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강대한 흉노를 달래던 전한의 효문제 2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4. 30. 19:00

출처 - 초한지와 삼국지를 이어주는 전한, 후한지, 장개충


효문제 시기, 공주를 흉노 땅에 호송하는 자로 환관 중항렬中行說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그는 먼 길을 떠나려 하지 않았기에 구실을 대어 거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효문제는 그가 연나라 사람으로 북방에서 자랐기에 흉노의 형편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보내지 않고 굳이 그에게 가라고 명하였다. 마침내 거절할 수 없었던 그는 길을 떠날 때, 이런 말을 한다.


"조정에는 흉노에 갈 사람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꼭 나에게 가라고 하니 가긴 하겠지만 내가 장차 오랑캐를 도와서 한나라를 해치는 일이 있어도 탓하지 마시오!"


그 말을 들은 모두는 그가 일시적인 화를 못 이겨 한 말이라고 생각하였고, 한낱 환관인 주제에 무슨 힘이 있어서 감히 한나라에 화를 가져다주겠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중항렬을 북으로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무대제 속 중항렬한무대제 속 중항렬


중항렬은 흉노 땅에 도착하자마자 선우에게 귀순해 버리고 말았다. 선우는 공주와 중항렬을 몹시 총애했다. 중항렬은 흉노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많은 계책을 짜내었다.


우선 한나라에서 받은 명주와 솜과 쌀을 흉노에서는 보물로 여겼으나 실지 북방의 지리 풍토상 종전에 입던 털옷이나 고기와 우유보다 못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북방 고유의 의식주 풍속에서 좀 더 보완하여 생활풍습을 개선하고 가장 기본적인 교육 방법으로 선우의 좌우 신하들에게 숫자를 기록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것으로 인구와 가축 수를 셈할 수 있게 되자 그들은 아주 좋아했다.


그리고 또 이제까지 한나라에서 선우에게 보내오는 편지 문구는 대체로 이러했다.


"황제는 삼가 흉노의 대선우에게 묻노니 그동안 무고하신가? 보내는 물품은 무엇무엇 ... 용건은 무엇무엇 ..."


그리고 한 자 한 치의 서판書判을 사용했었다.


"이제 선우께서 한나라로 편지를 보내실 때는 한나라의 것보다 더 크게, 즉 한 자 두 치의 서판을 쓰시고 도장과 봉투도 한나라 것보다는 넓고 크게 길게 하십시오. 그래야 권위가 섭니다. 그리고 사용하는 문구도 ..."


그래서 중항렬은 선우에게 훨씬 거만한 문투의 글귀를 사용하도록 권했다.


"하늘과 땅이 낳고 해와 달이 세우신 흉노의 대선우는 한나라 황제에게 묻노니 그동안 무탈하신가? 앞으로 보낼 물품은 무엇무엇 ... 용건은 무엇무엇 ..."


등을 가르쳤고, 한나라를 침공하기에 편리한 지점을 잘 살펴두라고 밤낮으로 선우를 설득하고 지도했다. 흉노의 선우는 중항렬을 얻은 다음부터 그를 매우 총애하면서 그의 계책을 좇았다. 그가 한나라를 침범하도록 충동하자 선우는 자주 변경을 침범하였다.


중항렬을 아끼던 노상 선우중항렬을 아끼던 노상 선우

(출처 : 冒顿活了多久 冒顿死后谁继位)


문제 11년 11월에 선우는 또 적도를 침범하여 사람과 짐승을 많이 약탈해 갔다. 문제는 흉노에 서한을 보내 약속을 잊고 신의를 저버렸다고 꾸짖었으나 선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경지대의 수비대들은 밤낮으로 경비했으나 천여 리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이어서 곳곳에 빈틈이 생기곤 하였다. 그래서 군사와 백성들은 지쳐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 당시 태자 유계劉啓의 가령家令으로 조착晁錯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형명학刑名學을 배웠고 문학을 배운 자라서 태자의 사인으로 가령이라는 관직을 받은 자였다.


오초칠국의 난에 목숨을 잃은 조착오초칠국의 난에 목숨을 잃은 조착

(출처 : 晁错削藩)


그는 조정에서 흉노를 방어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동시키며 군량미를 징발하는 것을 보고 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의 요약은 이러하다.


첫째 지형을 이용할 것.

둘째 군사를 조련시킬 것.

셋째 병기를 쓸 것이다.


곧 지세들의 높낮이에 따라 흉노는 산악전을 잘하고 한나라는 야전을 잘하므로 자기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발휘해야 한다. 또한, 군사들은 강약의 구별이 있으므로 정예로운 군사를 선발하여 무예에 익숙하도록 조련시키되 경거망동하여 패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병장기들은 날카로운 것과 무딘 것의 구별이 있는데 빼어난 활과 긴 창은 날카롭고도 멀리까지 닿을 수 있고, 날이 선 병기는 날카롭고도 가까운데 닿을 수 있으므로 때를 보아 알맞게 써야 한다.


