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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유명한 인물들 - 서긍이 꼽은 이자겸, 윤언식, 김부식, 김인규, 이미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7. 3. 22:05

수태사상서령 이자겸 守太師尙書令 李資謙


고려는 본래부터 족망族望을 숭상하고 국상國相은 거의 훈척勳戚 나라에 공이 있는 임금의 친척을 임용한다. 왕운王運(14대 헌종)으로 부터 이씨李氏의 후손에게 장가들었는데, 왕우王俁(16대 예종)도 세자世子 때에 또한 이씨의 딸을 맞아 비妃로 삼았다.

꼭두각시 인종, 이자겸꼭두각시 인종, 이자겸

(출처 : 이자겸의 난 Part 1 왕보다 힘센 이자겸 - 외척의 강세 | 고려 역사애니메이션★지니키즈 타임머신)


이로 말미암아 문호門戶가 빛나고 드러나기 시작하여, 자겸의 형 자의資義가 전대前代 왕 때에 이미 국상이 되었다가 일에 연좌되어, 유찬流竄 귀양보내는 것 되었기 때문에 자겸이 형의 일을 경계 삼아 매양 스스로 조심하였으므로, 왕우가 깊이 신임하고 중히 여겨 춘궁春宮 세자의 스승이자 벗으로 삼았다.


이때 왕해王楷(17대 인종)가 아직도 어렸지만, 자겸이 박식하고 견문이 많은 선비 8인을 선발하여 지도하게 하였다. 이를테면 김단金端 같은 무리는 그 무렵 본조本朝로부터 사제賜第 임금의 명령으로 특별히 급제한 사람과 똑같은 자격을 주는것를 받고 귀국하였는데, 바로 이 선발에 참예되었다.


임인년, 고려 예종睿宗(16대왕 왕우, 1122) 여름 4월에 왕우王俁가 죽으매, 여러 아우가 다투어 서려고 했다. 이에 앞서 왕옹이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왕 우가 맏이였다.


자겸이 이미 왕를 세웠는데, 중부仲父 대방공帶方公 보보가 그 왕위를 탈취하려고 하여 드디어 문하시랑門下侍郞 한교여韓교如, 추밀사樞密使 문공미文公美와 더불어 불궤不軌 반역를 음모하니, 예부상서禮部尙書 이영李永, 이부시랑吏部侍郞 정극영鄭克永, 병부시랑兵部侍郞 임존林存 등 10여 인이 내응內應하기로 했었었는데, 미처 거사하기 전에 음모가 누설되매, 곧 체포하여 하옥下獄하였다. 자겸이 이에 왕에게 풍간諷諫하여 보보를 해도海島에 추방하고 여러 악인들을 베었으며 여당餘黨 수백 인을 잡아들였기 때문에, 변란을 안정시킨 공으로 태사太師로 승진시키고 식읍食邑과 채지采地를 더 주었으며 벼슬이 상서령尙書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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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겸은 풍모風貌가 의젓하고 거동이 화락하고 어진 이를 좋아하고 선善을 즐겁게 여겨, 비록 정권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자못 왕씨王氏를 높일 줄 알아서, 이적 중에서는 능히 왕실을 부장扶獎하는 자이니, 역시 현신賢臣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참소를 믿고 이득을 즐기며 전토田土와 제택第宅을 치장하여 전답이 연달아 있고 집 제도가 사치스러웠고, 사방에서 궤유饋遺 선물하여 썩는 고기가 늘 수만 근이었는데, 여타의 것도 모두 이와 같았다. 나라 사람들이 이 때문에 비루하게 여겼으니 애석한 노릇이다.


접반 정봉대부 형부상서 주국 사자금어대 윤언식 接伴正奉大夫刑部尙書柱國賜紫金魚袋尹彦植


윤씨는 원래 유학儒學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윤관尹瓘이 왕우(16대 예종) 때에 중추부사中樞府事가 되어 일찍이 조공하러 중국에 왔었는데, 언식은 곧 그의 아들이다.


윤언식의 아버지 윤관윤언식의 아버지 윤관


대대로 이씨李氏들과 혼인했고, 또한 이자겸李資謙과 퍽 좋게 지냈다. 왕해王楷가 세자로 있을 때 언식도 역시 인익引翼 인도하고 보익하다의 반열班列에 참여하였었기 때문에, 왕 해가 즉위한 뒤 높고 귀한 벼슬에 승진되었다. 언식은 풍채가 아름답고 자질이 훤칠하여 완연宛然히 유자儒者의 기풍이 있어, 오랑캐로 대할 수 없었다.


동접반 통봉대부 상서예부시랑 상호군 사자금어대 김부식 同接伴通奉大夫尙書禮部侍郞上護軍賜紫金魚袋金富軾


김씨는 대대로 고려의 큰 씨족이 되어 전사로부터 이미 실려 오는데, 그들이 박씨朴氏와 더불어 족망族望이 서로 비등하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문학文學으로써 진출한 사람이 많다.


작문과 역사가 특기인 김부식작문과 역사가 특기인 김부식


부식은 풍만한 얼굴과 건장한 체구에 얼굴이 검고 눈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널리 배우고 많이 기억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 일을 잘 알아, 학사學士들에게 신임과 복종을 받는 것이 능히 그보다 앞설 사람이 없다.


그의 아우 부철富轍은 또한 시詩를 잘한다는 명성이 있다. 일찍이 그의 형제들의 이름 지은 뜻을 넌지시 물어보았는데, 대개 사모하는 바가 있었다.


관반 금자광록대부 수사공동지추밀원사 상주국 김인규 館伴金紫光祿大夫守司空同知樞密院事上柱國金仁揆


김경융金景融은 왕옹(15대 숙종) 때의 태부 수중서령太傅守中書令이니, 인규는 곧 그의 아들이다. 옹의 아버지 휘徽가 일찍이 김씨의 딸을 맞이하였으니, 왕해王楷가 인규를 원구元舅로 존대할 분의가 있다.


한교여韓교如 등이 반역하였을 때, 이자겸李資謙이 왕해를 도와 여러 반역 도당을 베었는데, 인규가 참여하여 공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공으로 벼슬을 올리고 중추부中樞府에 있도록 했다. 인규는 늘씬하고 수염이 아름답고 모습이 훤칠하고 준수하며, 행동도 단정하고 장중하므로, 선발하여 사신을 접대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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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역사가 술술 - 여진족을 대비하라! 윤관의 별무반_#001)


동관반 정의대부 수상서 병부시랑 상호군 사자금어대 이지미 同館伴正義大夫守尙書兵部侍郞上護軍賜紫金魚袋李之美


고려는 매양 중조中朝에서 사신이 가게 되면 반드시 인재人材를 선발하거나 혹은 조공朝貢갔던 사람으로 관반館伴을 삼는다.


지미는 곧 자겸의 아들인데, 풍채와 용모가 준수하고 아름답다. 언젠가 일찍이 천궐天闕에 입근入覲하고 관館에 머무는 여러 달 동안 관중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지미가 처결하였는데 예禮에 맞지 않게 하는 것이 없었고, 동작이 찬찬하고 단아하여 여유 작작하게 중화中華의 풍도風度가 있었으며, 매양 조정朝廷 일에 언급되면 반드시 권권眷眷 마음이 늘 쏠리는 것 하게 쏠리는 뜻이 있었으니, 그의 충성이 또한 가상하다고 할 만했다.


출처 - 고려도경 9권 인물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