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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전 외교편8 - 662~851년 [신라 멸망할 시기의 인물들]

부량富良862, 입당사入唐使로 당唐에 가는 길에 익사함, 본기 - 당唐 김윤金胤869, 당에 사은謝恩하고 여러 물품 바침, 본기 - 당唐 이동李同869, 김윤金胤을 수행해 당唐에 들어가 당나라 말을 배움, 본기 - 당唐 김인金因870, 당唐에 파견되어 숙위宿衛를 함, 본기 - 당唐 낭공대사郎空大師870, 김긴영金緊榮을 따라 당唐에 감, 고승전 - 당唐875, 성도부成都府에서 예배함, 고승전 - 당唐 김긴영金緊榮870, 당唐에 조공을 바침, 고승전 - 당唐 (출처 : 최치원) 최치원崔致遠874, 당唐에서 과거에 급제함登科, 본기 - 당唐875, 반란을 일으킨 황소黃巢의 토벌군에 참여함, 본기 - 당唐885, 당唐에서 귀국함, 본기 - 당唐 최승우崔承祐890, 당唐으로 유학을 감, 본기 - 당唐893, 당唐..

동아시아 역사 2017.01.03

동진 효무제에게 중용된 전량 황제 장천석

장천석張天錫은 양주자사凉州刺史가 되어, 서쪽 땅에서 왕王을 참칭하고 세력을 폈는데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에게 붙잡혔고 그의 시중侍中으로 기용되었다. 그 후 수양壽陽에서 함께 패전(비수에서 패배한 일)했는데 장천석은 도읍으로 돌아왔다. (1) 효무제(동진 효무제 사마요)에게 중용되었는데 궁중에 입궐할 때마다 언제나 해가 질 때까지 이야기 상대를 하고 있었다. 이 일을 질투하는 자가 있었는데 어느 좌석에서 장천석에게 물었다. "북쪽에는 어떤 좋은 점이 있습니까?" 장천석이 말했다. "오디(뽕나무 열매)는 달고도 향기로워서 올빼미 솔개가 이것을 먹으면 그 날카로운 소리가 부드럽게 바뀌고, (2) 짙은 낙유酪乳는 온호환 성품을 길러주는 까닭에 사람에게는 질투심 같은 것이 없답니다." (3) (출처 : 鲜为人知的两位..

동아시아 역사 2017.01.03

백제 역대 교역 목록 일람 [삼국사기 본기, 온조왕에서 의자왕]

☆ 온조왕溫祚王 BC9(10) 마한 : 신기한 사슴神鹿, 왕이 사냥해서 잡은 것을 보냄. ☆ 다루왕多婁王☆ 기루왕己婁王☆ 개루왕蓋婁王☆ 초고왕肖古王☆ 구수왕仇首王☆ 사반왕沙伴王 ☆ 고이왕古 王 258년(25) 말갈 : 좋은 말 10필良馬, 추장 나갈이 바침. (출처 : 新疆伊犁天山脚下现万马奔腾 场面壮观) ☆ 책계왕責稽王☆ 분서왕汾西王 ☆ 비류왕比流王☆ 설왕契王 ☆ 근초고왕近肖古王 368년(23) 신라 : 좋은 말 2필良馬, 신라에 보냄. 372년(27) 진 : 조공朝貢을 바침.373년(28) 진 : 조공朝貢을 바침. ☆ 근구수왕近仇首王☆ 침류왕枕流王☆ 진사왕辰斯王 ☆ 아신왕阿莘王 397년(6) 왜 : 인질質, 우호를 위해 태자 전지를 보냄. ☆ 전지왕 支王 406년(2) 진 : 조공朝貢을 바침. 409년..

동아시아 역사 2017.01.03

토욕혼 버전, 화살의 일화 [모용아시와 모용모리연]

(토욕혼의 왕) 아시는 슬하에 20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위대는 장자였다. 아시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각자 내 화살 한 대를 가지고 가서 부러뜨려 땅 아래 놓아보아라" 라고 하였다. 잠깐 있다가 동모의 동생인 모리연에게 말하기를, "너는 화살 한 대를 선택해 부러뜨려 보아라" 라고 하였다. 모리연이 화살을 부러뜨렸다. 또 말하기를, "너는 19대의 화살을 가지고 부러뜨려 보아라" 라고 하였다. 모리연이 부러뜨리지 못했다. 아시가 말하기를, "너희는 알겠느냐? 하나는 쉽게 부러뜨릴 수 있으나 여러 개는 꺾기 어려우니, 전력을 다해 마음을 하나로 하면 사직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며, 말을 마치자마자 죽었다. 형의 아들은 모괴가 즉위하였다. (출처 : 바이두 백과) -- 연개소문이 토욕혼의..

동아시아 역사 2017.01.03

삼국시대 종승의 일화 - 조조를 끝까지 미워하던 그

남양南陽(하남성)의 종세림宗世林(종승, 宗承)은 위 무제(조조)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는데 조조의 사람 됨됨이를 매우 경멸하여 그와 사귀지 아니했다. 조조가 사공司空이 되고 국정을 이어받게 되자 조용히 종세림을 찾아갔다. "이제는 교제할 수 있겠소이까?" 그러자 종세림은 대답했다. "송백松柏의 뜻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종세림은 조조의 뜻을 거역했으므로 소외당했고 그 인덕에 어울리는 지위가 주어지지 아니했다. 그러나 문제文帝(조비) 형제는 종세림의 집을 찾을 때마다 모두 그의 의자 앞에서 독배獨拜하곤 했다. 그가 존경받았던 것이 이와 같았다. 유효표의 주.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종승은 자가 세림이고 남양 안중安衆 사람이며, 부친 종자宗資는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종승은 젊었..

동아시아 역사 20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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