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

이청조란 송나라 여류 문인을 평가하는 글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7. 1. 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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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조에 대하여 - 중국 제일의 여류 문인 이청조(李淸照) (전순동, 충복대 교수) [클릭]


문학과 예술을 즐기던 집안에서 태어난 송宋(조광윤의 송) 나라 시기의 여류 문인입니다. 아버지 이격비李格非는 제남济南 역하历下 태생으로 진사进士 출신의 소식苏轼(소동파)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관직은 예부礼部의 원외랑員外郎까지 오릅니다.


젊은 시절 이청조의 화상젊은 시절 이청조의 화상


1. 어느 비평문에서,


개원開元(당 현종의 연호), 천보天寶 연간에 이팔랑李八郞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노래를 잘 부르기로 천하에 따라갈 자가 없었다. 당시 새로 진사에 급제한 사람들이 곡강曲江에 연회를 마련했는데, 진사에 급제한 한 명사名士가 이팔랑을 따로 부르더니 그에게 옷을 갈아입게 하고 이름을 숨기게 했다.


이팔랑은 매우 비루한 옷을 입고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그와 함께 연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 "이 아우는 저기 말석에 가서 앉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들은 체 만 체했다.


이청조의 동상, 이것도 산동 제남이청조의 동상, 이것도 산동 제남


술이 돌고 음악이 흐르자 노래 부르는 사람이 들어왔다. 조원겸曹元謙과 염노念奴의 노래가 개중 제일 나았으니, 노래를 마치자 여기저기서 탄성과 칭송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때 명사가 이씨를 가리키며 "자네도 한 곡조 뽑아보게" 라고 했다.


좌중에 있던 사람들은 비웃는 얼굴로 바라봤고, 혹 불만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는 자도 있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소리를 내어 한 곡조 뽑아 올렸다. 노래가 끝날 무렵 좌중에 있던 사람들 중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모두들 그를 둘러싸고 큰절을 올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이팔랑 선생이시군요."


※ 위의 이야기는 유명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꾸며낸 이야기로, 여류 문인이 그 주인공이 되었다는 건 흔치 않음.


노년의 이청조 화상노년의 이청조 화상


2. 진욱陳郁 장일화유藏一話腴


이이안은 작문에 능하다. 그가 지은 여몽령如夢令의 한 구절인 '녹비홍수綠肥紅瘦'는 천하의 칭송을 받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 녹비홍수에 대해 - 이청조의 여몽령 [클릭]


산동성 제남의 이청조 기념관산동성 제남의 이청조 기념관


3. 명나라 양신楊愼 사품詞品


송나라 사람 가운데 시를 짓는 부분에 있어서는 이이안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다. 사대부들 가운데서도 진관, 황정견과 견줄 만할 정도로, 규방의 여인네 중에 좀 나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4. 청나라 기윤紀昀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이청조는 여인의 몸이지만 사의 풍격으로 치자면 주방언, 유영과 견줄만하다. 장단의張端義의 귀이집貴耳集에서는 정월대보름의 감성을 적은 영우락永遇樂과 성성만聲聲慢을 극찬하며 규방에서 이런 글이 나오는 경우 대부분 공연한 노기의 발산이라고 여겼지만, 이 글들은 진실로 꾸며진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했다.


이청조의 어린 시절이청조의 어린 시절


비록 작품 수가 많지는 않지만 귀히 보관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들로, 가히 사詞의 적통이라 할만하다.


주방언은 북송의 유명 문학가, 유영은 작가


참조 - 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


ps. 여류 문인이란 특징 때문인지 국내외에 이청조에 대한 자료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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