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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56

금관가야 건국과 생활 모습

금관가야는 삼국지에 구야국狗邪國, 구야한국狗邪韓國으로 언급되며, 변진 12국에서 성장하였다. 서기 42년 9명의 추장이 백성들과 함께 구지봉에서 하늘이 내려준 황금알 6개를 맞이하고 그 속에서 태어난 아이 가운데 수로首露를 왕으로 모심으로써 대가락大駕洛 또는 가야국伽耶國을 세웠다. 이런 건국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금관가야는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일대를 기반으로 삼았으며 3~4세기경에는 철 무역을 통해 발전하였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과 대성동 고분군, 부산 복천동 고분군 등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유적들에서 다양한 위세품이 출토되었다. 삼국사기에는 금관국의 수로왕이 동해안에 위치한 음즙벌국, 실질곡국의 영토 분쟁에도 개입했다는 설화가 실려있어, 한때 금관가야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4세기 초 ..

동아시아 역사 2017.05.20

제갈량은 어떻게 자신을 포장해 성공했을까?

많은 사람이 제갈량은 삼국 시대 촉나라의 승상이자, 유비가 세운 촉한의 실질적인 총수로 알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도 직접 처리했고, 많은 직책을 겸임했으며, 성격은 치밀하며 꼼꼼했습니다. 유선은 황제가 되자 제갈량을 상부相父라 불렀으니, 사실상 촉한의 권력은 모두 그의 손에 있었습니다. (이것도 다들 아시겠죠) 제갈량은 자신을 포장하고 마케팅하는 방법으로 이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유비가 자신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훌륭하게 포장하고 홍보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같은 시대에 와룡과 봉추로 유명했던 방통을 통해서 말이죠. 방통은 외모가 별로였지만, 재능과 지식만큼은 다른 사람보다 우월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을 포장해 알릴 줄 몰랐고,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현령县令에..

동아시아 역사 2017.05.19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2~1위 - 고구려 멸망

출처 - 기억나질 않음 5.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2위 2위는 바로 고구려의 멸망이다. 고구려의 멸망은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의 일이다. 고구려가 역사의 전통을 이어나갔다면, 중국, 오랑캐, 왜구와의 격돌이 더 많았겠지만, 철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법, 우리는 더욱 강성한 역사의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역사가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신라의 삼국통일로 우리나라는 당시 인구와 국토 면적이 국력을 좌우하던 시기에 강력한 국가로 거듭나는 조건을 상실하였으며, 사대주의 사상과 무武를 경시하는 기조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뛰어난 역사적인 힘을 자랑하지만, 한반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국한된 소극적인 전통에 불과하게 되었다. 만약 고구려가 그 전통을..

동아시아 역사 2017.05.17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4위 - 인조 반정, 광해군 폐출

출처 - 기억나질 않음 3.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4위 광해군이 더 오래 왕업을 이어 가지 못한 것은 더 안타까운 일이다.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왕이다. 인조반정으로 폐출된 왕으로서 가족의 죽음과 조선의 굴욕을 봐야만 했던 불행한 조선의 임금이다. 광해군은 요즘과 같이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가는 국제정세에서 우리에게 대처방안을 일깨워주는 선각자로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탁월한 외교 정책을 펼친 군주'이 것이 광해군을 새롭게 조명하는 이유이며, 중립 외교 정책을 견지한 군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광해군이 위대한 왕이었다는 것은 탁월한 외교 정책과는 다른 또 하나의 이유가 있으며, 외교 정책에 관해서도 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먼저 광해군은 다른 조선의 왕들과는 다른..

동아시아 역사 2017.05.15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5위 - 소현세자의 죽음

출처 - 기억나질 않음 2.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5위 잃어버린 진보의 꿈. 소현세자의 죽음을 다섯 번째로 꼽겠다. 소현세자는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적통 계승자로 34세의 나이에 죽었다. 정묘호란. 병자호란. 삼전도의 치욕. 심양의 조선관 생활의 사건을 겪으면서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인질 생활 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소현세자는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발병한 지 단 3일만인 1645년 4월 26일 사망하였다. 소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에 관한 여러 정황은 열거하지 않고, 정치적인 상황만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청나라에서 새로운 문물과 개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돌아온 소현세자는 삼전도의 치욕을 겪은 인조에게는 정말 분노할 일이었으며, 청을 배격하고 명을 받드는 것을 명분으로 한 정권..

