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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 2~3세기 여러 나라들과 삼한

2~3세기의 여러 나라 2~3세기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는 여러 나라가 있었습니다. 가장 북쪽에는 부여, 압록강 유역에는 고구려가 이미 큰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한강 유역과 서쪽 바다 근처 평야 지대에는 마한, 남쪽 바다 근처에는 변한, 동쪽 바다 근처 산간지역에는 진한이 있었는데, 모두 합해 삼한이라고 부릅니다. 삼한은 지금 시와 군 크기와 비슷한 작은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 밖에 한반도 동해안의 북쪽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가 있었습니다. 삼한, 옥저, 동예 등은 절대적 권력을 지닌 왕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행정, 세금, 군대 등의 제도를 잘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여러 나라는 서로 경쟁하면서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삼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옛 기록을 ..

동아시아 역사 2017.07.08

조선 시대 활자의 조판과 인쇄, 인쇄 관련 규정

주자소1403년(태종 3)에 설립되어 1900년대 초반까지 500여 년간 조선 시대 금속활자의 주조와 인쇄 활동을 주관한 중앙관서 활자의 조판과 인쇄 1. 인판 틀을 준비한다.2. 인판 틀은 네 변에 둘레를 돌리고 중간에 판삼을 마련하고, 각 줄은 계선으로 칸막이를 한다.3. 인쇄하고자 하는 원고 또는 책의 본문을 창준이 차례로 부른다.4. 수장이 활자를 찾아내어, 그 원고 위에 벌려 놓는다.5. 골라 놓은 활자가 한 장 분량이 되면 판에 올린다.6. 균자장은 활자 배열이 끝나면 대나무 조각 등으로 활자의 틈에 끼워 움직이지 않게 한다. 또 활재 다지개 등으로 활자를 다져 수평이 되도록 바로 잡는 작업을 한다.7. 균자장이 판을 짜놓으면 인쇄가 시작된다. 먹솔로 활자면에 먹물을 고루 칠한다.8. 인출장은..

동아시아 역사 2017.07.07

소하가 미앙궁을 크게 지은 데 대한 논 - 이가환이 정조에게

신은 삼가 논합니다. 거룩하고 밝은 임금과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가 함께 나라의 계책을 토론하는 경우에는, 그 염려가 항상 깊고도 멀어서 다른 사람에게 고해주지 않습니다. 이는 고해주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형세상 고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한고조漢高祖는 규모規模가 굉하여서 천지天地를 쳐들 만 한 도량이 있었습니다. 미천한 신분으로 있을 때부터 이미 두루 보고서 탄식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고조가 일찍이 함양咸陽을 두루 둘러보다가 진 황제秦皇帝를 보고는 위연히 탄식하기를, "아, 장부라면 마땅히 저와 같아야 한다"고 하다. 史記 卷8 高祖本紀) 그러다가 함곡관函谷關 안으로 들어가서 아방궁阿房宮을 보면서는 마치 본디부터 익숙하게 봐왔던 것처럼 여겼습니다. 이것은 구구한 것들을 보고서는 마음이 동..

동아시아 역사 2017.07.06

조선 왕실의 회화와 풍경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왕실의 회화관을 둘러보고 올리는 포스트입니다. 왕실의 회화 조선 왕실에서는 일찍부터 국가 통치에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회화를 제작하였다. 궁중 회화에는 어진, 궁중기록화, 장식 병풍, 장식 벽화, 궁궐도, 회화식 지도 등이 있다. 이외에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이 여가나 취미활동으로 그린 그림과 감상을 목적으로 소장했던 국내외 명작들도 있다. 왕의 초상인 어진은 솜씨가 뛰어난 화원畵員을 선발하여 제작한 후 진전眞殿에 예를 가춰 모셨다. 왕실의 주요 행사 장면을 그린 궁중 기록화는 행사를 기념하고 후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제작하였다. 또 단청을 하거나 벽화를 그려 궁궐 건물의 안팎을 꾸몄고, 각종 장식화 병풍을 만들어 궁궐 내부를 장식하였다. 이 밖에도 군사, 정치적 목적에 따라 ..

동아시아 역사 2017.07.04

고려 유명한 인물들 - 서긍이 꼽은 이자겸, 윤언식, 김부식, 김인규, 이미지

수태사상서령 이자겸 守太師尙書令 李資謙 고려는 본래부터 족망族望을 숭상하고 국상國相은 거의 훈척勳戚 나라에 공이 있는 임금의 친척을 임용한다. 왕운王運(14대 헌종)으로 부터 이씨李氏의 후손에게 장가들었는데, 왕우王俁(16대 예종)도 세자世子 때에 또한 이씨의 딸을 맞아 비妃로 삼았다. (출처 : 이자겸의 난 Part 1 왕보다 힘센 이자겸 - 외척의 강세 | 고려 역사애니메이션★지니키즈 타임머신) 이로 말미암아 문호門戶가 빛나고 드러나기 시작하여, 자겸의 형 자의資義가 전대前代 왕 때에 이미 국상이 되었다가 일에 연좌되어, 유찬流竄 귀양보내는 것 되었기 때문에 자겸이 형의 일을 경계 삼아 매양 스스로 조심하였으므로, 왕우가 깊이 신임하고 중히 여겨 춘궁春宮 세자의 스승이자 벗으로 삼았다. 이때 왕해王楷..

