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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 103

위나라와 오나라 고취곡 [형양 전투, 여포 생포, 적벽 전투]

중국의 군대에서는 병사의 사기를 높이고 한편으로는 오락을 제공하기 위해 옛날부터 군가를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 군가는 북과 피리로 반주를 하므로 고취곡鼓吹曲이라 불렸으며.... 위나라의 고취곡 12편은 한나라 말기부터 위나라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중요한 사건을 시대순으로 부른 조곡으로, 각각의 곡은 제목과 간단한 설명 및 노래의 본문으로 되어 있다. ☆ 위나라의 고취곡 (송서 참조 : 송서 145권 [클릭]) 제2곡 형양 전투 - 조공을 말하기言曹公也 [戰滎陽 汴水陂] 전형양 변수피[戎士憤怒 貫甲馳] 융사분노 관갑치[陳未成 退徐榮] 진미성 퇴서영[二萬騎 塹壘平] 이만기 참루평[戎馬傷 六軍驚] 융마상 육군경[勢不集 眾幾傾] 세불집 중기경[白日沒 時晦冥] 백일몰 시회명[顧中牟 心屏營] 고중모 심병영[同盟疑 計..

동아시아 역사 2017.01.06

호조식의 서진과 균전제의 북제

진무제 사마염은 "실로 창과 방패를 거두어야 할" 때라고 하여 주군의 병사를 모두 귀농시켰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호조식戶調式이라고 하는 징세 및 토지 제도의 법령을 반포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출처 : 中国历史人物--晋武帝:司马炎) ☆ 서진의 호조식 1. 정남(丁男 : 16~60세의 남자)을 호주로 하는 집은 매년 비단 3필과 면綿 3근을 조調(농산품의 납부를 의미)로 낼 것 2. 남자에게는 70묘, 여자에게는 30묘를 점전占田시킨다. 3. 정남에게는 50묘, 정녀丁女에게는 20묘, 차정남次丁男(13~15세 및 61~65세)에게는 그 반을 과전 시킨다. 4. 정丁, 차정次丁을 위와 같이 나이에 의하여 구별하는 규정 5. 궁벽하고 외진 지역에 사는 만이蠻夷 등에 대한 부과 규정 6. 1품관에는..

동아시아 역사 2017.01.05

동진 조적과 유곤, 관중에서 꺼진 서진의 마지막 불꽃

유곤劉琨은 조적을 가리켜, 명쾌하게 이치를 터득하고 있다고 칭찬하면서 말했다. "그는 젊었을 때, 왕돈王敦을 감탄케 한 사람이야." (1)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유효표의 주. (1) 우예虞預 진서晉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조적의 자는 사치士稚이며 범양范陽 주遒 땅 사람이다. 방일하고 활달하여 예의범절 따위를 익히지 않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는 한편 베풀기를 좋아했다.' (출처 ; 闻鸡起舞) 진양추晉陽秋에는 이런 말이 있다. '조적은 사공司空 유곤과 함께 호걸로서 세상에 이름이 자자했다. 24세 때 유곤과 같이 사주주부司州主簿로 부름을 받았다. 서로 정이 두터워 함게 이불을 덮고 잔 일도 있었는데 한밤 중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모두 일어나서 말했다. "이는 나쁜 소리만은 아니오." 두 사람은 ..

동아시아 역사 2017.01.05

고구려 괴유가 백인일 가능성 검토 - 하편

그렇다면, 북명이란 지명은 뭔가? 十六年, 春二月, 人耕田, 得王印, 獻之. 남해왕 16년 봄 2월, 북명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의 도장을 주워서 이를 왕에게 바쳤다. 북명이란 지명은 사실 신라 본기에 딱 한 번, 고구려 본기에도 괴유와 관련되어 한 번 나온거 빼곤 나오질 않습니다. 사실 북명이란 단어 자체가 무언가를 특별히 지칭하는 게 아니라 추상적인 형태의 단어이기 때문에 잘 나오지 않는 게 정상일지로 모르겠죠. 하나 더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고구려인 관점에서의 북명과 신라인 관점에서의 북명은 분명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일단 북명이란 단어가 어느 특정한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는 점, 신라와 고구려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김부식이 말한 위치가 분명하지 않고 이름..

동아시아 역사 2017.01.05

고구려 괴유가 백인일 가능성 검토 - 상편

※ 저의 망상일 뿐, 역사적 근거가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上道有一人, 身長九尺許, 面白而目有光. 拜王曰: “臣是人. 竊聞大王北伐, 臣請從行, 取王頭.” 王悅許之. 길을 떠나려 할 때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키는 9척가량이었으며, 얼굴이 희고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그는 왕에게 절을 하고, “저는 북명 사람 괴유입니다. 듣건대 대왕께서 북쪽으로 부여를 친다 하니 제가 따라가서 부여왕의 머리를 베어 오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왕이 기뻐하며 이를 허락하였다. - 얼굴이 희다는 것은 피부가 하얗다는 표현. -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동양인들의 눈은 흰자와 검은자뿐이나, 백인들은 흰자와 검은자뿐이 아님. - 표현에 따라 빛날 수도 있다 하니 백인일 가능성 있음. 欲掩其不備, 策馬以前, 陷濘不能進退..

