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우리 민족 인쇄의 시작과 역사, 사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6. 4. 14:35

인쇄의 시작


자신의 의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또 전달받는 정신적, 심리적인 교류는 인류문화의 시작과 함께 존재해왔다.


음성, 몸짓과 같은 원시적인 매개수단에서부터 언어와 문자, 인쇄를 거쳐 현대의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다양한 소통수단을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생산, 전달하고 유통해왔다. 또 이러한 과정의 기술적인 진보와 발전은 곧 인류 문명사의 근간이 되어왔다.


그 가운데 인쇄는 정보의 기록과 전달을 위한 가장 획기적이며 합리적인 매체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인류역사에서 현재와 같이 정보의 대량 보급과 유통이 가능해진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인간은 음성과 몸짓을 통한 원시적인 의사 표현 단계를 지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보존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만약 정보의 전달과 보존수단으로써 인쇄를 이야기한다면, 이러한 발전과정은 곧 인쇄의 발전과도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곧 인류가 동굴 벽, 바위 등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게 된 이래 그림문자, 상형문자, 갑골문자 등 다양한 문자와 이를 기록하기 위한 각종 서사 재료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넓은 의미에서 인류의 인쇄문화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울주 천전리 각석

울산 태화강의 줄기인 내곡천 중류 기슭 암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로 1970년 12월에 발견되었다. 위, 아래 2단에 걸쳐 서로 다른 그림이 각각 다른 기법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에 의해 조각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상단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원을 중심으로, 뛰어가는 네 마리의 사슴과 반인반수半人半妖 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고, 하단에는 기마행렬도, 동물, 용 등 다양한 그림과 글씨가 뒤섞여 있다.


울주 천전리 각석. 복원도울주 천전리 각석. 복원도



글자가 새겨진 청동호우

1946년 5월 경주에서 출토된 그릇으로 호우壺玗라는 이름은 그릇 바닥 바깥면에 새겨진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 岡上廣開 土地好太王壺玗十이라는 명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을묘년은 광개토대왕비를 건립한 다음 해인 415년이며, 글씨체가 광개토대왕비와 흡사한 것으로 볼 때, 고구려에서 제작한 것이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글자가 새겨진 청동호우. 고구려글자가 새겨진 청동호우. 고구려



인장印章

기원전 5,0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기의 인장은 점토판이나 진흙 위에 눌러 찍는 형태로 시작되었다. 동양에서도 일찍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인장의 조각기법이나 날인방법 등이 인쇄술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고시대 인장 유물상고시대 인장 유물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求禮 華嚴寺 華嚴石經

화엄경華嚴經을 돌판에 새긴 것으로, 전라남도 구례 화엄사華嚴寺에서 출토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677년(통일신라 문무왕 17)에 의상義湘대사가 왕명을 받아 각황전覺皇殿을 세우고 화엄석경을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화재로 파손되어 현재는 약 8,980여 점의 조각으로 남아있다.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고인쇄박물관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고인쇄박물관


출처 - 청주 고인쇄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