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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 3

극성스런 제갈량의 북벌 - 국가의 안보를 위한 몸부림

출처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삼국지의 영웅호걸, 이우각 제갈량의 북벌은 극성스럽다. 마치 '전쟁에 미친' 전쟁광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라의 안보를 더욱 튼튼히 하려는 당연한 몸부림이었다.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하지 않으면 '대문이 없는 집'이나 '담장이 무너진 집'이라는 측면에서 기를 쓰고 기산(후난성 남부)을 차지하려 들었다. 앞에는 위수가 있고 뒤에는 사곡이 있었다. 해발 779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백 리에 걸쳐 있는 큰 산이다. 곱돌(활석)과 대리석이 많은 데다 삼림자원 또한 풍부한 알짜배기 산이다. 제갈량은 기산의 자원 때문이 아니라, '촉으로 향하는 중요한 대문이고 담장'이라서 기어이 차지하려 하고 지키려 했다. 그 대신 낙양(허난성 북서부)에 도읍지를 정한 위나라는..

동아시아 역사 2017.05.09

사총, 팔달, 삼예 - 위나라를 혼란스럽게 했던 집단들 [조예의 분노]

이때에(203년) 당시 준걸로서 산기상시散騎常侍 하후현夏侯玄, 상서尙書 제갈탄諸葛誕, 등양鄧颺의 무리가 함께 서로 품제品題하여 치켜 세웠는데, 하후현 등 4명을 사총四聰이라 하고, 제갈탄의 무리 8명을 팔달八達이라 했으며(광일光逸, 사곤谢鲲, 완방阮放, 필탁毕卓, 양만羊曼, 환이桓彝, 완부阮孚, 호무보지胡毋辅之), 중서감中書監 유방劉放의 아들 유희劉熙, 손자孫資의 아들 손밀孫密, 이부상서吏部尙書 위진衛臻의 아들 위열衛烈 3명은 모두 그들에게 견줄 만하지는 못하지만 부친의 덕택으로 권세와 지위를 얻었기에 이들을 묶어서 삼예三豫라 했으니, 모두 15명이었다. (출처 : 数百人排队受死,哪怕为钱也壮烈) 명제明帝(조예)는 이들이 부화浮華한 기풍을 조장한다고 혐의를 잡아 모두 면직시키고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

동아시아 역사 2017.01.04

삼국시대 종승의 일화 - 조조를 끝까지 미워하던 그

남양南陽(하남성)의 종세림宗世林(종승, 宗承)은 위 무제(조조)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는데 조조의 사람 됨됨이를 매우 경멸하여 그와 사귀지 아니했다. 조조가 사공司空이 되고 국정을 이어받게 되자 조용히 종세림을 찾아갔다. "이제는 교제할 수 있겠소이까?" 그러자 종세림은 대답했다. "송백松柏의 뜻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종세림은 조조의 뜻을 거역했으므로 소외당했고 그 인덕에 어울리는 지위가 주어지지 아니했다. 그러나 문제文帝(조비) 형제는 종세림의 집을 찾을 때마다 모두 그의 의자 앞에서 독배獨拜하곤 했다. 그가 존경받았던 것이 이와 같았다. 유효표의 주.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종승은 자가 세림이고 남양 안중安衆 사람이며, 부친 종자宗資는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종승은 젊었..

동아시아 역사 20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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