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삼국시대 종승의 일화 - 조조를 끝까지 미워하던 그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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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南陽(하남성)의 종세림宗世林(종승, 宗承)은 위 무제(조조)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는데 조조의 사람 됨됨이를 매우 경멸하여 그와 사귀지 아니했다. 조조가 사공司空이 되고 국정을 이어받게 되자 조용히 종세림을 찾아갔다. "이제는 교제할 수 있겠소이까?" 그러자 종세림은 대답했다.


"송백松柏의 뜻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종세림은 조조의 뜻을 거역했으므로 소외당했고 그 인덕에 어울리는 지위가 주어지지 아니했다. 그러나 문제文帝(조비) 형제는 종세림의 집을 찾을 때마다 모두 그의 의자 앞에서 독배獨拜하곤 했다. 그가 존경받았던 것이 이와 같았다.


조조의 화상, 잘생긴 건 아니었던 게 맞는 듯조조의 화상, 잘생긴 건 아니었던 게 맞는 듯


유효표의 주.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종승은 자가 세림이고 남양 안중安衆 사람이며, 부친 종자宗資는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종승은 젊었을 때부터 수덕修德하여 행동이 올바르고 속인俗人과 의연히 교제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불러도 응하지 않았는데 그의 덕망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위 나라 무제(조조)가 젊었을 때 이따금 그의 집을 찾았었는데 빈객들이 너무 많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그래서 종승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다가가서 손을 잡고 교제하기를 청했지만 종승은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조조를 거부하던 남양의 종승(종세림)조조를 거부하던 남양의 종승(종세림)


조조는 그 후 사공이 되었으며 한나라 조정을 보좌하기에 이르자 종승에게 말했다.


"그대는 지난날 나를 상대해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교제할 수 있지 않겠소?"


종승은 말했다.


"송백의 뜻은 지금도 지니고 있습니다."


조조는 기분이 상했으나 종승이 명사였으므로 역시 그를 존경하며 대우했다. 그의 아들 문제(조비)에게 명하여 아들의 예로 그의 집을 찾아가서 한중태수漢中太守를 배명케 하였다.


조조가 기주冀州를 평정했을 때 그가 따라와 업鄴 땅에 이르자 진군陳群 등이 모두 그에게 배례했다. 그러나 조조는 여전히 옛날의 감정을 잊지 아니한 채 종승의 지위를 낮게 하면서도 예의는 후하게 차렸다. 그의 집을 찾아가서 국정國政에 관하여 물었고 빈객의 상석에 앉혔다. 문제는 그를 초빙하여 직간대부直諫大夫로 삼았다.


송백의 뜻松柏之志송백의 뜻松柏之志

(출처 : 360doc)


명제明帝(조예, 曹叡)가 그를 불러 승상丞相으로 삼고자 했으나 그는 나이가 많다면서 극구 사양했다.'


송백지지松柏之志 - 송백이 사시에 그 빛깔을 바꾸지 않는다는 데서 견고하고 변치 않는 사람의 뜻.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공자가 말했다. "겨울 날씨가 추운 다음에 비로소 소나무나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 수 있다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라고 있다.


세설신어 中, 방정方正(현사들의 바르고 모범이 되는 언행)편 2화.

세설신어 中, 안길환, 명문당, 10p~11p


오.... 종승에 대한 기록은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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