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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방통이 사마휘를 만나려 2천 리 길을 떠난 사연

믿을만한 건강정보 2016. 11. 14. 15:30

삼국지 방통이 사마휘를 만나려 2천 리 길을 떠난 사연


수경8기 중 6기 방통[삼국지 방통과 사마휘] 수경8기 중 6기 방통


남군南郡의 방사원龐士元(방통, 龐統)은 사마덕조司馬德操(사마휘, 司馬徽)영천潁川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2천 리의 먼 길을 일부러 찾아갔다. 도착하자 마침 사마덕조는 뽕을 따고 있었다.


방사원은 수레 안에서 말을 걸었다.


"사나이가 처세하는 데는 금인자수金印紫綏(금인金印)이란 금으로 만든 도장(圖章, 자수紫綏는 호패의 술로 출세를 의미함)를 띠고 다녀야 한다고 들었소이다. 훌륭한 기량을 지니고 잇으면서 어찌 실이나 잣는 여자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1)

사마덕조가 대답했다. (2)


"어서 수레에서 내리시구려. 당신은 단지 지름길을 가는 신속성이나 알고 있을 뿐,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소이다.


옛날 백성伯成(누군지 모르겠음)은 둘이서 밭을 갈면서도 제후諸候의 영광 따위는 바라지 않았고, (3) 원헌原憲(공자의 제자. 너무 가난하여 집에 문짝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비만 오면 지붕에 물이 새어 방안이 젖었었다)은 뽕나무 지도리를 한집에 살고 있으면서 관리官吏의 저택으로 옮겨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오. (4)


원헌의 동상. 공자 제자[삼국지 방통과 사마휘] 원헌의 동상. 공자 제자


어찌 사는 곳이 호화로운 저택이고, 출입하는 데 살진 말을 타며, 수십 명의 시녀를 거느려야 비로소 훌륭하다고 하오리까?


그것이야말로 허유許由, 소부巢父(요임금 시절의 인물)(5) 강개했던 바이고, 백이伯夷, 숙제叔齊(상나라 말기의 형제)가 길게 탄식했던 이유지요. (6)


진秦나라에서 훔친 작위와 천승千乘의 부富(천 필의 수레. 승乘은 수레를 세는 단위. 중국 주周 나라 때, 전시戰時에 천자天子는 만승萬乘을, 제후諸侯는 천승千乘을 내게 되어 있었음. 따라서 천승은 제후를 뜻하기도 함) (7) 있다 하더라도 귀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외다."


방사원이 말했다.

"나는 궁핍한 시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대의大義에 접한 일이 거의 없었소이다. 만약 한 차례 대종大鍾(큰 종)을 두드리어 뇌고雷鼓(여러 개의 작은북을 하나의 틀에 묶어 놓고 연주하는 북. 옛날 궁중 음악에서 쓰던 영고靈鼓, 뇌고雷鼓, 노고路鼓가 있음)를 두드려 보지 않았더라면 그 음향의 크기를 알 수 없었을 것이외다."


유효표의 주.


(1) 촉지蜀志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방통龐統의 자는 사원士元이며 양양襄陽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박눌朴訥(됨됨이가 수수하고 말이 없다)하여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영천의 사마휘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방사원은 20세 무렵에 찾아가서 사마휘를 만났다. 사마휘는 뽕나무 위에서 뽕을 따고 있었는데 방사원을 나무 아래에 앉히고 밤이 되기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마휘는 방사원을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대는 남주南州에서 제일가는 사인士人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고 하였다.


이때부터 방사원의 이름은 차츰 높아져 갔다.'


너무나 가난했던 공자의 제자 원헌[삼국지 방통과 사마휘] 너무나 가난했던 공자의 제자 원헌


양양기襄陽記에는 이런 말이 있다. '방사원은 방덕공龐德公의 조카이다. 


젊었을 때는 아직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방덕공만은 그를 중시했다. 18세 때 방덕공은 방사원을 사마덕조에게 보내어 만나보도록 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마덕조는 찬탄하여 말했다. 