동아시아 역사 2017.01.05

미움을 받고 목숨을 잃은 하후현 [사마소 형제와 종회 형제의 원한]

하후현夏侯玄이 붙잡혔을 때, (1) 종육鍾毓은 정위廷尉였다. 종회鍾會(종육의 동생)는 그때까지 하후현과 면식이 없었으므로 함부로 행동을 취했다. 하후현이 말했다. "비록 죄수의 몸이라 하더라도 결코 당신의 말에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2) 고문을 당했지만, 처음부터 한마디도 말하지 않은 채 동시東市에서 처형당할 때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3) 유효표의 주. (1) 위씨춘추魏氏春秋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후현이 자는 태초太初이고 초국譙國 사람이다. 하후상의 아들이며 대장군(사마사)의 전처 오빠이다. 사람 됨됨이는 고명했으며 언변이 뛰어났고 박학했다. 정시 연간에 호군이 되었다. 조상이 주살 당한 후에 태상으로 초청되었다. 마음속으로 화를 면치 못할 것을 알고는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았으며 기록..

동아시아 역사 2017.01.04

신라전 국내편4-692~775 [김순원, 부례, 배부, 김의충, 대공 등]

부례夫禮692, 이해에 국선國仙이 됨, 유사693/3.11, 금란金蘭으로 놀러갔다가 북명北溟에서 말갈靺鞨에게 붙잡힘, 유사693/5.15, 아버지 대현大玄의 기도로 인해 돌아옴, 유사안상安常693/3.11, 부례夫禮가 말갈靺鞨에게 붙잡히자 그를 구하기 위해 쫓아감, 유사693/5.15, 대현大玄의 기도로 인해 돌아옴, 유사 김정고金貞高693/3.11, 천존고天尊庫를 맡은 관리였으나 그곳의 물건이 없어져 옥에 갇힘, 유사 미흘美肹699, 신촌新村 사람으로 무게 백 푼되는 황금을 왕에게 바침, 본기 경영慶永700, 모반을 꾀하다 처형됨, 본기김순원金順元700, 경영慶永의 모반에 연좌됨, 본기720, 딸을 성덕왕에게 시집보냄, 본기739, 딸 혜명惠明을 효성왕에게 시집보냄, 본기김문량金文亮700, 이해에 아들..

동아시아 역사 2017.01.04

죽마고우가 과연 친한 친구를 의미할까? [환온의 성격상 그렇진 않다]

은후殷候(은호, 殷浩)가 면관免官(여기선 파면을 의미)되어 서민이 되었을 때, 환공桓公(환온, 桓溫)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어렸을 때 연원淵源(은호)과 함께 죽마竹馬를 타고 좋았는데, 내가 놀다가 (죽마를) 버리면 언제나 그것을 주워서 타곤 했었지. 내 앞에서 머리가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1) (이런 느낌인 건가?, 출처, 바이두 백과) 유효표의 주. (1) 속진양추续晋阳秋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간문제簡文帝(사마욱)가 정치를 보좌하고 있을 때, 은호를 발탁하여 양주자사楊州刺史로 삼고, 환온에게 대항시키고자 하였다. 환온은 평소 은호를 가벼이 보았는데 아주 태연했다.' 주해 은후기폐殷侯旣廢 - 은호는 중군장군中軍將軍, 가절假節, 도독양예서연청오주군사都督揚豫徐兗青五州軍事로 북정 했는데 실패..

동아시아 역사 2017.01.04

사총, 팔달, 삼예 - 위나라를 혼란스럽게 했던 집단들 [조예의 분노]

이때에(203년) 당시 준걸로서 산기상시散騎常侍 하후현夏侯玄, 상서尙書 제갈탄諸葛誕, 등양鄧颺의 무리가 함께 서로 품제品題하여 치켜 세웠는데, 하후현 등 4명을 사총四聰이라 하고, 제갈탄의 무리 8명을 팔달八達이라 했으며(광일光逸, 사곤谢鲲, 완방阮放, 필탁毕卓, 양만羊曼, 환이桓彝, 완부阮孚, 호무보지胡毋辅之), 중서감中書監 유방劉放의 아들 유희劉熙, 손자孫資의 아들 손밀孫密, 이부상서吏部尙書 위진衛臻의 아들 위열衛烈 3명은 모두 그들에게 견줄 만하지는 못하지만 부친의 덕택으로 권세와 지위를 얻었기에 이들을 묶어서 삼예三豫라 했으니, 모두 15명이었다. (출처 : 数百人排队受死,哪怕为钱也壮烈) 명제明帝(조예)는 이들이 부화浮華한 기풍을 조장한다고 혐의를 잡아 모두 면직시키고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

동아시아 역사 2017.01.04

신라전 외교편8 - 662~851년 [신라 멸망할 시기의 인물들]

부량富良862, 입당사入唐使로 당唐에 가는 길에 익사함, 본기 - 당唐 김윤金胤869, 당에 사은謝恩하고 여러 물품 바침, 본기 - 당唐 이동李同869, 김윤金胤을 수행해 당唐에 들어가 당나라 말을 배움, 본기 - 당唐 김인金因870, 당唐에 파견되어 숙위宿衛를 함, 본기 - 당唐 낭공대사郎空大師870, 김긴영金緊榮을 따라 당唐에 감, 고승전 - 당唐875, 성도부成都府에서 예배함, 고승전 - 당唐 김긴영金緊榮870, 당唐에 조공을 바침, 고승전 - 당唐 (출처 : 최치원) 최치원崔致遠874, 당唐에서 과거에 급제함登科, 본기 - 당唐875, 반란을 일으킨 황소黃巢의 토벌군에 참여함, 본기 - 당唐885, 당唐에서 귀국함, 본기 - 당唐 최승우崔承祐890, 당唐으로 유학을 감, 본기 - 당唐893, 당唐..

동아시아 역사 20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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