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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3

하멜과 나가사키 총독의 심문 내용

나가사키 총독이 한 질문과 이름을 밝힌 우리가 대답한 답변 내용. 1666년 9월 14일 1. 너희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며 어디서 왔는가?우리는 네덜란드 사람이며 조선에서 왔다. 2. 어떻게 조선에 가게 되었으며 타고 간 배는?1653년 8월 16일 스페르베르호가 5일간 계속된 폭풍우로 난파되어서 조선에 가게 되었다. 3. 배가 난파된 곳은 어디이며 사람은 몇 명이었고 대포는 몇 문 있었는가?우리는 켈파르트라 부르고 조선 사람들은 제주도라 부르는 섬 근처였고, 승무원은 64명, 대포는 30문이었다. 4. 켈파르트 섬은 본토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 섬의 상황은?본토 남쪽으로부터 75km 또는 9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인구는 조밀하고 땅은 비옥하다. 그 섬 주위는 110km 정도 된다..

동아시아 역사 2017.08.12

처음 만난 조선인에 대한 기록 - 하멜표류기

8월 15일 바람이 너무 심해서 갑판 위에서는 서로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으며 더더구나 작은 돛조차도 올릴 수가 없었다. 배가 바닷물을 많이 뒤집어썼기 때문에 바닥의 물기를 퍼내느라 일을 계속해야 했다. 바다에 계속 비바람이 몰아쳐서 연이어 물을 뒤집어썼기 때문에 우린 침몰당하여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했다. 저녁 무렵 이물[船首]과 고물이 파도에 거의 떨어져 나갔고 선수船首 사장斜檣마저 헐거워져서 이물 전체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이물을 몽땅 잃지 않으려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으나 배가 심하게 요동치고 집채만 한 파도가 연이어 우리를 덮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는 파도를 벗어나기 위한 더 나은 방도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앞 돛대의 돛을 조금 느슨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명과 배와 회사..

동아시아 역사 2017.06.01

하멜 표류기에 적힌 조선의 대기근

1661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곡식과 그 밖의 다른 작물을 별로 수확하지 못했다. 1662올해 추수를 할 때까지 상황이 더 어려워서 수천 명의 사람이 기근으로 죽어갔다. 도로를 이용하기가 어려웠는데, 그건 도둑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왕의 명령으로 모든 도로에 경비대가 주둔했는데, 그것은 여행자의 안전을 도모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아사餓死한 사람들을 매장하기도 하며, 매일같이 일어나는 살인이나 강도를 예방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몇몇 고장과 마을들이 털리고 국고(“쌀 창고는 해안의 몇 군데에 있었는데 인근 지역의 기근에 대비했고, 공덕功德에 따라서 구호물 지급자에게 왕이 내리는 상을 주었다.”[파커, “조선”, 「차이나 리뷰」ⅪⅤ, 129].)가 습격당해 곡물을 강탈당했는데 범죄자들이 잡히지는 않았다...

동아시아 역사 20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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