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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동탁은 황제가 되려했을까? 한나라 헌제를 폐위한 필연성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1. 17.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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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동탁은 황제가 되려했을까? 한나라 헌제를 폐위한 필연성


동탁의 낙양 입성동탁의 낙양 입성


현 황제에 대한 태도는 동탁이 가장 난폭했는데, 그는 황제를 폐위했습니다.

동탁은 도성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황제를 바꾸어야 한다고 제기합니다. 이유는 그 자신의 말에 따르자면, 소제 유변이 우매하고 유약한 반면 진류왕 유협은 성주聖主의 자질(요 임금의 초상화와 닮은 외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삼국지 동탁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전략이나 한나라 헌제가 등에 따르면, 동탁이 도성에 들어왔을 때 낙양은 이미 크게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대장군 하진이 환관들에 의해 피살당하고, 14세의 소제 유변과 그 동생인 9세의 진류왕 유협(후에 한나라 헌제)은 민간에서 떠돌다가 천신만고 끝에 도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동탁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말이 이끄는 황제의 수레를 영접할 때, 소제 유변은 하염없이 훌쩍거리며 한마디도 또박또박 말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한헌제가 되는 진류왕 유협은 아주 분명하고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동탁은 이때 황제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동탁이 황제를 바꾼 진짜 이유는 아닙니다.


진삼국무쌍7의 한 헌제 유협진삼국무쌍7의 한 헌제 유협


동탁은 일찍부터 이전의 권신들처럼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자신이 섭정을 하며 정권을 잡고, 그다음에는 황제의 자리를 찬탈할 생각(한나라 헌제 폐위)이었습니다. 꼭두각시로 만들 것이라면 굳이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요? 우매하고 유약한 편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동탁 같은 효웅이 그저 자신의 개인적 기호와 일시적인 기분에 따라서 억지로 황제를 한번 바꾸어보려고 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의도는 아마도 개인적인 위엄과 명망을 세워서 중앙 정권을 제어하는 데 있었을 겁니다. 동탁은 서북 출신의 군벌로서, 거칠고 난폭했으며 사람 죽이는 것이 몸에 베어있어 인복도 없었고 위엄과 명망도 없었습니다.

그는 몇 번이나 사대부들을 구슬렸지만, 사대부들은 내심 그를 경멸했습니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동탁은 난폭하기는 했지만, 교활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지 동탁전의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구주춘추九州春秋에 따르면, 동탁이 처음 낙양에 들어왔을 때, 병마는 사실 3천뿐이었습니다. 그는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지 못할까봐, 이 3천의 군사들을 매일 밤 평복으로 성을 나가게 했다가 이튿날 다시 대대적으로 행진을 하면서 들어오게 했습니다.


4~5일을 계속해서 이렇게 하자, 사람들은 모두들 그가 천군만마를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삼국무쌍7의 한 헌제 복황후진삼국무쌍7의 한 헌제 복황후


동탁은 속임수로 성공을 거두자 득의양양해합니다.


그는 조정의 문부백관들을 제압했을 뿐 아니라, 도성 안의 녀석들도 알고 보니 전혀 다루기 어렵지 않다는 의외의 발견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동탁은 더 큰 행동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한번에 큰일을 해치워서 자신을 흔들리지 않는 숭고한 위치에 세우기로 한 것입니다. 그 일이 바로 황제인 한나라 헌제 폐위였습니다.


동탁의 생각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너희들은 모두 황제를 두려워하고, 황제에게 복종하지 않는가? 만약 내가 황제마저도 바꾼다면, 그래도 너희들이 나에게 복종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소제 유변을 폐위시키면 하태후도 폐위시킬 수 있습니다.


진삼국무쌍7의 한 헌제 복황후2진삼국무쌍7의 한 헌제 복황후2


진류왕 유협은 생모가 없었습니다. 그의 생모인 왕미인은 하태후가 독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협을 황제로 세우면 하태후가 더는 수렴첨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장애물도 제거하고 위엄도 세우게 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였습니다.


삼국지 강의 1권, 이중톈, 김영서

[삼국지] 동탁은 황제가 되려했을까? 한나라 헌제를 폐위한 필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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