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17/01/05 4

호조식의 서진과 균전제의 북제

진무제 사마염은 "실로 창과 방패를 거두어야 할" 때라고 하여 주군의 병사를 모두 귀농시켰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호조식戶調式이라고 하는 징세 및 토지 제도의 법령을 반포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출처 : 中国历史人物--晋武帝:司马炎) ☆ 서진의 호조식 1. 정남(丁男 : 16~60세의 남자)을 호주로 하는 집은 매년 비단 3필과 면綿 3근을 조調(농산품의 납부를 의미)로 낼 것 2. 남자에게는 70묘, 여자에게는 30묘를 점전占田시킨다. 3. 정남에게는 50묘, 정녀丁女에게는 20묘, 차정남次丁男(13~15세 및 61~65세)에게는 그 반을 과전 시킨다. 4. 정丁, 차정次丁을 위와 같이 나이에 의하여 구별하는 규정 5. 궁벽하고 외진 지역에 사는 만이蠻夷 등에 대한 부과 규정 6. 1품관에는..

동아시아 역사 2017.01.05

동진 조적과 유곤, 관중에서 꺼진 서진의 마지막 불꽃

유곤劉琨은 조적을 가리켜, 명쾌하게 이치를 터득하고 있다고 칭찬하면서 말했다. "그는 젊었을 때, 왕돈王敦을 감탄케 한 사람이야." (1)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유효표의 주. (1) 우예虞預 진서晉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조적의 자는 사치士稚이며 범양范陽 주遒 땅 사람이다. 방일하고 활달하여 예의범절 따위를 익히지 않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는 한편 베풀기를 좋아했다.' (출처 ; 闻鸡起舞) 진양추晉陽秋에는 이런 말이 있다. '조적은 사공司空 유곤과 함께 호걸로서 세상에 이름이 자자했다. 24세 때 유곤과 같이 사주주부司州主簿로 부름을 받았다. 서로 정이 두터워 함게 이불을 덮고 잔 일도 있었는데 한밤 중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모두 일어나서 말했다. "이는 나쁜 소리만은 아니오." 두 사람은 ..

동아시아 역사 2017.01.05

고구려 괴유가 백인일 가능성 검토 - 하편

그렇다면, 북명이란 지명은 뭔가? 十六年, 春二月, 人耕田, 得王印, 獻之. 남해왕 16년 봄 2월, 북명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의 도장을 주워서 이를 왕에게 바쳤다. 북명이란 지명은 사실 신라 본기에 딱 한 번, 고구려 본기에도 괴유와 관련되어 한 번 나온거 빼곤 나오질 않습니다. 사실 북명이란 단어 자체가 무언가를 특별히 지칭하는 게 아니라 추상적인 형태의 단어이기 때문에 잘 나오지 않는 게 정상일지로 모르겠죠. 하나 더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고구려인 관점에서의 북명과 신라인 관점에서의 북명은 분명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일단 북명이란 단어가 어느 특정한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는 점, 신라와 고구려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김부식이 말한 위치가 분명하지 않고 이름..

동아시아 역사 2017.01.05

고구려 괴유가 백인일 가능성 검토 - 상편

※ 저의 망상일 뿐, 역사적 근거가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上道有一人, 身長九尺許, 面白而目有光. 拜王曰: “臣是人. 竊聞大王北伐, 臣請從行, 取王頭.” 王悅許之. 길을 떠나려 할 때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키는 9척가량이었으며, 얼굴이 희고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그는 왕에게 절을 하고, “저는 북명 사람 괴유입니다. 듣건대 대왕께서 북쪽으로 부여를 친다 하니 제가 따라가서 부여왕의 머리를 베어 오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왕이 기뻐하며 이를 허락하였다. - 얼굴이 희다는 것은 피부가 하얗다는 표현. -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동양인들의 눈은 흰자와 검은자뿐이나, 백인들은 흰자와 검은자뿐이 아님. - 표현에 따라 빛날 수도 있다 하니 백인일 가능성 있음. 欲掩其不備, 策馬以前, 陷濘不能進退..

동아시아 역사 2017.01.0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