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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3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광개토태왕과 후연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광개토태왕과 후연 복수, 후연을 몰아붙이다광개토태왕은 거란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쪽 변경을 순시하며, 북연에게 무력시위를 하는 동시에, 고구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건재함을 알린 적이 있습니다. 이후 양국은 영토를 뺏고 뺏습니다. 변경에선 수많은 시체와 병장기들이 땅속에 묻힌 상황이었을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장의 국면이 바뀌는 시기가 있었으니, 400년 2월에 이뤄진 후연의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기습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고구려는 신성과 남소성을 비롯한 700리 땅을 빼앗기고 5,000여 호의 백성도 빼앗깁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은 신라를 거쳐 가야로 진군한 남해안 정벌군을 복귀시킨 뒤, 대대적인 반격에 나섭니다. 400년 3월 ~ 401년 사이에 잃어버린 70..

동아시아 역사 2017.10.24

우리민족 2~3세기 여러 나라들과 삼한

2~3세기의 여러 나라 2~3세기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는 여러 나라가 있었습니다. 가장 북쪽에는 부여, 압록강 유역에는 고구려가 이미 큰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한강 유역과 서쪽 바다 근처 평야 지대에는 마한, 남쪽 바다 근처에는 변한, 동쪽 바다 근처 산간지역에는 진한이 있었는데, 모두 합해 삼한이라고 부릅니다. 삼한은 지금 시와 군 크기와 비슷한 작은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 밖에 한반도 동해안의 북쪽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가 있었습니다. 삼한, 옥저, 동예 등은 절대적 권력을 지닌 왕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행정, 세금, 군대 등의 제도를 잘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여러 나라는 서로 경쟁하면서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삼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옛 기록을 ..

동아시아 역사 2017.07.08

위진남북조 시대 동아시아 고구려 (화북 국가와 충돌)

위진남북조 시대 동아시아 고구려 (화북 국가와 충돌) 고구려高句麗위진남북조 시대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국가형성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고구려이다. 이는 1세기부터 2세기 동안 요동에서 한반도 북부에 걸쳐 설치된 요동군, 현도군 등 한제국의 파견기관과 직접 접촉하면서 투쟁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2세기 후반부터 3세기에 걸쳐 요동에서 반쯤 독립한 한인인 공손씨 세력과 화북을 제압한 위나라와의 접촉, 투쟁에서도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238년 위나라(위진남북조의 위를 말함)에 멸망한 공손씨의 반독립국에는 184년 황건의 대란으로 시작된 화북의 혼란을 피해 많은 한민족이 유입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당시의 일류 지식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도의 중국 문명이 요동지방에 현실적으로 뿌리를 내..

동아시아 역사 201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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