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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회화와 풍경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7. 4. 23:45

국립고궁박물관 왕실의 회화관을 둘러보고 올리는 포스트입니다.


고궁박물관 왕실의 회화관고궁박물관 왕실의 회화관



왕실의 회화왕실의 회화



왕실의 회화

조선 왕실에서는 일찍부터 국가 통치에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회화를 제작하였다. 궁중 회화에는 어진, 궁중기록화, 장식 병풍, 장식 벽화, 궁궐도, 회화식 지도 등이 있다. 이외에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이 여가나 취미활동으로 그린 그림과 감상을 목적으로 소장했던 국내외 명작들도 있다.


왕의 초상인 어진은 솜씨가 뛰어난 화원畵員을 선발하여 제작한 후 진전眞殿에 예를 가춰 모셨다. 왕실의 주요 행사 장면을 그린 궁중 기록화는 행사를 기념하고 후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제작하였다. 또 단청을 하거나 벽화를 그려 궁궐 건물의 안팎을 꾸몄고, 각종 장식화 병풍을 만들어 궁궐 내부를 장식하였다. 이 밖에도 군사, 정치적 목적에 따라 각종 지도를 제작하였고, 궁궐도, 산릉도와 같은 그림도 국정 운영의 자료로 활용하였다.


조선왕조의 모든 회화 업무는 예조禮曺의 감독에 따라 회화 전담부서였던 도화서圖畵署 화원들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궁중 회화는 사실성, 기록성, 상징성, 장식성을 중시하여 제작되었고, 이에 따라 조선의 독창적인 궁중화와 전통을 수립할 수 있었다.




궁중 화원의 업무궁중 화원의 업무



궁중 화원의 업무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 도화서에 들어온 궁중화원들의 업무는 매우 다양하였다. 국정이나 왕실과 관련하여 붓으로 줄 긋고 채색하는 일은 모두 화원들의 업무였다.


화원의 일은 어진 등 초상화 제작, 장식 또는 행사용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도 국가 의례와 관련해서 어보, 어책의 각자한 글씨를 금가루로 메우는 전금塡金, 의물 상자들의 표면 장식그림 그리기, 국가기록물을 편찬할 때 글자 쓰는 관리(사자관寫字官)들이 바르게 쓰도록 보조선을 긋는 인찰印札, 의궤반차도와 도설 등 책에 실을 삽화 그리기 등 매우 다양하였다.


또 외교, 국방과 관련해서는 중국 연행과 일본 통신사행을 수행하여 회화 업무를 도맡았고, 각종 지도와 지형도를 제작하였다. 이외에도 궁궐 건축과 왕실 생활에 관련된 업무로 궁궐 건물과 편액 등에 단청을 하였고, 왕실에서 사용하는 도자기의 표면 장식 그림이나 임금이 착용할 의복의 수본繡本을 그리는 것도 화원의 일이었다.



궁중 화원과 도화서궁중 화원과 도화서



궁중화원과 도화서

조선시대 화원은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되어 궁중의 갖가지 그림 업무를 도맡았던 관원官員이다. 포괄적으로 국가와 왕실을 위해 일하는 직업 화가까지 포함하여 화원이라 이르기도 했다.


도화서는 고려시대의 도화원圖畵院을 계송하여 조선 초에 예조禮曺 소속의 5품직 기관으로 설치하였으나, 성종 대에 도화서로 개칭하고 6품직 기관이 되었다. 도화서의 구성원은 정직正職인 제조提調 1명, 별제別提 2명과 잡직雜職인 20명의 화원과 생도生徒 15명, 배첩장褙貼匠 2명 등 40명 정도였다. 화원의 사회적 지위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어서 의관醫官, 역관譯官, 사자관寫字官과 같은 기술직 중인中人 가운데에서도 낮게 취급되었고, 선발도 과거시험보다 하위인 취재取才(실기시험)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편 조선 후기 정조 대에는 규장각을 중심으로 자비대령화원溠備待令畵員 제도가 정착되어 화원들은 궁궐 내에서 더욱 긴밀하게 국정에 이바지할 수 있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왕권 강화를 위해 추진하였던 어제(임금이 직접 지은 글)의 편찬을 돕는 일이었으며 더 나아가 어진 제작과 같은 중요한 회화 업무를 전담해 나갔다.


국정과 관련된 회화 업무의 수행으로 탁월한 기량을 키웠던 조선 화원들의 활약은 일반 화단에까지 영향을 미쳐 조선시대 회화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조선왕조의 궁중기록화조선왕조의 궁중기록화



조선왕조의 궁중기록화

조선왕조의 궁중에서는 왕실의 존엄을 나타내고 국가의 안정적 운영을 도모하기 위한 행사가 자주 열렸는데, 이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등 의례와 관련한 조선왕조의 규율에 따라 엄격하게 치러졌다. 궁중의 행사는 그림으로 그려져 그 의미를 기념하고 기록하였는데, 이를 궁중기록화宮中記錄畵라고 한다.


왕과 왕비, 왕세자를 비롯한 왕실 가족들의 출산, 생일, 쾌유 등 경사慶事와 장례 등의 애사哀事가 궁중기록화의 주된 주제가 되었다. 궁중기록화의 목적은 의식의 규모 및 진행 과정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정확성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도화서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화원들이 제작을 담당하였으며, 화려하고 장엄한 의식의 장면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하여 밝은 채색이 주로 사용되었고 주변의 산수는 청록화의 강한 색채로 표현하였다.



순종의 천연두 회복 기념 그림 1순종의 천연두 회복 기념 그림 1



순종의 천연두 회복 기념 그림 2순종의 천연두 회복 기념 그림 2



왕세자의 천연두 회복을 기념하기 위한 그림王世子痘候平復陳賀圖 屛風, 조선 1879년


1879년(고종 16) 왕세자(순종)가 천연두에서 회복된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궁중행사도이다. 이해 12월에 왕세자가 천연두에 걸렸다가 낫자 고종은 12월 28일에 창덕궁 인정전에서 이를 축하하기 위한 행사를 거행하였다.


이 병풍은 행사를 준비한 관원들이 발이하여 제작한 것으로 제1폭에 적혀 있는 서문에 의하면 당시 이러한 병풍이 총 3첩 제작되었다. 제8폭에는 여기에 참여한 관원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병풍에 그려진 그림은 당시의 실제 축하 행사 장면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었던 왕세자 책봉 행사 그림의 내용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고궁박물관, 경복궁 향원정고궁박물관, 경복궁 향원정

(경복궁 향원정景福宮 香遠亭)



고궁박물관, 창덕궁 덕수궁고궁박물관, 창덕궁 덕수궁

(창덕궁 부용지昌德宮 芙蓉亭, 덕수궁德壽宮)



경복궁 광화문, 고궁박물관경복궁 광화문, 고궁박물관

(경복궁 광화문景福宮 光化門)



고궁박물관, 경복궁 근정전고궁박물관,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 근정전景福宮 勤政殿, 창경궁 환경전昌慶宮 歡慶殿)



고궁박물관, 창경군 환경전고궁박물관, 창경군 환경전

(창덕궁 애련지昌德宮 愛蓮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