"방덕공은 사람을 보는 눈이 있도다. 실로 훌륭한 인물이야."


후에 유비劉備가 시세時世의 일에 대하여 사마덕조에게 물었다.


사마덕조는 말했다.


"제가 어찌 당세의 요무要務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지방에는 복룡伏龍과 봉추鳳雛가 있지 아니합니까."


이는 제갈공명諸葛孔明과 방사원을 두고 한 말이다.


와룡과 봉추, 제갈량과 방통[삼국지 방통과 사마휘] 와룡과 봉추, 제갈량과 방통


화양국지華陽國志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유비는 방사원을 발탁하여 군사중랑장軍師中郞將을 삼았다. 방사원은 유비를 따라 낙양을 공격했는데 유시에 맞아 전사했다. 그때 나이가 38세였다.


(2) 다른 포스트 참조 - 사마휘를 서생으로만 봤던 유표 [클릭]


(3) 장자莊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요堯가 천하를 다스릴 때 백성자고伯成子高는 그를 섬기어 제후가 되었다. 우禹가 천자의 자리에 오르자 백성자고는 제후의 자리를 내놓고 들판에 가서 경작을 했다.

우가 가서 백성자고를 만나 겸손하게 정사에 대하여 물었던바 백성자고는 말했다.


"옛날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는 상을 주지 않았어도 백성들은 부지런히 일했고, 벌을 내리지 않았어도 백성들은 두려워했었소. 그런데 지금 당신은 상벌을 가해도 백성들의 행위가 좋아지지 않습니다. 이로부터 덕은 쇠해지고 형벌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훼방하지 마시고요."'


(4) 가어家語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원헌의 자는 자사子思이며 송宋나라 사람인데 공자의 제자이다. 노魯나라에 있을 때 그의 집은 생풀로 지붕을 잇고 쑥대로 만든 문은 망가졌으며 뽕나무 지도리에 옹기로 만든 창문, 지붕에서는 비가 새고 바닥은 습기에 차있었는데 그런 곳에 앉아서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자공子貢의 큰 수레가 골목으로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걸어가서 원헌을 만나 말했다.


"선생은 무슨 병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러자 원헌이 말했다.


관복을 입고 명을 받는 원헌[삼국지 방통과 사마휘] 관복을 입고 명을 받는 원헌


"나는 재산이 없는 것을 빈貧이라 배웠으면서도 그것을 실행할 수 없는 것을 병病이라 한다고 들었소이다.


나는 지금 빈하긴 하지만 병은 없어요. 세상에 아첨하는 행동을 하고, 도당을 짓기 위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배우는 것은 남을 위해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가르치며, 인의仁義를 배반하고 거마車馬를 장식하는 짓 따위는 나로서는 할 수 없소이다."'


(5) 허유와 소보


(6) 맹자孟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백이, 숙제는 눈에 안좋은 색은 보지 않았고 귀에 악한 소리는 듣지 않았다. 허름한 시골사람과 같이 있는 것을, 의관을 갖추고 다탄 속에 앉아 있는 기분으로 했다.' 이것이 성인의 결백함이다.


(7) 고사고古史考에 이런 말이 있다. '여불위呂不韋는 진秦나라 자초子楚를 위해 천금의 뇌물을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 바치고 자초를 후사로 세울 것을 청했다. 자초가 즉위하자 여불위를 낙양 10만 호에 봉하고 문신후文信侯라 호號했다.' 이렇게 해서 작위를 얻었으므로 훔쳤다고 한다.


논어論語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은 천사千駟를 가지고 있었지만 백성들은 그 누구도 그를 덕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공안국孔安國은 말했다.


'천사란 말 4천 필匹을 가리킴이다.'


제나라 경공을 떠나는 공자[삼국지 방통과 사마휘] 제나라 경공을 떠나는 공자


세설신어 上, 언어편, 9화

세설신어, 안길환, 명문당, 101p~102p

삼국지 방통이 사마휘를 만나려 2천 리 길을 떠난 사연