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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22

[위진남북조 지괴소설] 머리가 진자우를 꾸짖다, 세설신어 장민집

[위진남북조 지괴소설] 머리가 진자우를 꾸짖다, 세설신어 장민집 (6) 세설신어 장민집張敏集에 머리가 자우를 꾸짖다란 글이 실려 있으며 거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친구에 진생秦生이라고 하는 자가 있으며 내 누이의 남편인데 젊었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 같은 무렵, 친하게 사귀던 사람에 태원太原의 온옹溫調, 자는 장인長仁, 영천顯川의 순우筍寓, 자는 경백景伯, 범양道陽의 장화張華, 자는 무선茂先, 사경士卿의 유허劉許, 자는 문생文生, 남양南陽의 추담鄒湛, 자는 윤보潤甫, 하남河南의 정후鄭詡, 자는 사연思淵 등이 있었다. ※ 위진남북조 시대엔 이처럼 사물이나 신체 일부를 빌려 만든 지인소설과 지괴소설이 유행함. 그들은 수년 사이에 서로 계속하여 조정에 출사했다. 그러나 그대(진생)는 좁은 골목 안에..

동아시아 역사 2016.12.14

[위진남북조 시대] 역사책 추천, 중국의 역사, 가와카쓰 요시오

[위진남북조 시대] 역사책 추천, 중국의 역사, 가와카쓰 요시오 일반인들은 중국의 역사를 비롯해 역사를 어려워한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상세한 시대상을 어려워한다. 근데, 오늘 역사책 추천하고자 하는 이 책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더욱 쉽게 그 시대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역사책 추천할 땐 이 책을 꼭 언급하고 싶다. 이공범 교수의 위진남북조사는 애초부터 교과서로 만들어져서 그런가 단어에서부터 문맥, 문장, 목차 등이 너무 어렵다. (고)가와카쓰 요시오씨 교수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일반인들, 특히 중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번역을 담당하신 임대희 교수의 단어 선택과 문장의 흐름을 접하고 있노라면 중국의 역사가 원래 이렇게 쉬웠었나? 싶은..

동아시아 역사 2016.12.10

주덕송, 죽림칠현 유령, 애주가가 외칩니다 "알라뷰 알콜"

주덕송, 죽림칠현 유령, 애주가가 외칩니다 "알라뷰 알콜" 죽림칠현 유령劉伶은 주덕송酒德頌(1)을 지었는데, 그것은 그의 기개를 의탁한 것이었다. 유효표의 주. (1) 명사전名士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유령(죽림칠현 중 한사람, 주덕송을 지음)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우주를 좁다고 했다. 언제나 녹거를 타고 한 병의 술을 휴대했는데 하인이 삽을 들고 따르게 하였다. 그리고, "내가 죽거든 곧 구덩이를 파고 묻도록 하라." 고 말했다. 육신을 흙이나 나무처럼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이 세상을 살았다.' 죽림칠현론竹林七賢論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죽림칠현 유령은 천지 사이에 있으면서 유유히 자기 마음대로 살았는데 어떤 일도 괘념치 아니했다. 어느 때 속인俗人과 서로 다투었는데 그 사람이 옷소매를 흔들면..

동아시아 역사 2016.11.27

동진 사현을 추천한 치초, 비수대전 부견의 탄생 일화 (위진남북조)

동진 사현을 추천한 치초, 비수대전 부견의 탄생 일화 (위진남북조) 치초郗超와 사현謝玄은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때마침 부견이 동진을 병합코자 했는데 우선 양梁, 기岐의 땅(하남성 남부에서 호북성 북부 일대)을 침범하고, 다시 호시탐탐 회수 남쪽도 노리고 있었다. (비수대전을 일으키기에 앞서 국경 요충지를 먼저 함락함) (1) 당시 조정에서는 사현을 파견하여 북벌시키고자 하는 의견이 많았는데 세상의 논자들 사이에서 찬반양론이 있었다. 그러나 치초 만큼은, "사현은 틀림없이 해낼 것이오. 옛날 나는 그와 함께 환선무桓宣武(선무장군이었던 환온)의 막부에 있었는데 그가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을 보면, 등용한 사람에게는 그 힘을 모두 발휘케 하고, 신분이 아주 낮은 자까지도 등용했었소. 이런 점으로 볼 때 틀림없..

동아시아 역사 2016.11.24

중국 화북 지방, 위진남북조 전진 멸망 이후 흥망사

중국 화북 지방, 위진남북조 전진 멸망 이후 흥망사 중국 화북 지방, 동부의 흥망화북 동반부의 옛 전영 영내에서는 384년 모용수가 연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 이윽고 중산中山(하북성 정현)을 수도로 삼고 제위에 올랐다. 이를 전연과 구별하여 후연이라고 한다. 또 모용수(전진 부견에게 중용)의 독립을 계기로 하여 옛 전연의 황제 모용위의 동생들이 장안의 동쪽과 산서성 남부에서 병사를 일으켰고, 이에 호응하고자 한 모용위가 부견에게 살해당한 뒤 동생 가운데 한 명인 모용충이 황제를 칭하였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이 세력은 서연西燕이라 한다. 중국 화북 지방의 서연은 부견으로부터 수도 장안을 빼앗았으나 관중으로 강제 이주되어 있던 선비족이 그 세력의 주체였고 그들은 동쪽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장안을 ..

