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우리민족 2~3세기 여러 나라들과 삼한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7. 8. 09:15

2, 3세기의 여러 나라들


2~3세기의 여러 나라


2~3세기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는 여러 나라가 있었습니다. 가장 북쪽에는 부여, 압록강 유역에는 고구려가 이미 큰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한강 유역과 서쪽 바다 근처 평야 지대에는 마한, 남쪽 바다 근처에는 변한, 동쪽 바다 근처 산간지역에는 진한이 있었는데, 모두 합해 삼한이라고 부릅니다.


삼한은 지금 시와 군 크기와 비슷한 작은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 밖에 한반도 동해안의 북쪽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가 있었습니다. 삼한, 옥저, 동예 등은 절대적 권력을 지닌 왕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행정, 세금, 군대 등의 제도를 잘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여러 나라는 서로 경쟁하면서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대 국가우리 민족의 고대 국가



삼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옛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삼한三韓


마한은 한강 유역을 비롯해 한반도 서남쪽에 위치한 50여 개의 작은 나라들이 모여서 이룬 일종의 연맹체입니다. 큰 나라는 인구가 1만 호(5만 명 안팎)를 넘었지만, 대게의 작은 나라는 2~3천 호(1만 명 안팎)였습니다. 처음에는 목지국(천안)이 마한의 맹주였으나, 한강 유역의 작은 나라였던 백제국이 강성해지면서 마한의 여러 나라를 통합하였습니다.


진한은 낙동강 동쪽에 있는 12개의 작은 나라들이 이룬 연맹체로서 사로국(경주)이 맹주였습니다. 사로국이 신라로 발전하면서 진한지역을 통일하였습니다.


변한은 낙동강 서쪽에 있는 12개의 작은 나라들이 이룬 연맹체로서 구야국(김해)의 맹주였습니다. 변한은 나중에 가야로 발전했는데, 철을 생산해 주변의 나라들로 수출했습니다.


부여와 고구려부여와 고구려


옥저 동예 고구려옥저 동예 고구려


삼한과 고구려삼한과 고구려



마한馬韓


- 마한사람들은 농사와 누에치기를 할 줄 알며, 길쌈하여 베를 짠다 ... 여러 국읍에는 각각 한 사람이 천신의 제사를 주재하는데, 천군이라 부른다. 또 소도를 만들어 거기에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후한서 동이 열전 한


- 활, 방패, 창을 잘 쓰며, 비록 남과 다투거나 전쟁을 하더라도 굴복한 상대를 서로 귀하게 여긴다. 진서 동이 열전 마한



진한辰韓, 변한弁韓


- 땅이 비옥하여 오곡이 잘 자라며 누에치기와 뽕나무를 가꿀 줄 알고 비단과 베를 짠다 ... 철이 생산되며 예, 왜, 마한이 모두 와서 사간다. 모든 무역에 철을 화폐로 사용한다. 풍속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고 비파 뜯기를 좋아한다. 아이를 낳으면 머리를 납작하게 하려고 모두 돌로 눌러 놓는다.


그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신체가 장대하고 머리카락이 아름다우며, 의복은 깨끗하고 형법은 엄격하다. 후한서 동이 열전 한


- 그 나라에서는 집을 지을 때 나무를 가로로 쌓아서 만드는데, 감옥과 비슷하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



그 밖의 여러 나라들


그 밖의 여러 나라


부여夫餘

기원전 2세기부터 만주지역에 있었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백제를 세운 온조도 부여사람입니다. 부여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본래 말을 타고 생활하는 기마민족입니다.


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2월에 영고迎鼓라는 축제를 열어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기며 결속력을 다졌습니다. 또 부여사람들은 흰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고구려高句麗

기원전 37년 주몽이 건국하여 기원후 668년까지 존속한 나라입니다. 백제, 신라와 함께 고대국가로 성장하여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초기 수도는 졸본 지역에 있는 국내성으로 지금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에 있습니다. 법이 엄격하고 데릴사위제라는 결혼풍습이 있었으며, 10월에는 동맹東盟이라는 축제를 열어 추수 후 하늘에 감사의 제사를 올렸습니다.


옥저沃沮

두만강과 함경도 동해안 일대에 있었습니다. 기름진 바닷가 평야 지역에 위치하여 오곡과 해산물이 풍부했습니다. 민며느리제라는 결혼풍습이 있어 어린 여자아이를 남자 집으로 보내고 어른이 되어서야 결혼시켰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뼈만 추려 목곽에 넣고 묻었는데 목곽 입구에 쌀을 그릇에 담아 두었으며, 나중에 가족이 죽으면 그 뼈를 같은 목곽에 추가로 묻었습니다.


동예東濊

지금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대에 있었으며, 주로 산과 개울을 마을의 경계로 삼았습니다. 다른 마을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으며, 이를 어기면 노예, 소, 말 등으로 보상해야 했는데, 이를 책화責禍라고 합니다.


10월에는 무천舞天이라는 축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음주가무를 즐겼습니다.


※ 이 포스트는 한성 백제 박물관을 둘러보고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