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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 3

금관가야의 성장과 쇠퇴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제작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삼국지 왜인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대방군에서 왜로 갈 때 해안을 따라 바닷길로 가는데 남쪽으로 갔다가 동쪽으로 가면 구야한국에 이르고, 여기서 바다를 건너 1천여 리 가면 대마국對馬國에 이르고, 다시 바다 건너 1천여 리를 더 가면 일지국一支國에 이르고, 다시 바다 건너 1천여 리를 더 가면 말로국末盧國에 이른다. 흔히 대마국은 지금의 대마도, 일지국은 지금의 이키섬壹岐島, 말로국은 큐슈九州 북부의 해안 지역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3세기 중후반경 김해의 구야국이 해상교통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모두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말에 조영된 덧널무덤이므로, 이 무렵 금관 가야의 교역 활동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 역사 2017.08.13

가야의 대외 교류 (백제, 신라, 중국, 일본과의 교류)

가야의 대외교류 가야의 많은 나라가 낙동강과 그 지류, 그리고 남쪽 바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육지는 물론이고 강과 바다로 이어진 물길로 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갔는데, 가야 지역의 특산품 중 하나는 철鐵이었다. 전기 가야연맹을 이끈 금관가야는 우수한 철을 생산해 한韓, 예濊, 왜倭와 서북쪽의 낙랑, 대방군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철을 만드는 기술은 단단한 그릇을 만드는 기술로도 이어졌다. 5~6세기에 가야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잇는 중요한 통로였다. 백제와 왜의 사신 모두 가야를 거쳐 바다를 건넜다. 비록 6세기 중엽에 가야 제국이 멸망하였지만, 가야 사람들이 개발하고 운영한 교통, 교역 네트워크는 여전히 남아 동아시아의 사람, 기술,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하였다. (5세기엔 고구려 평양, 백제 한..

동아시아 역사 2017.06.05

금관가야 건국과 생활 모습

금관가야는 삼국지에 구야국狗邪國, 구야한국狗邪韓國으로 언급되며, 변진 12국에서 성장하였다. 서기 42년 9명의 추장이 백성들과 함께 구지봉에서 하늘이 내려준 황금알 6개를 맞이하고 그 속에서 태어난 아이 가운데 수로首露를 왕으로 모심으로써 대가락大駕洛 또는 가야국伽耶國을 세웠다. 이런 건국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금관가야는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일대를 기반으로 삼았으며 3~4세기경에는 철 무역을 통해 발전하였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과 대성동 고분군, 부산 복천동 고분군 등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유적들에서 다양한 위세품이 출토되었다. 삼국사기에는 금관국의 수로왕이 동해안에 위치한 음즙벌국, 실질곡국의 영토 분쟁에도 개입했다는 설화가 실려있어, 한때 금관가야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4세기 초 ..

동아시아 역사 2017.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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