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백제의 고구려, 신라, 가야, 왜, 중국과의 교류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5. 31. 05:00

4-5세기의 동아시아 국제관계4-5세기의 동아시아 국제관계


고구려, 신라, 가야와의 교류


4세기 낙랑樂浪, 대방帶方이 한반도에서 쫓겨난 후 백제는 고구려와 중국-한반도-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교역망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371년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으로 고국원왕이 패사敗死한 이후 근구수왕, 진사왕, 아신왕, 개로왕대까지 총 15회의 전쟁을 되풀이했다.


백제는 신라와 왕권 강화와 대외진출의 필요성으로 3세기까지 간헐적으로 대립하였다. 4~5세기에는 고구려와의 동아시아 교역망 쟁탈전과 고구려 남진 정책으로 이해관계에 따라 때로는 신라를 견제하고, 때로는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백제와 가야 소국들은 동맹 관계였다. 백제는 가야지역을 거점으로 왜와 안정적으로 교류하였고, 가야도 철의 국제 무역과 중국과의 교류에 백제의 도움을 받았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포천 자작리 유적에서 가야토기와 대가야 양식의 작은 그릇받침, 뚜껑이 출토되었다.


가야 영역에서 보이는 백제에서 비롯된 상감象嵌 기술, 고리자루큰칼, 금박구슬, 금동관모와 천안 용원리, 합천 옥전 고분의 말띠드리개의 유사성은 양국의 긴밀한 교류의 증거이다.



백제 일본과의 교류


기록 속 일본과의 교류


백제는 동아시아 해상 무역권을 장악한 4세기 후반부터 왜와 본격적으로 교류하였다.

한학, 유학, 불교, 천문, 의학, 미술, 음악, 건축술, 직조법, 양조법 등의 선진 기술과 문물을 왜에 전해주었다.


근초고왕 대에는 왜왕에게 칠지도七支刀와 칠자경七子鏡을 보냈고, 아직기와 왕인 등이 유교와 한자 등 학문과 각종 기술을 전하였다. 왜로부터는 스에키須惠器, 금송金松 등의 각종 특산물을 공급받고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왜병을 지원받기도 하였다.


백제 금동관모. 일본 구마모토

(백제 금동관모, 일본 구마모토 에다후나야마고분)



백제 금동신발. 일본 구마모토

(백제 금동신발, 일본 구마모토 에다후나야마고분)


에다후나야마고분江田船山古墳(えたふなやまこふん)


일본 구마모토켄熊本県 세이바루 고분군 가운데 가장 큰 길이 62m, 높이 10m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다. 5세기 후반에 축조되어 6세기 전반까지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이 밝혀졌다.


추가장 때 부장된 금동관모, 금동 신발, 뚜껑접시 등은 백제산이나 백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아 백제와 일본 간 교류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83년 고이왕 50년

 봉의공녀縫衣工女를 왜에 파견하여 직조법織造法 전수 | 일본서기

 284년 고이왕 51년

 아직기阿直岐, 왜에 건너가 말 기르는 법을 전수하고 태자의 스승이 됨 | 일본서기

 369년 근초고왕 24년

 왜왕에게 칠지도七支刀를 하사 | 칠지도

 397년 아신왕 6년

 왜와 우호 관계를 맺고 태자腆支를 볼모로 보냄 | 삼국사기

 402년 아신왕 11년

 사신을 왜에 보내 큰 구슬을 구함 | 삼국하기

 405년 아신왕 14년

 왕인, 한문을 전파하고 태자의 스승이 됨 | 고사기, 일본서기

 409년 전지왕 5년

 왜가 사신을 보내 야명주夜明珠를 바침 | 삼국사기

 418년 전지왕 14년

 왜에 사신을 보내 백금白錦(흰비단) 10필을 보냄 | 삼국사기

 428년 비유왕 2년

 왜의 사신이 왔는데 종자從子가 50명이나 됨 | 삼국사기

 463년 개로왕 9년

 화공畫工 인사라아因斯羅我, 일본에 파견 | 일본서기



백제, 중국, 왜와의 교역백제, 중국, 왜와의 교역



백제와 왜의 교역품백제와 왜의 교역품

(백제에선 미륵보살반가상, 칠지도, 금동관모, 금동신발, 바둑판과 바둑돌이 전해졌고, 일본에선 스에키 등을 백제로 보냈다)