동아시아 역사 2016.11.21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부생은 오호십육국 전진 초대 황제인 부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애꾸에 성정이 포악했다고 합니다. 저족의 위진남북조 시대 전진秦 황족은 지나칠 정도로 도참을 신봉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부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도참인 오양삼안五羊三眼(양 세 마리에 눈 다섯 개)을 따라 애꾸눈인 부생을 태자로 삼습니다. 아래는 삼국지 다음 이야기 1권 381p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는 부생에 대한 위진남북조 북위의 은사 조일趙逸의 언급이 실려 있다. 낙양가람기는 북위 때 기성 태수 양현지楊衒之가 낙양의 사찰에 관한 전설과 고적 등을 기록해 놓은 문집이다. 조일의 언급은 진서秦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부생은 용맹하고 술을 좋아했으나 어질..

동아시아 역사 2016.11.15

위진남북조시대 교과서, 이공범 위진남북조사

위진남북조시대 교과서, 이공범 위진남북조사 머리말 중, "30여 년 동안 중국사를 강의하면서 곤혹스러웠던 것은 수강생들에게 권장할 만한 참고도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책이 출간된 2003년만 해도 중국의 혼란스러웠던 위진남북조시대의 통사는 접해보기 힘들었습니다. 당시로선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줄 책이었음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자인 이공범 교수님도 서문에 밝혔지만, 사학과 학생들을 상대로 한 교과서 성격이 강한 책이기에 아마추어 독자들이 읽기엔 힘든 면이 있습니다. 아마추어 독자들이 원하는 연도별 시대 흐름과 전쟁 이야기, 거기에 속한 인물들의 입체적인 면들은 이 책을 통해선 접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당시 토지 제도나 귀족들의 청담, 조세 같이 흥미를 끌기 힘든 요소만 가득하다. (왜냐면, 교..

동아시아 역사 2016.11.08

남조 송나라와 제나라 교체배경 (위진남북조 시대 송문제, 소도성)

남조 송나라와 제나라 교체배경 (위진남북조 시대 송문제, 소도성) 송나라 문제가 무인 심경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창백한 지식층의 북벌론을 채용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문제 일대는 어쨌든 문치로 기운 시대였다. 그러나 유씨 집안에 잠재한 무인의 피 혹은 무인이 가지는 억제하기 어려운 권력욕의 불길은 5세기 후반(황족의 할거, 제나라 고제 할거)에 들어가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453년 송나라 문제는 황태자에게 암살되었다. 친위군을 장악한 황태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황족이나 그 밖의 사람들을 계속 희생의 제물로 바쳤다. 그러다가 강주(강서성 구강현)의 군단장으로 있던 황자 유준駿이 제일 먼저 병력을 이끌고 수도로 달려가 황태자의 친위군을 혁파하고 이 폭거를 분쇄했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앙갚음한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 역사 2016.11.03

위진남북조 제나라 소보권의 엽기적 행동

위진남북조 제나라 소보권의 엽기적 행동 북소리에 놀라 뛰는 백성들 황제 소보권(위진남북조 시대 남조 제나라 황제)이 매번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지나는 곳에 있는 인가를 물리쳐 버리고, 오직 빈집만 내버려 두었다. 이를테면, 소보권의 위사尉司(호위를 담당한 관리)가 북을 치면 군사들이 들이닥치니, 사람들은 북소리가 들리는 대로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바로 도망해야 했다. 이것을 범하는 사람은 응당 목이 달아났다. 소보권은 한 달에 무릇 20여 번이나 출궁했는데, 나갈 때는 번번이 정한 곳을 말하지 않고 동서남북으로 말을 타고 달려나가니,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항상 3~4경(새벽 1~3시) 중에 북소리가 사방에서 나고 불빛이 하늘을 밝히며 깃발과 창을 ..

동아시아 역사 2016.10.26

5호 16국 시대 후조 석호와 아들 석수의 기행 (위진 남북조 시대)

5호 16국 시대 후조 석호와 아들 석수의 기행 (위진 남북조 시대) 본래 태자 석수(5호 16국 시대 후조 석호 아들)는 교만하고 음란하고 잔인했다.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을 예쁘게 화장하여 성장盛裝하게 하고는 그녀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그 머리를 쟁반 위에 올려놓고 빈객들과 더불어 전해가면서 이를 보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살을 삶아서 함께 먹기를 좋아하는 끔찍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남조에서 벌어졌던 일탈이 북조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실 태자 석수만 이러한 기행을 즐긴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후조 황제 석호도 비슷했는데, 그의 경우에는 주색에 빠져서 정신없이 즐겼고, 기뻐하고 화를 내는 것에서 분별이 없었다. 후조 황제 석호는 태자 석수에게 상서에서 하는 일을 살..

동아시아 역사 201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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