동아시아 역사 2017.05.14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6위 - 조선 정조의 죽음

출처 - 기억나질 않음 1. 역사상 안타까운 사건 6위 역사상에서 안타까운 일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정말 안타깝고, 뒤돌아봐서도 안타까운 일을 6가지로 간추려 보았다. 그중에서 6위는 조선 22대 왕 정조의 죽음이다. 정조는 영조의 서차남 사도세자(장조, 장헌세자)의 차남이며, 혜경궁 홍씨의 소생이다. 사도세자의 장남 의소세자는 어린 나이에 죽어, 1759년 왕세손으로 책봉되었다. 1762년 사도세자가 죽자 횡사한 영조의 서장자 효장세자에게 입적되어 왕세손이 되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연시한 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한 의지를 보인 영조와 동궁 시절에 전례(사도세자의 죽음)를 밟지 않는 얌전한 처세로 왕위에 즉위한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말과 함께 즉위한 정조는 조정에 일대 개혁..

동아시아 역사 2017.05.13

이순신은 정말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았을까?

출처 - 불멸의 영웅 이순신, 이우각 성웅 이순신은 죽었나 살았나 분명히 전사했다는 데도 두고, 두고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나왔다. 심지어 이런 괴소문까지 등장했다. "자신을 천거한 류성룡柳成龍을 살리고 영웅에게 따르게 마련인 화를 미리 피하고자, 일부러 갑옷도 입지 않고 비 오듯 쏟아지는 조총 탄환에 자신을 노출해 자살 아닌 자살을 감행했다." 세상 사람들의 추측과 입소문은 언제나 현실 이외에 또 하나의 가공적인 현실을 만들어 놓곤 했다. (출처 : 朝鲜文李舜臣将军) (출처 : 朝鲜文李舜臣将军) 이순신의 전사장면을 놓고 "직접 들었다", "직접 보았다", "보고받았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몇 갈래로 이어져 왔다. 우선 조카 이분李芬이 기록한 이순신 행장(죽은 이의 일생을 기록한 글)이 있다...

동아시아 역사 2017.05.10

극성스런 제갈량의 북벌 - 국가의 안보를 위한 몸부림

출처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삼국지의 영웅호걸, 이우각 제갈량의 북벌은 극성스럽다. 마치 '전쟁에 미친' 전쟁광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라의 안보를 더욱 튼튼히 하려는 당연한 몸부림이었다.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하지 않으면 '대문이 없는 집'이나 '담장이 무너진 집'이라는 측면에서 기를 쓰고 기산(후난성 남부)을 차지하려 들었다. 앞에는 위수가 있고 뒤에는 사곡이 있었다. 해발 779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백 리에 걸쳐 있는 큰 산이다. 곱돌(활석)과 대리석이 많은 데다 삼림자원 또한 풍부한 알짜배기 산이다. 제갈량은 기산의 자원 때문이 아니라, '촉으로 향하는 중요한 대문이고 담장'이라서 기어이 차지하려 하고 지키려 했다. 그 대신 낙양(허난성 북서부)에 도읍지를 정한 위나라는..

동아시아 역사 2017.05.09

건국절에 대한 생각 (친일 프레임은 잘못, 임시 정부의 한계에 대해)

1.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광복절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1945년, 일제 치하에서 벗어났지만, 남북한은 3년 후 분단의 아픔을 겪는다. 이런 불완전한 시대의 특정 날짜를 건국절 또는 광복절이라 불러야 한다면, 나는 광복절에 한 표를 던지겠다. 건국의 의미보단 38년 아픔의 해방에 더 큰 의의를 두고 싶다. 2. 왜 친일 프레임으로 옮겨갔는지 너무 당황스럽다. 그저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짜를 건국절로 부르자는 것인데 친일 논란이 끼어든다는 게 놀랍기까지 하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 초기에 친일파들이 가세한 건 사실이나, 이들에게 친일파 대신 건국 공로자란 직함을 내린다는 발상은 그저 지나친 상상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무식하지 않다. 3. 1919년이 건국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

동아시아 역사 2017.05.08

유권자들이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자치통감을 완역하시고, 역사 대중화를 위해 많은 글을 쓰고 계시는 권중달 명예 교수님의 글을 인용합니다. 자치통감에 대한 많은 글이 올라와 있는 통감닷컴은 여러모로 좋은 사이트입니다. 아랫글은 통감닷컴의 "자치통감 이야기" 카테고리 중 95화와 96화에 해당합니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 이를 걸러낼 책임 [클릭] 중원 땅은 한족漢族만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漢이 망하면서 이른바 북방지역에 살던 오호五胡가 중원지역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한족들은 남쪽으로 쫓겨 가서 남조南朝를 이루었다. 이렇듯 한왕조가 망하니 세상은 혼란해졌고, 이런 혼란을 피하여 산속으로 들어가서 노장老莊사상을 공부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러한 분위기와 발맞추어 역시 세..

동아시아 역사 2017.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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