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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계보 6 - 번한 왕위 계보, 치두남에서 서우여까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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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한 왕위 계보(74대, 존속연도 : 2140년)


1. 치두남蚩頭男 - 83 - B.C.2233

치우천왕의 후손으로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게 세상에 알려졌다. 단군은 곧 불러보시더니 이를 기이하게 여기시고는 곧 그를 번한으로 임명하고 겸직하여 우虞의 정치를 감독하게 하였다.


경자년(B.C.2221)에 요중遼中에 열두 개의 성을 쌓았으니, 험독險瀆, 영지令支, 탕지湯池, 용도, 거용, 한성, 개평, 대방, 백제百濟, 장령, 갈산, 여성이 그것들이다.


2. 낭사琅邪 - 14 - B.C.2251

치두남이 죽으니, 아들 낭사琅邪(2대)가 즉위하였다. 이해 경인 3월 가한성可汗城을 개축함으로써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대비하였다. 가한성은 일명 낭사성이라 하니 번한의 낭사에 세워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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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创意卡牌神仙杀 新英雄妲己登场)


3. 물길勿吉 - 52 - B.C.2228

4. 애친愛親 - 45 - B.C.2187

5. 도무道茂 - 46 - B.C.2143

6. 호갑虎甲 - 27 - B.C.2098


7. 오라烏羅 - 58 - B.C.2072

갑신년(B.C.2017)에 하나라왕 소강小康이 사신을 보내 새해 인사를 올렸다.


8. 이조伊朝 - 41 - B.C.2015

9. 거세居世 - 16 - B.C.1975

10. 자오사慈烏斯 - 15 - B.C.1960

11. 산신散新 - 54 - B.C.1946


12. 계전季佺 - 30 - B.C.1893

경인년(B.C.1891) 명을 받아 삼신의 단을 탕지산湯地山에 세우고 관리들의 집을 옮기게 하였다. 탕지는 옛날의 안덕향安德鄕이다.


13. 백전伯佺 - 38 - B.C.1864

14. 중전仲佺 - 57 - B.C.1826


15. 소전少佺 - 44 - B.C.1770

갑오년(B.C.1767)에 장군 치운蚩雲을 파견하여 탕湯을 도와 걸桀을 치게 하였다.

을미년(B.C.1766)에 묵태墨胎를 파견하여 탕임금의 즉위를 축하했다.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탕왕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탕왕

(출처 : {转}中国帝王图 - 皇名月)


16. 사엄沙奄 - 1 - B.C.1727

17. 서한棲韓 - 63 - B.C.1726

18. 물가勿駕 - 5 - B.C.1664


19. 막진莫眞 - 47 - B.C.1660

20. 진단震丹 - 7 - B.C.1614

21. 감정甘丁 - 79 - B.C.1608


22. 소밀蘇密 - 10 - B.C.1530

22. 사두막沙豆莫 - 10 - B.C.1521

24. 갑비甲飛 - 12 - B.C.1512


25. 오립루烏立婁 - 25 - B.C.1501

26. 서시徐市 - 85 - B.C.1477


27. 안시安市 - 42 - B.C.1393

28. 해모라奚牟羅 - 20 - B.C.1352

29. 소정小丁 - 52 - B.C.1333


30. 서우여徐于餘 - 59 - B.C.1282

서우여徐于餘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았더니 서우여는 몰래 좌원坐原에 돌아와 사냥꾼 무리 수 천인과 더불어 짜고 군대를 일으키니 개천령蓋天齡이 듣고 즉각 토벌하려 했으나 패하여 싸움터에서 죽고 말았다. 단제께서는 몸소 삼군을 이끌고 토벌하러 갔다.


3세기 초 변한3세기 초 변한


이에 먼저 사람을 보내 서우여를 비왕椑王에 봉할 것을 약속하시며 다시 설득하니 서우여가 이에 따르므로 단제께서는 서우여徐于餘(30대)를 번한으로 삼으셨다.


4년 기해(B.C.1282)에 진조선은 천왕의 칙서를 전하였다.


"그대들 삼한은 천신을 위로 받들고 백성들도 이에 따르도록 교화하라."


이때부터 백성들에게 예의, 누에치기, 베짜기, 활쏘기, 글 등을 가르쳤으며, 백성들을 위하여 금팔법禁八法을 만들었으니,


남을 죽이면 같이 죽여서 다스리고,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배상케 하고,

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남자는 신분을 무시해 버리고는 그 집의 노비가 되게 하고, 여자는 계집종이 되게 하며,

소도를 훼손시키는 자는 가두어 두며,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무하게 하고,

근면하게 노동하지 않는 자는 부역을 시키며,

음란한 행동을 하는 자는 태형笞刑으로 다스리고,

사기 치는 자는 훈계 방면하나 스스로 속죄하려 하면, 공표하여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면하여 주지만 백성들이 오히려 수치스럽게 여겨서 결혼도 할 수 없었던 듯하다.


이로써 백성들은 끝내 도둑질 따위는 하지 않았으니 문을 닫거나 잠그는 일도 없었고 부녀자들은 정숙하여 음란하지 않았다. 밭이나 들, 도읍지를 막론하고 음식을 바쳐 제사 올리니 어질고 겸양하는 풍속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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