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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 2

북송 말기 고려와 요나라의 상황 (관계)

정삭 正朔 정삭正朔 본래 정월正月과 삭일朔日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그것으로 책력을 뜻하게 되었고, 나아가 고대 중국에서는 제왕이 창업하면 어느 달을 정월로 하느냐를 결정하는 세수歲首의 개정이 있었고, 그것에 따라 신력新曆를 반포하여 국민은 그것을 지켜 제반사를 집행했다. 그래서 봉정삭奉正朔, 즉 정삭을 받든다고 하는 것은 곧 신복臣服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년 원단에는 신력을 반포하고 복속 국가에서는 사신을 보내어 그것을 받아오는 것으로 신복함을 표시하였다. 고려는 당시 북송의 정삭을 받들지 않고 있었다. 당唐 유인궤劉仁軌(당고종唐高宗 때 삼한 공략에 전과를 올렸고, 그가 처음 말한 대로, 고종이 태산을 봉할 때 삼한과 일본의 대표자들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후에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지정사知政事에..

동아시아 역사 2017.05.24

금의 해릉왕 - 그 인물과 행적

금의 제4대 황제는 통상 해릉왕海陵王이라 불린다. 태조의 서장자庶長子 완안종간完顔宗幹의 차자로, 본명은 테크나이, 중국명으로는 량亮이라 한다. 그에게는 천덕天德 정원貞元 정륭正隆의 3원호元號가 있고, 13년의 치세(1149-61)를 가진 황제이면서도 묘호(사후 종묘에 제사 지내질 때 그 종묘 내의 위치를 취해 故황제의 칭호에 사용한다)가 칭해지지 않음은 왜일까. (출처 : 天津的一篇高分的高考作文,批判狭隘汉民族主义思维) 궁정 내에서는 임금을 죽이고 모후를 죽여, 규문이 안정되지 않았고, 밖으로는 가혹한 형벌로써 무고한 자를 살해하고, 까닭 없이 맹약을 깨고, 명분 없이 군사를 일으켜 국력을 소모하는 등의 잘못을 지적받아서 사후에도 종묘(종묘에 제사 지내지는 것은 황제의 특권)에 제사 지내지지 않은 채 단순..

동아시아 역사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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