백제와 중국의 교역품백제와 중국의 교역품

(백제에선 세미계, 밤, 세포 등을 보냈고, 중국에선 흑유닭모양항아리, 양모양청자, 청동초두, 허리띠꾸미개, 흑유항아리, 청자뚜껑항아리, 흑유병, 청자완을 보냈다)



백제와 일본의 교역품


백제 -> 일본


 오색채견五色彩絹

 여러가지 고운 빛깔의 비단

 각궁전角弓箭

 소나 양의 뿔로 장식한 활

 직조법織造法

 피륙 등을 짜는 법

 양조법釀造法

 누룩을 이용한 양조법

 철정鐵鋌

 철소재나 화폐로 쓰인 덩이쇠



일본 -> 백제


 스에끼須惠器

 흑청색을 띤 경질의 토기

 금송金松

 일본 특산종의 소나무

 궁전弓箭

 활과 화살

 양마良馬

 품질 좋은 말

 견사絹

 비단과 실



백제 중국과의 교류


기록 속 중국과의 교류


백제와 중국의 교류는 서진(265~316) 시대인 3세기 말부터 빈번히 이루어졌다.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다량의 동전무늬도기錢文陶器, 유약바른도기는 백제와 서진의 교류를 보여준다.


동진(317~420)대 두 나라의 교류는 더욱 활발해진다. 몽촌토성, 풍납토성, 화성 사창리의 동진대 허리띠꾸미개와 풍납토성, 원주 법천리 출토품인 청동초두靑銅鐎斗와 많은 수의 청자는 두 나라의 밀접한 교류의 증거이다.


백제 청동초두



백제 중국 교역품. 청동초두


청동초두, Bronze tripod cauldrons with handle

1. 위 그림 왼쪽 - 전 서울 풍납토성 출토. 중국 동진 시대.

2. 위 그림 오른쪽 - 강원 원주 법천리 출토. 중국 동진 시대.


초두는 술, 물과 같은 액체를 끓이거나 데우는 데 사용한 그릇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제사와 같은 의례에 많이 사용하였다. 흔히 청동이나 철로 만들었으며, 몸통에 긴 손잡이와 3개의 긴 다리를 붙인 모습이다. 한국에서 청동초두는 서울과 원주에서 2점만 출토되었으며, 모두 중국 동진東晉 계통으로 추정된다.



 280년 고이왕 47년

 서진에 자주 사신을 파견하여 토산물을 바침 | 진서

 372년 근초고왕 27년

 사신을 동진에 파견함 | 삼국사기

 416년 전지왕 12년

 동진 안제安帝가 전지왕을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진동장군백제왕으로 책봉함 | 삼국사기

 440년 비유왕 14년

 송에 사신을 파견함 | 삼국사기

 463년 개로왕 9년

 송에 사신을 파견함 | 남제서



백제 청자 뚜껑 항아리백제 청자 뚜껑 항아리


백제 청자 뚜껑 항아리 - 중국 동진 시대의 것으로 충남 공주 수촌리에서 출토되었다.


백제와 중국의 교역품


백제 -> 중국


 명광개明光鎧

 황칠黃漆을 하여 황금빛이 나는 갑옷

 조부

 글씨나 그림을 새긴 도끼

 황칠수黃漆樹

 황칠이 쓰이는 나무

 세포細布

 올이 가늘고 고운 삼베

 과하마果下馬

 크기가 작은 조랑말

 세미계細尾鷄

 꼬리가 긴 닭



중국 -> 백제


 도자기陶瓷器

 서진, 동진제 청자, 도기

 동경銅鏡

 청동거울

 채백彩帛

 무늬 비단

 금포錦袍

 비단으로 만든 두루마기

 복서卜筮

 역림, 식점 등 역술-점술 서적

 불전佛典

 열반경 등 불교 경전


출처 - 한성백제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