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사총, 팔달, 삼예 - 위나라를 혼란스럽게 했던 집단들 [조예의 분노]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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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203년) 당시 준걸로서 산기상시散騎常侍 하후현夏侯玄, 상서尙書 제갈탄諸葛誕, 등양鄧颺의 무리가 함께 서로 품제品題하여 치켜 세웠는데, 하후현 등 4명을 사총四聰이라 하고, 제갈탄의 무리 8명을 팔달八達이라 했으며(광일光逸, 사곤谢鲲, 완방阮放, 필탁毕卓, 양만羊曼, 환이桓彝, 완부阮孚, 호무보지胡毋辅之), 중서감中書監 유방劉放의 아들 유희劉熙, 손자孫資의 아들 손밀孫密, 이부상서吏部尙書 위진衛臻의 아들 위열衛烈 3명은 모두 그들에게 견줄 만하지는 못하지만 부친의 덕택으로 권세와 지위를 얻었기에 이들을 묶어서 삼예三豫라 했으니, 모두 15명이었다.


반란 준비를 위해 여론을 조성하는 제갈탄반란 준비를 위해 여론을 조성하는 제갈탄

(출처 : 数百人排队受死,哪怕为钱也壮烈)


명제明帝(조예)는 이들이 부화浮華한 기풍을 조장한다고 혐의를 잡아 모두 면직시키고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위진세어, 김장환, 학고방, 176p~177p

출전, 삼국지 위서 제갈탄전


당시로선 삼국의 정립이 어느 정도 굳어져 함부로 상대방을 침범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전쟁이 줄고 아버지 빽만 믿은 금수저들의 또라이짓이 벌어진 것이죠.


위명제 조예위명제 조예

(출처 : 바이두 이미지)


228년 6월 (명제가)조칙을 내렸다.


- 유학을 존중하고 학문을 중시하는 것은 제왕 교화의 근본이 된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면서 유학을 배운 관원 중에 경전에 정통하지 못한 자가 있으니, 어찌 성현의 도리를 널리 알릴 수 있겠는가?


진삼국무쌍의 제갈탄진삼국무쌍의 제갈탄

(출처 : 바이두 이미지)


230 2월 4일 (명제가) 조서를 내렸다.


- 세상의 질質(소박함을 존중한 문장)과 문問(수식을 존중한 문장)은 왕이 가르치는 바에 따라 변화한다. 전란이 발발한 이래 경학 교육은 이미 폐지되어 끊어졌고, 나아가 젊은 사람들은 벼슬길에 나아가려고 할 뿐, 경전을 학습하려 들지 않는다. 어찌 내가 가르치고 이끄는 것이 미흡하다고 하여 기용되는 자가 덕의에 따르지 않겠는가?


앞으로는 관리들이 하나의 경전을 배워 통달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재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박사들에게는 시험을 부과하여 그 중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은 자를 선발하여 즉시 등용하라. 품행은 떠있고 화려하기만 하여 그 근본을 아는 데 힘쓰지 않는 자는 파면하여 물러나게 하라.


호무보지 초상호무보지 초상

(출처 : 360doc)


230년의 저 조서로 사총, 팔달, 삼예는 조정에서 쫓겨납니다. 위에 언급된 이들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다른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은 되나, 그 똑똑한 머리로 애널 써킹을 하고 있으니, 명제로선 열이 엄청나게 받았나 봅니다.


이 기록에 대해선 어느 분이 좋은 글을 남겨 주셨네요. 링크를 남깁니다.


링크 - (펌) 진정한 수성의 인주 - 명제 조예 (내정)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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