동아시아 역사 2017.07.03

조선상고사 한자 이두문 관계-통일되지 못한 이두문

조선상고사 - 한자漢字의 수입과 이두문吏讀文의 창작 조선상고사에 조선글이 있었다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아무 증거가 없는 말이니 최초의 쓴 것이 한자일 것은 틀림없다.한자가 어느 때 수입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대개 땅이 지나와 이어져 있어서 두 민족은 기록 이전부터 교통이 있었을 것이니, 한자의 수입도 기록 이전의 일이었음이 명백하다. 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어 도산에서 우에게 금간옥첩金簡玉牒의 글을 가르쳐주었는데, 이 글자는 곧 한자였을 것이니, 조선이 한자를 익혔음이 이미 오래되었음을 볼 것이다. 그 뒤에 한자의 음 혹은 뜻을 빌려 이두문을 만들었는데, 이두문은 곧 조선 고대의 국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국서國書’, ‘향서鄕書’ 혹은 ‘가명假名’이라 일컫고 고려조 이후에 비로소 이두문이라 ..

동아시아 역사 2017.07.02

북위 귀족 내몽골 유물-1500년전 칠관형'관'漆棺开棺

북위 귀족 내몽골 유물-1500년전 칠관형'관'漆棺开棺 북위 귀족 유물 - 지난 2014년 3월 8일, 내이멍구자치구内蒙古自治区(내몽골자치구) 시린궈러锡林郭勒(석림곽혁, 정확히는 시린하오터시锡林浩特市) 초원에서 1,500년 전 북위 귀족의 칠관형관이 발견되었습니다. 무덤 주인은 북방 민족 중 북위 귀족으로 추정되나 성별은 특정할 수 없었습니다. 목관 재료 : 소나무목관 길이 : 2.7m목관 높이 : 높은 쪽 1.4m, 낮은 쪽 1.2m 표면 : 검은색 진흙 묻힌 북위 귀족 사람 머리는 비단으로 감쌌으며, 금으로 도배가 되어있습니다. 내부엔 여러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인물 형상을 살펴본바, 선비족의 특성이 있습니다. 목관 외부는 많이 부패한 상태로 외부가 특히 심하며 내부는 비교적 나은 상황이라 북위 귀..

동아시아 역사 2017.07.01

대한제국 영친왕 유품과 황실 군예복,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 영친왕 유품과 황실 군예복, 국립고궁박물관 황실의 군예복 착용 모습 대한제국 영친왕 군복 및 일반 군복은 지위에 따라 계급을 나타내기 위한 부착물의 형태가 달랐다. 옷 소매에 부착한 '인人'자형 계급장(수장袖章)의 경우, 원수부의 대원수인 황제는 11줄, 원수인 황태자는 10줄이었고, 대장은 9줄, 부장副將은 8줄, 참위參尉는 1줄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사진 속에서도 고종, 순종, 대한제국 영친왕 등이 황실의 군예복을 차려입고 위엄을 갖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대원수복 차림의 고종과 원수복 차림의 황태자 순종입니다. 그 옆에는 한국 풍속, 풍경사진첩(1910) 속의 태황제 복장의 고종이네요. 그 옆에는 육군대장 복장의 순종과 참위 예복을 입은 어린 대한제국 영친왕입니다. 순종과 대한제국 영..

동아시아 역사 2017.06.30

금속활자인쇄의 교정방법 - 청주 고인쇄박물관

금속활자 인쇄의 교정은 보통 세 번의 시험인출과 교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초견初見, 재견再見, 삼견三見이라 하였다. 주된 교정내용은 잘못된 글자, 빠진 글자, 좌우로 기운 글자, 인쇄상태 등이다. 교정방법은 시험인출한 교정지에 붉은색으로 부호와 문자로 수정을 지시하였다. 교정쇄校正刷활자를 조판한 후 인쇄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시험 인출한 교정지이다. 인본이 완성되면 교정지는 대부분 폐기하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된다. 본 교정지는 책 표지로 사용된 것을 떼어낸 것이다. 출처 - 청주 고인쇄박물관

동아시아 역사 2017.06.29

오자서 열전의 서사구조 (복수의 결과) 下

공자 광光이 오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는 속셈이 있음을 알아차린 오자서는 대외적인 일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여기고는 공자 관에게 전제라는 사람을 추천하고, 자기는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勝과 함께 초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사마천 저, 정범진 외 역, 위의 책, pp.48~49.)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오자서는 맹목적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것이 아니라 시류를 읽고 또 그 시류가 자신에게 유리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시류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부분까지가 상승부로서 오자서가 시련을 견디고 복수를 이룰 힘을 가지게 된다. 오나라의 병사들이 영郢에 입성하였을 때 오자서가 소왕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초 평왕..

동아시아 역사 201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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