었다. 그러므로 화랑의 역사를 모르고 조선사를 말하려 함은 골을 빼고 그 사람의 정신을 찾음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화랑파(花郞派)에 스스로 기록한 문헌인 선사(仙史)ㆍ화랑세기(花郞世紀)ㆍ선랑..

동아시아 역사 2017.05.30

근구수왕의 대륙 백제와 일본 성덕태자-조선상고사

근구수왕近仇首王 즉위 후의 해외海外 경략經略 근구수왕이 기원 375년에 즉위하여 재위 10년 동안에 고구려에 대하여는 겨우 한 번 평양 침입이 있었으나 바다를 건너 지나 대륙을 경략하여 선비(鮮卑) 모용씨(慕容氏)의 연(燕)과 부씨(符氏)의 진(秦)을 정벌하여, 지금의 요서(遼西)ㆍ산동(山東)ㆍ강소(江蘇)ㆍ절강(浙江) 등지를 경략하여 넓은 땅을 장만하였다. 이런 기록이 비록 백제 본기에는 오르지 않았으나 양서(梁書)와 송서(宋書)에 “백제가 요서와 진평군(晋平郡)을 공략하여 차지하였다(百濟 略有遼西晋平郡).”고 했고,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부여(扶餘)가 처음에 녹산(鹿山)에 웅거하였다가 백제에게 격파당해 서쪽 연(燕) 가까이로 옮겼다(扶餘 初據鹿山 爲百濟所殘破 西徒近燕).”고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동아시아 역사 2017.05.30

백제, 바다로, 해상강국 백제의 해양 진출

백제는 서해와 남해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길고 큰 강이 많아 해상 활동에 유리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 대륙, 일본 열도 및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백제 한성기에 이용된 항로는 육지 가까이 운항하는 연안 항로였다. 백제 후기에는 황해도 연안과 중국의 산둥반도를 직접 잇는 서해 횡단항로가 개발되어 더 짧은 기간에 중국이나 일본에 오갈 수 있게 되었다. 백제의 일본 항로 백제와 왜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연안을 따라 두 나라의 수도를 오가는 최단 루트를 이용하였다. 한성 - 인천만 - 남양 반도 - 태안 반도 - 금강하구 - 변산반도 - 영산강 하구 - 고흥반도 - 섬진강 하구 - 쓰시마 - 규슈 북부 - 오사카만 - 야마토 백제의 중국항로 백제는 중국과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연안 항로를 ..

동아시아 역사 2017.05.29

만화 삼국지8 유비가 15만 백성을 데리고 강릉으로 가다

만화 출처 - 重温儿时三国演义连环画之第二十四集 85. 현덕이 말한다.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자 했으나 도리어 백성을 해치는구나! 양양에 들어가지 않으련다!" 공명이 말한다. "강릉은 형주의 요지입니다. 먼저 강릉을 취해 근거지로 삼는 게 낫습니다." 86. 이에 백성을 이끌고 모조리 양양의 대로를 떠나 강릉으로 떠나간다. 양양 성중의 백성들 가운데 많은 이가 혼란을 틈타 출성해 현덕을 따라간다. 87. 위연이 문빙과 교전하느라 현덕을 따라가지 못해 수하 병졸들이 모두 꺾였다. 위연이 이에 말을 몰아 달아나 현덕을 찾으나 만나지 못해 장사태수長沙太守 한현에게 몸을 맡기러 간다. 88. 한편, 현덕이 군사와 백성 10만 남짓과 동행하는데 크고 작은 수레가 수천량이고, 짐을 지고 메고 가는 이는 그 수를 헤아..

동아시아 역사 2017.05.29

만화 삼국지7 위연이 성문을 열고 유비를 받아들인다

만화 출처 - 重温儿时三国演义连环画之第二十四集 73. 서서가 작별을 올리고 돌아가 현덕에게는 항복할 뜻이 없음을 말한다. 조조가 크게 노해 그날 바로 진병한다. 현덕이 공명에게 계책을 묻자 공명이 말한다. "속히 번성을 포기하고 양양을 취해 잠시 머물러야 합니다." "백성들이 허구하게 따라왔는데 어찌 차마 버리겠습니까?" "사람을 보내 백성들에게 두루 알려야 합니다. 따르고 싶은 자는 함께 가고, 그렇지 않은 자는 머물게 하십시오." 74. 먼저 운장을 강가로 보내 선박을 정돈하게 하고, 손건과 간옹에게 명해, 성중에서 크게 알린다. "조조 병력이 곧 닥쳐 고립된 성을 오래 지킬 수 없으니, 백성들 가운데 원하는 이는 함께 강을 건널 것을 명하오." 75. 두 고을 백성들이 일제히 소리 내 크게 외친다...

동아시아 역사 2017.05.29

만화 삼국지6 공명이 수공으로 조인을 물리친다

만화 출처 - 重温儿时三国演义连环画之第二十四集 61. 한편, 운장은 포대를 사용해 강물의 상류를 막아두었다. 황혼 무렵, 멀리 신야에서 불길이 치솟고, 4경에 이르러 하류에서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말들이 울부짖는 것이 들린다. 운장이 급히 명령을 내리자 일제히 군사들은 포대를 들어낸다. 62. 물살이 도천滔天(하늘까지 넘침. 물살이 대단함)해 하류로 거세게 몰아치니 조조 군대의 인마들이 모두 물에 빠져, 죽은 자가 극히 많다. 조인이 장수들을 이끌고 물살이 완만한 쪽으로 길을 뚫고 달아난다. 63. 박릉 나루터에 이르지만, 함성이 크게 일고 1군이 길을 막는데 당선當先(앞장섬)한 대장은 바로 장비다. 그가 크게 외친다. "조조 도적들아! 어서 목을 바쳐라!" 64. 조조 군대가 매우 놀란다. 이때 허저가..

동아시아 역사 2017.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