특히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공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항복한 흉노인 의거義渠 등을 전위대로 삼되, 그들과 신의로써 동맹을 맺고 갑옷과 병기를 주어 아군과 협동작전을 펴게 한다면 흉노를 막아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군사들을 보내 북방을 지키게 한다면 왕복하느라 고생을 겪게 되니, 차라리 백성들을 모집하여 북방으로 이주시켜 농사를 짓고 경비를 담당하면서 서로 돕도록 한다면 평상시에나 긴급한 때에 의지할 데가 이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 건의하였다.


한나라 경제 유계한나라 경제 유계


문제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한때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지난날 전과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적의 머리가 여섯 개 모자란다고 하여 삭탈관직하고 감옥에 내쳤던, 명망 있는 장수 운중태수로 있던 위상魏尙을 새로 등용시켰기에 변방을 평정시킬 수 있었다. 위상은 운중태수로 있으면서 조세를 모두 병사들에게 나누어주고, 또 자기 돈을 내어 소를 잡고 술상을 차려 장병들을 위로하였기에 모든 장병은 기꺼이 그의 명령을 받들고 온 힘을 다하여 변방을 지켰었다. 한 번은 흉노가 쳐들어왔는데 위상이 군사를 거느리고 적을 차단하고 공격하여 적들의 머리를 무수히 베었는데 적의 머리가 모자란다고 내쳤다.


이에 문제는 지난날을 사과하고 위상을 사면하여 운중태수로 복직시켰다. 위상이 다시 변방으로 진출하자 흉노는 그의 위엄에 눌리어 감히 변경을 침범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또한 문제는 변방을 수비할 장군들을 새로 등용하여 요소마다 배치해 놓았기 때문에 북방 일대는 다시금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문제는 평소에 옷차림도 검소하여 늘 검은 비단옷을 입었을 따름이며 그의 총애를 받은 신부인의 옷도 기장이 발에 밟힐 정도로 길지 않았으며, 장막에도 자수한 문양 등을 넣지 못하게 하는 등 소박함은 천하에 누구보다 앞장을 섰다.


오왕吳王이 병을 핑계로 조정에 와서 천자를 알현하지 않자 문제가 안석과 지팡이를 내려 주었다. 그리고 또 장무張武가 금전을 뇌물로 받자, 문제는 도리어 상금을 내려 주고 스스로가 마음을 부끄럽게 여기게 했다. 자신의 능을 구축하는데도 와기를 사용하고 금, 은, 동, 석錫으로 장식하지 못하게 했다. 또 흙을 높게 쌓아 올린 분묘를 만들지 않았다. 무엇이든 노력과 비용을 절감하여 백성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


오왕 유비. 한고조의 조카오왕 유비. 한고조의 조카

(출처 : 揭秘刘濞和刘德是什么身份 刘濞怎么读)


수재나 한재가 드는 해면 백성들에게 조세를 삭감해 주고 곡창을 열어 백성들을 구제하였으며 혹시 그것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하여 걱정하였다. 황제는 오로지 덕으로 백성을 감화시킴으로써 천하는 번성하고 부유했으며 예의가 생겨났다. 곧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고 상하가 다 좋은 풍속을 이루었다. 그래서 나라가 안녕했으며 또 모든 가정이나 사람들이 풍족하게 살았다.


효문제 24년(46세) 6월, 황제가 미앙궁未央宮에서 붕어했다(bc 157). 유조에서 말했다.


"짐이 듣기로는 생을 향유享有하는 천하의 만물 중에 죽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한다. 죽음은 천지의 원리이며 만물의 자연적인 법칙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그렇게까지 슬퍼할 것이 못 된다. 요즈음에는 세상에서 모두 살아 있는 것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하며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다가 생업에 파탄을 가져오고, 복상服喪을 지나치게 하다가 생명에 위협을 받으니 짐은 이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짐은 원래가 부덕하여 백성들에게 도움이 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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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不可错过的《赤壁·新三国》三大主流任务)


짐은 원래 불민不敏하여 언제나 지나친 행동으로 선제의 유덕遺德을 부끄럽게 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으며, 기나긴 생애를 통하여 천수를 누리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지금 다행히도 천수를 누려 다시 고조의 묘에 공양供養할 수 있는 행복을 얻었으니 기뻐하는 바이다. 무슨 비애가 있을 것인가?


천하의 이민吏民에게 지령指令하거니와 붕어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곡례曲禮에 임하는 것은 3일로 끝내고 모두 상복을 벗으라. 그리고 아내를 얻어오고 딸을 시집보내고 귀신에게 제사 지내며 술을 마시고 육식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 모두가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임해 주길 바란다."


역사가들은 문제를 선왕이 이룩한 대업을 잘 이어받아 지킨 어진 황제라고 일컫는다. 다만 임종 전에 삼년상의 기한을 일 년으로 하라는 유조를 남긴 것이 옛 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논의되었을 뿐 그 외는 특별히 바난 받을 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