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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된 조선 왕조의 변화, 국립고궁박물관 전시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5. 20. 07:00

이 포스트는 국립고궁박물관의 전시관을 돌면서 모은 자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국 건립대한제국 선포와 황제국 건립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국 건립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고종은 1897년 2월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의 의지를 다지며 경운궁으로 환궁하였다. 이후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하고 환구단에서 황제에 즉위하며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국격을 높인 고종은 국가간 동급의 외교를 하고, 황제국에 맞는 의례와 제도를 정비하여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였다.



명성황후 책봉 금보와 금책명성황후 책봉 금보와 금책



대한제국. 국가운영체제의 정비대한제국. 국가운영체제의 정비



대한제국 국가운영체제의 정비

고종은 부국강병한 근대국가를 위해 국가운영체제 정비에 힘썼다. 특히 왕실 사무기구인 궁내부를 국가개혁을 이끌어갈 핵심 조직으로 삼아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였다. 국방력 강화를 위해 군의 근대화를 꾀하고, 근대적 토지조사사업을 벌여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였다. 또 최초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대한국 국제를 공포하고, 형법대전을 반포하여 근대적인 법체계를 수립하는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각종 근대적 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에 취해진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을 광무개혁光武改革이라고 한다.



대한제국 상징물의 변화대한제국 상징물의 변화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의 변화상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의 변화상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의 변화상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 고종은 각종 의장과 제도 등의 국가 의례를 황제국의 위상에 맞게 높여 재정비하였다. 궁궐을 장식하는 문양은 봉황에서 용으로 바꿨으며 의복과 의장, 의궤 등에는 황실을 나타내는 황색을 사용하였다. 한편 각종 의례 행사 시 국가의 상징문양인 태극 등도 나타났다.



근대기 조선 황실 궁궐 내부 모습근대기 조선 황실 궁궐 내부 모습



근대기 조선 황실 궁궐 내부 모습2근대기 조선 황실 궁궐 내부 모습2


근대기 조선 황실 궁궐 내부 모습근대기 조선 황실 궁궐 내부 모습


근대기 황실 궁궐 내부 모습

대한제국기를 전후해서 궁궐 내부는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등에서 수입한 의자, 탁자, 커튼, 카펫 등의 가구와 장식용품으로 꾸며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가구 등 생활용품 대부분은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무늬로 장식되었다. 또한 샹들리에와 같은 전기 시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덕수궁, 창덕궁의 생활공간은 점차 서양식으로 변모해 갔다.



대한제국의 황궁, 경운궁대한제국의 황궁, 경운궁



덕수궁 평면도덕수궁 평면도



창덕궁에  설치한 수도관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창덕궁에 설치한 수도관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대한제국의 황궁, 경운궁慶運宮, The Palace of Korean Empire, Gyeongungung Palace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법궁法宮이자 도시 근대화 사업의 중심이었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궁역을 확장하고 전각들을 신축하였으며 궐내에 서양식 건축물을 지어 근대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삼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7년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하고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先皇帝가 거쳐하는 궁궐로, 이름도 고종의 궁호宮號에 따라 덕수궁德壽宮으로 불리게 되었다.



환구단 건립 역사와 공간 배치환구단 건립 역사와 공간 배치



환구단 환궁우 전경환구단 환궁우 전경



환구단 건립 역사와 공간 배치

환구단 영역은 크게 환구단, 황궁우, 서쪽 재실, 동쪽 행각 영역으로 구분된다. 환구단은 원형의 담장과 장방형 담장으로 둘러싸여 황궁우, 재실 영역과 구분되었다. 장방형의 담장 남쪽에는 3칸의 황살문, 북쪽으로는 벽돌로 쌓은 아치형의 삼문이 자리 잡고 있었고, 동쪽과 서쪽에는 재실과 행각으로 향하는 1칸짜리 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