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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1. 15. 05:00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


부생은 오호십육국 전진 초대 황제인 부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애꾸에 성정이 포악했다고 합니다. 저족의 위진남북조 시대 전진秦 황족은 지나칠 정도로 도참을 신봉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부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도참인 오양삼안五羊三眼(양 세 마리에 눈 다섯 개)을 따라 애꾸눈인 부생을 태자로 삼습니다.


위진남북조 전진 부생[오호십육국 시대] 전진 부생


아래는 삼국지 다음 이야기 1권 381p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는 부생에 대한 위진남북조 북위의 은사 조일趙逸의 언급이 실려 있다. 낙양가람기는 북위 때 기성 태수 양현지楊衒之가 낙양의 사찰에 관한 전설과 고적 등을 기록해 놓은 문집이다.


조일의 언급은 진서秦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부생은 용맹하고 술을 좋아했으나 어질고 살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행한 일을 보면 흉포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사가들은 천하의 모든 악을 그에게 뒤집어씌웠다.


부견은 스스로 현명한 군주를 자처했다. 그는 보위를 탄찰한 뒤 멋대로 부생을 폭군으로 몰았다. 무른 사관이란 모두 이런 자들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부견이 사신들을 조종해 멋대로 역사를 날조한 셈이다.


위진남북조 낙양가람기 북위 조일[오호십육국 시대] 조일의 낙양가람기


부씨 정권은 갈족의 석씨와 달리 한족에 대해 무차별적인 폭정을 행한 적이 없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할 때 부생에 대한 진서의 기록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부견과 부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듯합니다.


근데, 강희제도 훗날 진주秦主 부생이 늘상 사람을 죽여왔다며 비난했던 것으로 봐선 위진남북조 시대 부생이 폭군이라는 인식은 당대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낙양가람기의 기록이 단순히 한 개인의 의견이라면 그렇다고 넘어갈 수는 있겠으나 어쨌든 신선한 기록이네요.


ps1. 부견과 왕맹이란 게임도 있네요


위진남북조 부견과 왕맹[오호십육국 시대] 부견과 왕맹


ps2. 명나라 장헌충과 비슷한 상황일 순 있겠으나, 바이두에서 찾아봐도 부생에 대한 핑계는 낙양가람기로만 들 수 있네요. 좀 다르죠. 아마 다른 기록이 더 나오지 않는 이상 더는 부생을 변호할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오호십육국 전진 부생의 억울함? 부견의 누명? (낙양가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