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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해전1 다대포. 1592년 8월 28, 29일 [임진왜란 이순신 전쟁]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0. 14. 04:30

부산포해전1 다대포. 1592년 8월 28, 29일 [임진왜란 이순신 전쟁]


8월 28일, 경상도 육군 탐색군이 와서 말하기를,


"고성, 진해, 창원 병영 등지에 진을 치고 있는 왜적이 이달 24, 5일 밤중에 전부 도망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산에 올라 망보던 적들이 우리 수군을 보고, 위세에 놀라 배가 정박하고 있는 곳으로 도망한 것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부산포 해전의 전조)


하였다.


이날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곧장 양산 김해 두 강으로 향하는데, 구곡포仇谷浦 포작(어부, 어민) 정말석이라는 사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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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포로 되었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 김해강에서 도망해 와서 말하기를,


"김해강에 정박해 있는 적선이 며칠 동안에 떼를 지어 몰운대 바깥 바다로 급히 노를 저어 나가는 것으로 보아 도망가려는 의도가 뚜렷하여 소인은 밤을 타서 도망해 돌아왔습니다."


했다.


그래서 가덕도 북쪽 서편 기슭에 배를 감추고 숨었다. 방답첨사 이순신과 광양 현감 어영담은 가덕도 바깥쪽에 숨어 있게 하고, 적의 배를 탐색하고 오라고 양산으로 사람을 정해 보냈다. (이렇듯, 부산포해전은 치밀한 작전하에 이뤄짐)


오후 4시쯤 탐색군이 돌아와, 하루 내내 망을 보았는데 다만 왜의 작은 배 네 척이 두 강 앞바다로 나와서 바로 몰운대를 지나갔다고 하므로 그대로 천성 선청으로 가서 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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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29일, 심유경과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이 평양에서 화의를 교섭했다. 8월 29일~9월 2일 연안에서 이정암의 의변 부대가 크게 승리했다) 닭이 울자 출발하여 날이 밝을 무렵에 두 강 앞바다에 도착하였다.


동래 땅 장림포 앞바다에서 왜적 30여 명이 큰 배 네 척과 작은 배 두 척에 나눠 타고 양산에서 나오다가, 우리 군사를 만나자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갔다. 경상 우수사가 거느린 수군들이 그들을 맡아 불태워 깨뜨렸다. (며칠 후 벌어지는 부산포해전도 마찬가지였음)


좌별도장인 우후 이몽구도 큰 배 한 척을 쳐부수고 왜적의 머리 하나를 벤 뒤, 군사를 좌우로 나누어 두 강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강 어위의 지세가 좁아서 판옥의 큰 배는 싸움을 할 수 없겠다 싶어 어두워질 무렵에 가덕 북쪽으로 돌아와 밤을 지냈다.


원균, 이억기 등과 함께 밤새껏 의논하였다.


부산파왜병장釜山破倭兵狀, 9월 17일

난중일기, 송찬섭, 서해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