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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 채제공 유물, 시호교지, 번암집, 정조 어제시 (수원화성박물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1. 2.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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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 채제공 유물, 시호교지, 번암집, 정조 어제시 (수원화성박물관)


번암 채제공 집안의 기증유물

번안 채제공의 6대 후손 채호석 선생이 집안의 유물 153점을 2006년에 일괄 기증하였다.


채제공은 조선후기 학문과 정치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정조시대의 대표적인 재상으로서, 초대 수원유수를 지냈으며 수원화성 축성을 총괄하여 수원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이러한 연유로 채호석 선생과 그 부인 김양식 여사는 평생 수집해온 집안의 유물을 수원시에 기증했다.

기증 유물 중 채제공 초상의 초본과 정본 등은 보물 제1477-1호로 일괄 등록되었으며, 정조어필 비망기는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98호로 지정되었다. 채제공가의 기증유물은 채제공의 정치적, 학문적 위상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며 한 시대를 관통하는 우수한 유물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채제공 번암 정조 어제시[수원화성박물관] 시호교지


시호교지諡號敎旨

1799년(정조 23) 2월 19일 정조가 채제공에게 문숙文肅이라는 시호를 내린 시호교지다. 문文은 민첩하고 학문을 좋아함을 뜻하고, 숙肅은 마음가짐을 과단성 있게 하는 것을 뜻한다. 채제공의 장례는 3월 26일 사림장으로 치러졌고 경기도 용인 북동에 안장되었다.


50여 년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삼정승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홀로 재상을 도맡을 만큼 정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정조는 채제공에 이어 정만사, 조심태, 김혁, 이명식 등 신임하던 여러 노대신들을 차례로 먼저 떠나보내고 채제공이 떠난 1년 반 후인 1800년 6월에 승하하였다. 교지를 보관하던 함도 남아있다.


정조 어제시 번암 채제공 수원유수[수원화성박물관] 번암집


번암집樊巖集

1824년(순조 24)에 간행된 번암집 목판본이다. 62권 30책 가운데 50권 25책만 현전하며 제1책부터 제30책 이외에 권수책을 별도로 만들었다.

권수책에는 사륜에 해당하는 글을 수록하고 제1책의 본문 앞에는 어제시, 1824년 홍시제洪時濟가 글씨를 쓴 정조의 어정범례御定凡例, 이정운 등의 부주가 목판으로 새겨져 있다. 정조는 채제공의 문집을 편찬하는 기준을 직접 정하여 내려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어정범례다.


번암집 가운데 수원과 관련된 내용이 다수 실려 있는데, 그중 서장대의 상량문은 정조의 명을 받아 채제공이 짓고 쓴 것이다.


번암선생집 홍시제 정조 충신[수원화성박물관] 번암선생집


채제공 번암집 번암선생집[수원화성박물관] 번암선생집


번암선생집樊巖先生集

목판본 번암집을 간행하기 전에 필사한 초고본이다.


표지 이면에 번암선생집 구본舊本을 정조의 어정범례대로 다시 편차하고 3본을 베껴 서울, 영남, 충청도에 보내니 더는 편차를 바꾸지 말고 이 책을 기준으로 간행할 것을 당부하는 별지가 붙어있다.


1책의 본문 앞에 정조의 어제시와 어정범례 그리고 그 어정범례에 따라 편차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62권 30책 가운데 표지 오른쪽 위에 권수라고 표기된 제1책을 포함한 27권 22책만 전한다.

정조의 충신, 번암 채제공


"진실로 사심이 없는 나의 신하이고 세손의 충신이다."


이는 일찍이 영조가 채제공을 일러 정조에게 한 말이다.

채제공은 정조에게 불세출의 인물이라 불릴 정도로 최고의 신임을 받은 신하였다.


채제공 조선 정조 영조 숙종[수원화성박물관] 1795년 수원 행차 당시 총리대신으로 선두에서 국왕행렬을 이끌던 채제공


채제공蔡濟恭 (1720~1799)


본관 평강平康, 자 백규伯規, 호 번암樊巖, 번옹樊翁, 시호 문숙文肅


 1720년(숙종 46)

 충청남도 홍주(현재의 충남 청양)에서 탄생

 1743년(영조 19)

 문과 정시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 권지부정지에 임명

 1758년(영조 34)

 도승지 및 병조, 예조, 호조판서 역임

 1772년(영조 48)

 세손우빈객으로 세손(정조) 교육에 참여

 1775년(영조 51)

 평안도 관찰사 역임 및 약방제조로 영조의 병간호 담당

 1776년(영조 52)

 국장도감 제조로 영조 장례 주도

 1777년(정조 1)

 자객 궁궐 침범 시 수궁대장으로 궁궐 수비

 1786년(정조 10)

 정조에게 밀부를 받고 평안도 병마절도사 역임

 1788년(정조 12)

 우의정에 임명

 1789년(정조 13)

 현륭원 조성의 총호사로 역임

 1790년(정조 14)

 좌의정에 임명

 1791년(정조 15)

 시전의 금난전권을 폐지한 신해통공을 주도

 1793년(정조 17)

 초대 수원유수 역임, 이후 영의정에 임명

 1794년(정조 18)

 화성 성역 총리대신으로 신도시 수원 건설 주도

 1799년(정조 23)

 1월 18일 80세로 사망, 시호 문숙, 나주 미천서원 배향

 1824년(순조 24)

 번암집 간행


수원화성박물관 정조 유물 시호교지[수원화성박물관] 정조 어제시


정조 어제시正祖御製詩

정조가 수원의 홍범산과 봉조산 등의 여러 산을 돌아보고 밤이 다 되어 화성행궁으로 돌아와서 채제공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어제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어제시 현판은 큰 글씨로 쓴 후 작은 글씨로 연대와 쓴 사람의 관직과 성명을 상지이십년上之二十年 병진丙辰 춘春 이월二月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議政府 좌의정左議政 신臣 채제공蔡濟恭 봉교근서奉敎謹書라고 표기하여 1796년(정조 20) 2월 채제공이 정조의 어제시를 써서 제작한 현판임을 알 수 있다.


정조 지음.

어가가 홍범과 봉조 등 여러 산을 순행하고 밤에 화성의 행공으로 돌아왔다. 이에 정리대신 원보 채제공의 시에 차운하여 짓는다.


놀라 허둥지둥하고 또다시 그리워지니,

보이는 듯 들리는 듯하여 차마 못 들어가겠네.

우뚝하여라, 높은 산은 하늘이 내린 집이요.

어슴푸레 완묘에선 날마다 의관을 내온 듯하다.


번암 채제공 유물, 시호교지, 번암집, 정조 어제시 (수원화성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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