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행차 6

수원행차와 낙남헌 행사, 혜경궁 홍씨 회갑잔치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행차와 낙남헌 행사, 혜경궁 홍씨 회갑잔치 (수원화성박물관) 수원 백성에게 베푼 혜택 (낙남헌 양로연과 별시) 지팡이든 흰머리 노인들 앞뒤로 모여드니해동의 낙남 연회 화기가 넘치누나바라노니 노인들 백 세의 장수 누리시고자궁께 만만년 장수 빌며 술 따르고 절해주오 - 홍재전서 권6 시2, 수원행차한 정조가 노인들을 위한 잔치에서 읊은 시 낙남헌에서의 양로연윤2월 14일 오전, 정조가 낙남헌에서 영의정 홍낙성洪樂性 등 수원행차를 수행한 노대신老大臣 15명과 수원부의 노인 총 384명에게 양로연을 베푸는 장면이다. 이 잔치에 초대받은 화성부 노인의 명단에 따르면, 관료가 9명, 80세 이상의 노인이 208명이고, 61세 노인이 168명이었다. 이 중 90세 이상의 노인도 16명이나 되었다. 정조는 어머님이..

동아시아 역사 2017.11.01

수원 유수부와 수원행차 (조선 정조의 계획 도시, 수원화성박물관)

수원 유수부와 수원행차 (조선 정조의 계획 도시, 수원화성박물관) 대도시로 성장한 수원 유수부 "이곳은 본디 허허벌판으로 인가가 겨우 5~6호였는데, 지금은 1천여 호나 되는 인가가 즐비하게 찼구나. 몇 년이 안되어 하나의 큰 도회지가 되었다."(- 정조실록 권39, 1794년 1월 15일) 수원(당시 수원 유수부)은 정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농업은 물론 상업이 발달함으로써 일거리를 찾아 유입되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여 서울에 버금가는 도시로 성장하였다.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유수부로 승격 - 활성화되기 시작하는 수원 유수부수원은 1793년 명칭이 화성으로 바뀌면서 유수부로 승격되고, 성을 쌓으면서 점점 발전하였다. 이는 화성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

동아시아 역사 2017.10.29

조선 정조 대왕 화성행궁, 조심태에게 보낸 어찰첩 (수원화성박물관)

조선 정조 대왕 화성행궁, 조심태에게 보낸 어찰첩 (수원화성박물관) 조선 정조 대왕 화성행궁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다. 정조 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으며 1790년에서 1795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다. 그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 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다.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조선 정조가 수원부 유수留守가 집무하는 관아로도 활용하였다. 정조는 1789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 이후 이듬해 2월부터 1800년(정조 24) 1월까지..

동아시아 역사 2017.10.26

조선 정조대왕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 수원행차 그림(봉수당진찬연 칠순, 수원화성박물관)

조선 정조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 수원행차 그림(봉수당진찬연 칠순, 수원화성박물관) 왕실잔치 봉수당진찬연 (1795년 조선 정조의 수원행차 당시) 수원에 당도한 지 3일째 되는 날인 윤2월 13일 아침 8시 45분경, 드디어 예복을 입은 어머니 혜경궁의 등장과 함께 궁중음악이 흐르며 봉수당진찬연이 시작되었다. 이날의 주인공인 정조 어머니 혜경궁은 '오늘의 이 경사를 주상(조선 정조)과 더불어 만백성과 함께하겠노라'며 친정 식구와 함께 아들인 국왕이 마련한 잔치를 맘껏 즐겼다. 222년 전 화성행궁의 봉수당에서는 궁중음식이 차려지고 궁중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궁중무용이 공연되는 도성을 벗어난 최초의 왕실잔치가 밤늦게까지 성대히 거행되었다. 헌선도장수를 기원하는 춤으로 도교에서 복숭아는 장수를 상징한다...

동아시아 역사 2017.10.13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다룬 화성능행도병(수원행차 때 제작)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다룬 화성능행도병(수원행차 때 제작) 8일간의 축제 (혜경궁 홍씨 회갑연)1795년, 2년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시행된 조선 정조대왕의 수원행차는 한 치의 어긋남 없는 성공적인 행사였다. 8일간의 수원행차는 왕실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크나큰 의미를 지닌 행사였으며 정조대왕의 위대한 업적이었다.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명예회복을 추진하는 것은 왕실의 위엄을 높이는 중대사였으며 혜경궁을 모시고 현륭원을 방문한 것은 효의 실천이었다. 수원에서 개최한 다양한 행사 중에서도 봉수당에서 진행된 혜경궁의 회갑잔치는 축제의 핵심이었고, 당대 최고의 격식과 예술성을 담은 왕실 잔치였다. 정조대왕은 회갑연 이후 거행된 양로연과 가난한 백성에게 쌀을 나눠주는 것이 혜경궁 홍씨의 뜻임을 분명히 하였..

동아시아 역사 2017.10.12

조선 정조대왕 수원행차 그림과 갑옷, 투구 (수원화성박물관)

조선 정조대왕 수원행차 그림과 갑옷, 투구 (수원화성박물관) 정조대왕의 갑옷과 투구1795년 윤2월 9일, 정조대왕은 수원행차 시 융복의 차림으로 창덕궁을 출발하였으나, 이튿날 장안문에 다다르자 군문軍門의 절차가 필요함을 밝히고 막차의 설치를 병조판서 심환지에게 명하여 갑주로 갈아입고 입성하였다. 또한, 윤2월 12일 정조대왕은 서장대에서도 군사훈련인 만큼 갑주차림으로 절차를 진행하였다. 서장대야조도 그림에서 장수들의 군복차림을 확인할 수 있다. 본 갑옷과 투구는 KBS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의 축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현전하는 장수들의 갑옷과 문헌사료들을 토대로 복원된 재현품이다. 대모백은장 옥구 보도玳瑁白銀裝玉具寶刀목재로 만들어진 칼집과 손잡이의 외부를 대모玳瑁(바다거북의 등껍질)로 마감하여 제..

동아시아 역사 2017.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