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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역사, 100년 전 사진 [수원화성박물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1. 10. 09:52

수원 역사, 100년 전 사진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 남공심돈 일대[수원 역사 100년전] 수원화성 남공심돈


100년 전 수원화성

1907년 독일장교 헤르만 산더(Hermann Sander, 1868~1945)가 찍은 수원화성의 모습이다. 100년 전에 그는 주일 독일대사관 무관으로 1년간 조선에서 봉직했으며, 일본인 사진사를 대동하고 조선과 중국의 여러 곳을 여행했다.


1907년 3월 헤르만 산더는 1905년 개통된 경부철도를 이용하여 기차를 타고 수원을 방문하였다. 이때 촬영된 15컷의 사진이 100년 전의 수원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들은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수원화성 남수문 수원화성박물관[수원 역사 100년전] 남수문

수원화성 선정비 매향교 수원화성박물관[수원 역사 100년전] 선정비, 매향교


화홍문 수원화성 수원화성박물관[수원 역사 100년전] 화홍문


수원향교 수원화성 박물관 수원[수원 역사 100년전] 수원향교

정조의 꿈을 실현하는 수원

정조는 수원을 무대로 개혁 의지를 실현하면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왕권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이 사랑하던 백성들을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펼쳐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역사는 정조를 탕평군주, 개혁군주, 애민군주로 평가하며 조선의 대표적인 성군으로 칭송하였다.


수원화성 박물관 신풍루[수원 역사 100년전] 화성행궁 신풍루


융릉 사도세자 무덤 수원화성박물관[수원 역사 100년전] 융릉 (사도세자 무덤)


방화수류정 수원화성[수원 역사 100년전] 방화수류정


220여 년 전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으로 옮기고, 팔달산 아래에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이곳에서 자신의 개혁 의지를 실천해 나갔다.

이후 수원은 수도 한양에 버금가는 도시로 탈바꿈해 갔고 수원이 성장할수록 왕권의 지엄함도 높아져 갔다.


수원화성 교동 영국성공회[수원 역사 100년전] 교동 영국성공회


수원 성내 시장 상점 수원화성[수원 역사 100년전] 성내 시장 상점


매산학교 수원화성 박물관[수원 역사 100년전] 매산학교


성내 시장 상점 수원화성 박물관[수원 역사 100년전] 성내 시장 상점


수원화성 박물관 성안거리[수원 역사 100년전] 성 안 거리

매산학교 수원화성 박물관 수원[수원 역사 100년전] 매산학교


수원 수원시내 19세기 수원화성박물관[수원 역사 100년전] 수원시내


이렇듯 수원을 중심으로 펼쳐진 정조의 개혁정책은 왕권을 강화했고 이는 왕실과 관료들보다는 나라의 근본인 백성을 위한 길이었다.


힘없는 민초들을 위해서 쓰는 국왕의 힘, 이것이 바로 정조가 바라던 진정한 왕권 강화였다. 비록 정조의 급작스런 승하로 인하여 꿈은 스러졌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정조의 개혁정신은 이곳 수원에서 계승되고 있다.


앞으로도 수원화성은 체계적인 복원 계획에 따라 세계적인 역사문화 도시로 성장하여 정조의 개혁정신을 실현해 나갈 것이다.


1970년대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수원 역사 100년전] 화서문, 서북공심돈


1970년대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1975년부터 1979년까지의 5개년 복원계획에 따라 국비 32억 8천 600만 원의 재원을 들여 수원화성의 성곽을 복원하였다.


장안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정조 행차 행렬[수원 역사 100년전] 정조 대왕 행차


장안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정조 행차 행렬

수원시에서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의거한 정조의 수원행차를 매년 수원화성문화제 때 재현하고 있다.


수원 역사, 100년 전 사진 [수원화성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