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오대십국, 이 표현이 맞을까? [왕부지의 비판]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17. 17:00

... 객관적으로 볼 때 오대십국의 시기를 53년간으로 한정하는 것은 적잖은 문제가 있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는 755년부터 당나라가 공식적으로 멸망하는 907년까지 약 150년 동안 지방에 근거지를 둔 절도사節度使가 사실상의 독립국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5대의 창업주 모두 안녹산 및 사사명, 주차, 이희열 등 '안사지란' 이후에 등장한 번진 군벌세력의 후신에 불과하다.


오대십국 형세도오대십국 형세도

(출처 : 바이두 이미지)


이는 명대의 왕부지가 이미 독통감론에서 갈파한 것이기도 하다.


"소위 '5대' 용어는 송나라 사람들이 멋대로 만들어 붙인 것에 불과하다."


당나라 역사를 3백년으로 간주하는 것은 왕부지가 지적했듯이 송대의 역사관을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8세기 중반에 일어난 '안사지란安史之亂'을 계기로 당나라가 공식적으로 패망하는 1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년 동안 난세가 지속한 셈이다. 당나라가 3백 년간 지속했다는 기존의 통설에 대한 일대 수정이 필요한 이유다.


... 서기 755년 11월, 안녹산이 거란 등 이민족의 정예 기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20만 명의 호한 연합을 이끌고 지금의 북경인 범양에서 거병해 동도인 낙양으로 진격했다.


... 오대십국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후한 말기의 군웅할거 시대를 후한의 역사로 볼 수는 없다) 당나라 역시 후한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황소지란黃巢之亂'이 일어나는 885년에 이미 패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축(당나라 마지막 황제인 애제)주전충에게 양위하는 907년을 오대십국의 출발점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후량의 건국자 주온 (주전충)후량의 건국자 주온 (주전충)


오대십국의 종점도 마찬가지다. 사가들은 송태조 조광윤이 후주의 마지막 황제인 공제 시종훈으로부터 선양을 받은 서기 907년을 종점으로 잡았으나 이 또한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삼국시대는 사마염의 진나라 군사가 동오의 수도 건강성을 함락시키는 서기 280년에 비로소 종식됐다.


... 송태종 조광의가 979년 5월에 북한을 병탄하면서 마침내 (통일이) 성사됐다. 송나라가 들어선 지 19년 만의 일이다. 오대십국 시대의 종점을 기존의 학설과 달리 20년 가까이 뒤로 물려야 하는 이유다.


송태종 조광의송태종 조광의


... 오대십국 시대는 '황소지란'이 일어나는 885년부터 송태종의 북한 병탄이 이뤄지는 979년까지 모두 94년간에 달하게 된다. 사가들이 오대십국 시대를 50여 년으로 축소한 것은 화북 일대에서 5개 왕조를 세운 이민족의 역사를 오랑캐의 역사로 간주하는 한족 중심의 '중화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 주전충이 후량을 세운 이후의 시기만을 지칭하는 오대십국 용어 자체가 사람들에게 후기 당나라와 오대십국이 마치 별개의 시기인 양 착각도록 만들고 있다. 당나라가 공식적으로 패망한 이후의 시기만을 특정해 오대십국으로 지칭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당나라 말기 주요 세력당나라 말기 주요 세력

(출처 : 唐末宋初的归义军政权金山国地图)


... 왕부지는 독통감론에서 오대십국의 명칭을 이같이 비판해 놓았다.


"소위 '오대'는 송나라 사람이 멋대로 붙인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어찌 대代(왕조 교체)라고 칭할 수 있는가? '대'는 왕조가 연속해 이어지거나 바꾸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이 혁명을 통해 천하를 통일한 것을 두고 삼대三代(하, 은, 주)로 칭하는 것이다.


주전충과 이존욱, 석경당, 유지원, 곽위 등은 당나라 영토 내에서 할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대'가 될 수 있는가? 주전충은 도적이고, 이존욱과 석경당 및 유지원은 짐승 같은 사타족의 우두머리다. 주전충이 당나라를 대신한 것은 남북조 때 후경이 양나라를 대신하고, 사타족의 3인이 중원의 주인을 대신한 것은 서진 말기에 유총 및 석호가 서진을 대신한 것과 같다."


출처 1 - 오대십국지, 신동준, 학오재, 들어가는 글

출처 2 - 오대십국지, 신동준, 학오재, 139p


시대 전체를 다룬 통사는 이 책이 유일해서 가장 먼저 읽었습니다.

(참조 - 5대10국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책 - 신동준, 오대십국지 [클릭])


5대 10국 시기의 책이라곤 오대십국지 딱 한 권이지만, 이 점을 두고 다른 책들을 읽어봐야겠네요.


왕부지. 명말청초의 지식인왕부지. 명말청초의 지식인

(출처 : 人教三最新教材 第一单元  中国传统文化主流思想的演变)


신동준 씨의 이전 책인 "삼국지 다음 이야기"에서도 5호 16국 시대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읽고선 반신반의했었습니다만, 시대 전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니 굳이 폐기할 필요까지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북조만의 역사를 설명할 때 5호 16국이란 시대가 있었다는 정도만 알아도 그 시대를 이해하기가 더욱 쉬울 겁니다.


오대십국이란 명칭도 과연 그런 의미일지 아닐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나무위키를 참조해 보면 당나라 말기와 후한 말기는 분명 다릅니다.


1. 후한은 군벌들을 전혀 제어하지 못했으나 당은 절도사들을 어느 정도 제어했고, 

2. 후한의 군벌들은 정통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했으나 당의 절도사들은 그렇지 않았고,

3. 왕조 교체기에 조정 관료들이 대거 교체되는 행위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풍도)


분명히 양상이 다르긴 한데, 현재로썬 아는 바가 적어 더는 논하진 못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