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삼국시대, 고려 시대 수원 역사와 유물 (수원화성박물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1. 12. 02:39

삼국시대, 고려 시대 수원 역사와 유물 (수원화성박물관)


한성백제 시대의 수원

한성백제는 마한 지역 연맹체인 안성천과 한강 유역 소국들의 다양한 정치적 경험을 흡수하면서 성장한 고대국가이다.


백제는 고이왕대 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비류왕대 정치, 경제적 기반을 토대로, 4세기 근초고왕대 안정적 국가기반을 바탕으로 활발한 대외 정복 활동을 벌여 경기, 충청을 거쳐 전라도에 이르는 영역을 차지한다.


475년 고구려의 침입으로 한성을 포기하고 웅진으로 천도함으로써 500여 년 가까운 한성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수원지역은 이른 시기에 백제 세력권에 편입되었으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화성 동탄 먹실유적, 발안리 마을 유적이 있다.

삼국 문화의 융합점, 한강 유역과 수원지역

수원지역은 서해안과 한강 하류 지역에 위치하여, 백제, 고구려, 신라를 모두 거치면서 삼국의 문화적 역량을 축적한 지역이다.


한강 유역 및 경기 일대의 장악을 통해 백제는 고대국가로 성장하였고, 고구려는 중국과 대적할 만한 동아시아의 패자로 성장하였으며, 신라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삼국의 문화적 접점에 속했던 수원은 500여 년간 한성백제의 통치를 받았고, 475년부터는 고구려의 매홀로, 이후 553년 신라가 이곳을 장악한 이후에는 수성군으로 개칭되어 신주에 속하였다.


통일신라 시대의 수원

통일신라 시대 수원과 경기지역은 한산주로 국방상의 요충지였으며 대중국 교섭통로였다. 한산주 일대는 나당전쟁이 집중적으로 벌어진 곳으로, 통일초기에는 신라의 국경 지역으로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또한, 신라말에는 남양만 일대에 당성진, 혈구진, 장구진을 설치하여, 대중국 교섭의 관문으로 활용하였다.


한산주는 신라말 군사, 정치적 역할은 축소되었지만, 고려의 정치 지배세력으로 성장한 당성진, 혈구진을 거점으로 하는 해상세력과 철원, 수원 죽산 등의 지방세력이 성장하는 새로운 기반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수원 독무덤 백제 삼국시대[수원 역사] 수원화성박물관


독무덤甕棺墓

화서동 꽃뫼 출토, 삼국시대 (백제)


팔달문 동종 경기도 화성군[수원 역사] 수원화성박물관


팔달문 동종八達門 銅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9호, 1687년


경기도 화성군 만의사 종으로 주조되었으나 수원 화성 건설로 함께 종로의 종각으로 옮겨지면서 팔달문 동종이라 불렀다. 종신의 기록을 통해 1080년 처음 만들어졌고, 1687년 경기도 수원부 만의사 대종으로 새로이 주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종의 상대上帶는 범자梵字를 새겨 넣은 원형 문양을 2줄로 돌렸고, 그 아래에 4개의 유곽乳廓과 보살입상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유곽 안의 유두가 보상화문으로 표현된 것이 독특하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2008년 9월 수원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수주시대의 수원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을 정벌할 때 수성군의 김칠과 최승규 등의 호족세력이 귀순하여 공을 세워 수성군을 수주로 승격시켰다.


수주는 1018년(현종 9) 지방 제도가 정비되면서 영역이 크게 확장되었다. 1271년(원종 12)에 수원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수원부가 되었다.


고려 태조 수원 수주 수원도호부[수원 역사] 수원화성박물관


고려 시대의 수원

1018년(현종 9년) 수주의 경계


수원 최씨 세보 최루백 최상저[수원 역사] 수원화성박물관


수원 최씨 세보水原 崔氏 世譜

최루백崔婁伯의 아버지인 최상저崔尙翥를 시조로 하는 수원최씨의 족보이다. - 1905년


수원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성씨는 고대 왕실이나 귀족층에서 주로 쓰이다가 고려 문종 대 이후 널리 사용되었다.


성씨 사용이 확대되면서 본관이 생겼으며, 수원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성씨로는 수원 김씨, 수원 이씨, 수성 최씨, 수원 최씨, 수원 백씨, 수원 방씨, 수원 엽씨, 수원 견씨 등이 있다.


탐진 최씨 최임한 묘 부장품[수원 역사] 수원화성박물관


탐진최씨 묘 부장품

최원습 묘 부장품


이승종 묘 부장품 수원 유물[수원 역사] 수원화성박물관


최임한 묘 부장품


최임한 묘 부장품 수원 유물[수원 역사] 수원화성박물관


이승종 묘 부장품


박유명 초상화 인조반정 상주 박씨[수원 역사] 박유명 초상화


박유명朴惟明 초상화, 보물 제1489호

박유명이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으로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되었을 때의 공신상이다.


17세기의 전형적 공신상 양식으로 얼굴표현에서 신중함과 더불어 무관다운 용맹함이 잘 표현되어 있다. 박유명은 상주 박씨로 수원 사람이다.


갑득호일서급 조선후기[수원 역사] 갑득호일서급


갑득호일서급甲得弧日書給

생일을 맞은 아들 갑득에게 아버지가 배우고 익혀 입신을 이루라는 뜻에서 성현의 글을 정서한 필사본이다. - 조선 후기


김중신 호구단자 화성부 장안면[수원 역사] 김중신 호구단자


김중신 호구단자金仲臣 戶口單子 / 호패, 1861년

관에서 호구장적戶口帳籍을 만들 때 호주가 자기 호의 상황을 적어서 관에 제출한 문서. 1861년(철종 12) 화성부 장안면長安面에 거주하는 유학 김중신이 제출했다가 돌려받은 호구단자이다.

김중신의 신상과 가족 내력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사조가 기록되어 있다.


암행어사 관 관문서 공충도[수원 역사] 암행어사 관. 천안 김제역


암행어사 관문서 비관 2마패[수원 역사] 암행어사관. 공충도.


암행어사 관暗行御史關, 조선 후기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으로, 또는 동등한 관청 상호 간에 보내는 관문서官文書. 이 관關은 공충도公忠道 암행어사가 총리사摠理使에게 보낸 것이다. 수원부 장주면 영통리에 사는 오성묵을 천안 김제역으로 속히 내려보낼 일로 문서를 보냈다.


말 두 마리를 역에서 지급받을 수 있는 2마패를 관인을 대신하여 답인하였다.


긴급하고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일에 발급하는 비관秘關인 만큼 봉투에 총리사가 직접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하도록 주문하고 문서를 보낸 시간도 써 두었다.


신읍치 수원지도 1872년[수원 역사] 신읍치 수원지도


신읍치 수원지도 1872년


수원군 지도 1914년 수원[수원 역사] 수원군지도 1914년


수원군지도 1914년


삼국시대, 고려 시대 수원 역사와 유물 (수원화성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