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한 고조 유방과 당 태종 이세민의 공통점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4. 2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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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 권으로 읽는 중국 고전, 이우각, 동양고전연구모임


부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라


항우와 유방 두 사람은 진시황제가 죽은 후 천하를 두고 싸웠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유방이 항우를 쳐부수고 천하를 통일하여 한漢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이룩하였다. 이 두 사람의 싸움에서 처음에는 항우 쪽이 우세했다. 그러나 유방은 끈질기게 열세를 만회하여 역전승을 거둔다. 그 승리의 원인에 대해서 유방 자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에게는 소하, 장량, 한신이라는 세 명의 걸출한 인물이 있다. 이 세 명을 잘 활용한 것이 내 승리의 원인이다. 이런 나에 비해 항우에게는 범증이라는 참모가 있었지만, 그 한 사람조차도 활용하지 못했다. 이것이 항우의 패배 원인이다."


세 명의 걸출한 인물을 잘 활용한 것이 승리의 이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활용했다 하더라도 수족처럼 혹사했다는 뜻이 아니다. 유방은 세 명의 의견을 진실로 귀를 기울여 들었다. 유방 쪽에서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는 일은 거의 없고 부하의 진언을 듣고 최후에 "좋아, 그렇게 하자"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유방의 방식이었다.


함양에 입성하는 유방. 신난다함양에 입성하는 유방. 신난다

(출처 : 刘邦入咸阳,跑的也太欢快了)


이러한 방식을 취하면 부하로서도 그만큼 책임을 느끼고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방이 부하를 활용한 비결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부하의 의견이라는 것은 내용에서 보면 대강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정책이라든가 전략, 전술에 관한 진언, 두 번째는 우두머리나 상사의 과실을 간하는 간언이다. 지금 이야기한 유방의 경우는 주로 정책이나 전략, 전술에 관한 진언에 귀를 기울인 경우인데 우두머리에게 있어서 어려운 것은 이것보다 오히려 간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중국에 "좋은 약은 입에 써도 병에 도움이 되고, 충언은 귀에 거슬려도 행동에 도움이 된다"는 격언이 있지만, 간언이라는 것은 듣는 입장에서 싫은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결점이나 과오를 지적당하면 누구라도 기쁠 리가 없다. 그것을 허심탄회하게 듣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역대 황제 중에서 당나라 태종만큼 간언을 좋아한 우두머리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기 스스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정관정요를 읽으면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어느 날 태종은 중신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예로부터 제왕들은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하는 자가 많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공적이 없는 자에게까지 상을 주고, 화가 났을 때는 태연하게 아무 죄도 없는 자까지 죽였다. 천하의 대란은 모두 이런 원인으로 일어났다. 나는 밤낮으로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자 어떤가 나에게 간언할 것이 있으면 바로 얘기해 주기 바란다. 또, 너희들도 부하의 간언은 기쁘게 받아들이는 게 좋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하여 거부해선 안 된다. 부하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상사에게 간언할 수 있겠는가!"


또, 만년의 어느 날 태종이 위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 신하들 사이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자가 전혀 없다는데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위징이 대답했다.


"폐하는 허심탄회하게 신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왔습니다. 서슴없이 의견을 말한 자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와 마찬가지로 침묵을 지키는 것에도 사람들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의지가 약한 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합니다. 평소 폐하의 측근에서 보필하지 못하는 자는 신뢰가 없음을 두려워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또, 지위에 연연하는 자는 어설프게 말했다가 모처럼 얻은 지위를 잃게 될까 봐 이 또한 적극적으로 발언하려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정관지치로 유명한 당태종정관지치로 유명한 당태종

(출처 : 揭秘:大臣好心询问唐太宗病情 为什么反被赐死?)


위징의 대답은 부하의 심리를 솜씨 좋게 묘사하여 우두머리의 맹점을 찌르고 있다. 이에 대해서 태종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과연 네가 말한 대로다. 나는 언제나 그 점을 반성하고 있다. 신하가 군주에게 간하려면 죽음을 각오하고 해야 한다. 그것은 형장刑場에 나아가는 것과 같고 적진 한복판으로 돌입해 가는 것과 같다.


조금의 동요도 없이 간언하는 신하가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겸허한 태도로 간언을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서슴없이 의견을 얘기해 주기 바란다."


태종은 일생을 이와 같은 태도로 일관하여 폭넓게 신하들의 간언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이것이 정관정요에서 배우는 제왕학의 첫째의 조건이라 생각한다.


단, 부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도, 그 전제가 되는 것은 부하 중에 유능한 인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태종의 수하에는 위징이나 방현령을 비롯하여 여러 인재가 모여 있었다. 이 '인재 집단'의 노력도 동시에 보고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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